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소망 없는 불행 : 피터 한트케 / 2023년 1월

부실이 2023. 1. 31. 11:48

* 어머니의 자살을 격은 후 쓴, 견고한 슬픔의 미학 : 2019년 노벨상 수상 작품

 

* 페터 한트케 : 2019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1942년 오스트리아 출생. 법학을 공부하다가 19664학년 재학 중 첫 소설 [말벌들]로 문단에 등장. 그 해 미국 프린스턴에서 개최된 ‘47그룹회합에 참석해 당시 주류 문학을 비판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관객모독] 희극을 통해 전통적 연극의 형식을 파괴하고 과감한 언어 실험을 보여 줌으로써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 옮긴이의 말

페터 한트케는 우리나라에서 1970년대 말부터 [관객모독][카스파] 등 희곡들이 공연되었다. 그는 작가로서 주목받기 시작했던 1960년대에 언어 실험적 스타일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는 그런 실험적 스타일을 극복하고 전통적 서술의 큰 흐름 속으로 들어간다.

한편 한트케가 주제나 소재 면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던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그는 많은 작품들과 여러 인터뷰를 통해, 적어도 문학 활동과 관련해서는 자신 이외의 여타의 것에 대해 관심이 없음을 밝히고 있다.

[소망 없는 불행 : 1972][아이 이야기 : 1981]은 그런 주제 의식에 부합하는 가장 전형적인 작품이며 그의 작가로서의 발전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소망 없는 불행]1971년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하고 자살한 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씌어진 산문으로 어머니의 일생을 회상하면서 한 인간이 자아에 눈떠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불행했던 한트케 자신의 이야기,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의 역사 및 어느 나라에서나 공통분모를 찾아볼 수 있는 여자의 일생까지도 읽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는 페미니즘적 요소도 들어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한트케의 작업 태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의 서술 방식에서 독자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객관성을 잃고 감성적으로 몰입하려 하는 자신을 작가로서 엄히 다스리며 글쓰기에 임하는 한트케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아이 이야기]는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는 것으로 한트케가 연극배우였던 첫째 부인과 결별한 후, 딸 아미나를 맡아 기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씌어졌다. 그는 파리와 독일의 여러 도시로 거주지를 옮겨가며 남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겪는 이야기들을 매우 담담하게 기록하고 있다. 담담한 필체와는 달리 이 작품은 작가로서 진일보했음을 보여주고 인간으로서도 한 단계 더 성숙했음을 보여준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여러 의미에서 폐허로 가득 찬 자신의 어린 시절로 인해 가정생활이라든가 가족관계 등에 매우 부정적이었던 자신이 딸을 키우며 그것들의 소중함을 인식해 가고 결국은 한 인간 속의 소우주까지도 발견하게 되는 과정이 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내용정리]

51세 가정주부,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자살.

 

나는 내 어머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그녀에 대해서, 또 그녀가 어떻게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 더 많이 안다고 믿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 개인적인 관심 때문이다. 마지막 이유는 인터뷰 기자처럼 이 자살을 하나의 사건으로 재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 외할아버지 : 86. 목수. 외할머니와 함께 밭과 목초지를 조금 경작했고 소작료 물음. 슬로베니아계 혈통이며 사생아. 결혼 적령기에 도달했으면서도 혼인할 돈도, 결혼 생활을 꾸려갈 집칸도 없었던 당시의 가난한 농민층의 자식들은 대개 그런 식으로 태어났다. 그래도 그분의 모친은 꽤 여유 있는 농부의 딸이었다. 그 집에서 외할아버지의 부친은 머슴으로 살았다. 그분의 어머니는 이런 방법으로 작은 땅이라도 살 돈을 받게 되었다.

 

외할아버지는 남의 집에서 태어나 유일한 소유물이었던 축제일 옷이 입혀진 채 제대로 장례식도 치르지 않고 땅속에 묻혔다. 그러나 맨주먹으로 머슴살이를 했지만 몇 세대가 지난 후에는 매일 일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 없이 정말로 편하게 느낄 만한 환경에서 자라난 첫 번째 사람이었다. 또한 세례 증서를 가졌던 첫 번째 인물이기도 했다.

 

* 소유권이란 구체화된 자유

그 말은 여러 세대 동안 제산도 없었고 따라서 권한도 없었다가 적어도 부동산이란 걸 소유했던 사람인, 당시의 내 외할아버지에게 그대로 들어맞는 말이었다. 무언가를 소유하고 있다는 의식은 몹시 해방감을 주어, 여러 세대에 걸쳐 의지라는 것을 갖지 못하다가 갑자기 좀더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으니 말이다.

