독후감

카라반과 낙타

부실이 2023. 9. 25. 16:43

* 카라반과 낙타

김영하 오직 두 사람’ : 일곱 편의 중단편을 묶어 낸 소설집

 

세 살 된 아들을 대형마트에서 잃어버린 후 부부는 11년간 아이를 찾는데 올인하느라 정규직 직장에서 비정규직으로 옮기고 시간이 갈수록 더 가난해진다. 그 뒤 갑자기 나타난 아이는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정보를 입력해둔 덕분인데 돌아온 사연이 이러하다. 아이를 데려간 여자는 홀로 아이를 키우다 자살하고 아이는 유전자 조사를 함으로써 친부모를 찾아 온 것이다. 아이를 찾는 과정이 지옥이고 아이를 찾으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짜 지옥은 그 아이를 되찾는 순간부터였다.

아들 성민이는 친부모가 낯설어서 겉돌고 아내 미라는 조현병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아내는 실족사로 죽고, 귀향한 고향에서 고등학생인 성민이는 집을 나가버렸다. 시간이 흘러 찾아온 아기를 안고 찾아온 여자아이는 성민의 아기인데 성민이 5백만원을 몰래 들고 집을 나가버렸고 그 돈을 달라고 했고 돈을 챙긴 여자아이는 아기를 놔두고 슬그머니 사라졌다.

 

사람들은 그가 미친 아내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윤석이 정신나간 아내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일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없는 부부관계에서 그는 삶을 지탱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도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겠는가.

 

버섯을 팔아 모은 돈을 장롱에서 꺼냈다. 오백만원이면 저 어린 여자애에게는 얼마나 큰 돈일 것인가. 그는 잠깐 갈등하다가 삼십만원을 더 얹어 봉투에 넣었다.

 

최근에 이웃 아주머니, 90세 된 아주머니의 말씀이다.

86세 된 남동생의 부인이 치매환자라고 했다. 10여 년 전부터 시작된 치매는 갈수록 증상이 심해지고 있는데 현재는 노인유치원이라고 하는 어르신보호센터로 아침에 등교해서 오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아침에 옷 입히고 아침식사를 챙겨 먹이는 역할을 남편인 남동생이 하고 있다. 딸이 부모님을 도와주겠다면서 부모 집으로 합가를 했는데 딸은 아버지에게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자고 했다. 그러지만 아버지는 불쌍해서 못 보낸다면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중이다.

 

몇 십년의 결혼 생활을 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였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아온 세월 자체가 어려울 때를 대비한 저축이었다고 느껴진다. 위 소설에서 남편은 미쳐가는 아내 미라를 향해 모래지옥을 동반해서 건너가는 카라반의 낙타로 비유했다. 아내 미라가 건강한 정신이었을 때 이미 보여준 성실한 동반자였다는 신뢰와 애정이 바탕에 있어서일 것이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 ‘작가의 말중에서

 

작가는 앞으로 쓰게 될 글의 성격을 음울하게 말하고 있지만 내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지옥을 천국으로 바꾸는 마음자리를 또한 만들어내고 있지 않은가. 사람에 대한 애정이 단단한 밧줄처럼 느껴진다.

 

김영하의 소설에는 희망이 있다. 가슴을 찢어놓는 아픈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있다.

사실을 넘어서는 예감의 세계에서는 사실 이상의 세계로 비약할 수 있는 상상력이 작동한다. 그래서 작가는 현실을 치유할 수 있는 치유사로서 존재의미를 가질 수 있음을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