처음에 소유하게 된 토지는 아주 작았으나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고만 해도 자신의 노동력이 거의 통째로 투입되었다. 그러다보니 이 억척스러운 소농에겐 단 한 가지의 가능성밖에 없었다. 그것은 저축하는 것이었다.

 

그분은 자식들이 결혼이나 직업교육을 위해 독립 자금이 필요할 때까지 계속 저축했다. 이렇게 저축한 것을 일찌감치 자식들의 교육을 위해 쓴다는 생각을 그분은 해본 적도 없었고 특히 딸자식의 경우에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들들의 경우에도 어디든 집을 떠나면 그저 맨주먹이 된다는 수백 년 전부터 전해 오는 악몽이 얼마나 깊이 주입되었던지 그중 한 명은 주의 수도에 있는 김나지움에 가게 되었지만 객지 생활을 며칠도 견디지 못하고 집으로 걸어서 돌아와서는 집 앞에서 곧장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동틀녘에 바로 마당을 쓰는 소리만으로도 그가 돌아왔다는 충분한 표시가 되었다. 그 뒤 그는 대단히 유능한 목수가 되어 그 일에 만족했다고 한다.

그와 그의 맏형은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하자마자 전사했다. 그분은 또다시 저축했다. 그건 그분이 술도 담배도 입에 대지 않고 노름도 거의 하지 않은 것을 의미했다. 그가 했던 유일한 놀이는 일요일에 하는 카드놀이뿐이었다.

 

살아남은 아들은 스무 명이나 되는 일꾼을 거느리고 일했으며 더 이상 저축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투자를 했다. 그 말은 술을 마실 수 있고 노름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그런 일들이 그에게는 당연하기도 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평생 말도 없이 모든 일에서 관계를 끊고 살아온 부친과는 달리 적어도 하나의 언어를 찾아낸 셈이다.

 

이런 환경에서 여자로 태어난다는 것은 애당초부터 치명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미래에 대한 걱정은 안해도 좋다는 안이함을 의미할 수도 있다나의 어머니는 5남매 중 넷째였다. 학교에서 그녀는 영리하다는 소릴 들었다. 그러나 학창 시절도 지나가버렸다. 배운다는 것도 그저 애들놀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의무 교육이 끝나고 어른이 되면 그건 필요 없는 것이 되었다. 처녀들은 장래를 위해 집에서 그저 가사 일이나 익히곤 했다.

 

어머니가 갑자기 무언가에 대한 욕망을 갖기 시작했다. 그녀는 배우고 싶어했다. 그건 그녀가 아이였을 때 무언가를 배우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느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할아버지께 배우게 해달라고 했지만 안되는 것이었다.

주민들 사이엔 기정사실들, 즉 임신, 전쟁, 국가, 관습 및 죽음 같은 것에 대해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경외심이 있었다. 나의 어머니가 열대여섯 살에 무작정 집을 나와 호숫가의 한 호텔에서 요리하는 것을 배웠을 때 할아버지는 그녀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건 그녀가 이미 가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설거지 보조원, 객실 하녀, 주방장 조수, 주방장이 되는 것 말고는 그녀에게 다른 가능성은 없었다.

 

1938410일 독일로 합병!

그녀는 정치엔 관심이 없었다. 눈에 확 띄게 벌어지고 있는 것은 그녀에게는 모두 정치와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서 가장 행렬, 세속적인 장날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정치는 색깔도 없고 추상적인 것이었다.

이 시기 동안 나의 어머니는 스스로의 껍질에서 벗어나 제 힘으로 설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알게 되었고 사람들과의 접촉에서 느꼈던 불안감도 완전히 떨쳐버렸다.

 

내가 태어나기 직전 나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다른 남자의 아이를 낳아도 상관이 없다고 하는 어떤 독일군 하사와 결혼했다. 사람들이 아이에겐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그녀에게 일깨워주었다. 평생 처음으로 그녀는 위축되었고 웃음도 사라져버렸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기에게 호감을 가졌다는 사실이 그녀를 감동시켰다. 그녀는 이제 가족 수당을 받을 권리가 생겼다.

그녀는 아이와 함께 시부모가 계신 베를린으로 갔다. 처음으로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남편을 잊었고, 아이가 울면 가슴에 꼭 껴안았다.

기독교적 분위기가 만연한 이런 시골에서 여자가 독자적 삶을 갖겠다는 생각은 도대체가 시건방진 것이었다. 처음에는 농담조로 표현되었던 거부의 표정들이 수치스러울 정도로 진심이 되어버렸고 가장 기본적인 감정들마저 빼앗아가 버렸다.

 

전쟁이 끝나자 나의 어머니는 남편을 떠올렸고 다시 베를린으로 갔다. 남편은 전차 운전사 다음엔 빵집. 술을 마셔댔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그녀 삶에서 말 상대가 되지 못하는 남편과 또 더더욱 말 상대가 되지 못하는 아이들은 거의 중요하지 않았다. 물건들도 최소한으로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인색했고 알뜰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성이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고, 일상의 사소함 속에 자신을 묻어버렸다. 그녀는 외롭지는 않았으나 스스로를 기껏해야 반쪽일 뿐이라고 느꼈다. 그러나 나머지 반쪽을 채워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린 서로를 잘 보완해 주었단다. 그녀는 은행원과 함께한 시절을 회상하며 그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그것이 영원한 사랑에 대한 그녀의 이상이었으리라.

 

이웃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그녀는 오스트리아인의 사교성과 쾌활함을 지닌 데다 대도시의 사람들처럼 억지 애교를 떨지도 않고, 꾸미지도 않는 솔직한 성품이라 칭송을 받았다. 누구도 그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슬로베니아어도 말할 수 있기 때문에 러시아인하고도 그녀는 잘 지냈다. 그럴 때 그녀는 말을 많이 했다. 양쪽 언어에 공통되는 단어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말했던 것이다. 그러면서 그녀는 해방감을 느꼈다.

 

1948년 동독에서 탈출. 오스트리아 고향으로 돌아감. 남편, 두 아이들

이제 저축을 하는 것은 그녀였다. 필요한 것을 참다보니 그것이 곧 악덕이 되었지만 필요한 것은 더욱더 억눌러졌다. 이렇게 궁핍하게 살면서도 사람들은 적어도 겉으로는 시민적인 생활양식을 모방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 꼭 필요한 것은 먹을거리였고, 유익한 것은 겨울의 땔감이었으며 그 외의 다른 모든 것은 사치품이었다.

 

생활은 그녀가 남편에게 맞춰 짜놓은 한 달치 시간표대로 꾸려졌다. 늘상 삼십 분 정도의 여유를 열망했으며 임금이 지불되지 않기에 비오는 날을 두려워하는 궁색스러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겨울이 되어 건축 일이 없으면 실업 보조금이 지급되었지만 그녀의 남편은 그것으로 술을 마셨다. 그녀는 더 이상 그와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결코 보따리를 싸지 않았다. 그사이 그녀는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알았던 것이다. [난 그저 아이들이 클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야] 세 번째 유산. 이번에는 하혈이 심했다. 마흔 살이 되기 직전 낙태를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아이가 태어났다.

 

알코올 중독에 걸린 남편을 해고하지 말아달라고 오빠에게 번번이 부탁하기, 라디오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발하지 말아달라고 지방의 라디오 감시원에게 부탁하기, 당당한 시민으로서 그럴 자격이 있다고 항의하며 집 건축을 위한 대부금을 달라고 은행에 간청하기, 무산자 증명서를 떼기 위해 이 관청에서 저 관청으로 쫓아다니기 등. 그 사이 대학에 가게 된 아들이 장학금을 얻으려면 그 증명서를 해마다 갱신해야 했다.

 

최초의 가전 기구는 전기 다리미. 어쩌면 내 자신을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믹서기, 전기 스토브, 냉장고, 세탁기를 쓰면서부터 점점 많아지는 자신을 위한 시간.

어머니는 영원히 위축되고 존재가 없는 그런 사람이 되지는 않았다.
그녀가 자기주장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더 이상 뼈빠지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점차 자신을 되찾아갔다. 그녀는 수선스러움도 극복했고
어느 정도 편안하게 느끼고 있다는 듯한 얼굴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녀는 책을 읽었다. 독서를 하면서 생기를 얻었다.
독서를 함으로써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을 감싼 껍데기로부터 벗어났고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을 배웠다.
지금까지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그녀를 짜증나게 했다.
이제 그녀는 독서하고 토론하는 데 열중했다가
돌연 새로운 자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관대해졌고 그가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대로 놔두었다.
그녀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 순수한 연민 때문에 종종 무기력해졌다.
그들은 참된 의미에서 함께였던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에 멀어지지도 않았다.

 

지난 여름 그녀에게 다니러 갔을 때 나는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너무도 비참해서 나는 감히 그녀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했다. 동물원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거기엔 살덩이가 되어버린 동물적인 고독이 누워 있었다.

 

그 시간부터 비로소 나는 어머니를 제대로 인식했다. 그전까지는 어느 틈엔가 그녀를 잊고 있었고 가끔 그녀가 살아온 바보스러운 삶에 생각이 미치면 기껏해야 찌르륵한 통증 같은 걸 느꼈을 뿐이었다. 이제 그녀는 내게 실체로, 피와 살이 있는 인물로 다가왔고 그녀의 상태를 정말 손에 잡을 듯 체험할 수 있어서 어느 순간에나 그 생생한 느낌과 함께했다.

 

그녀는 감각을 잃게 되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으며 심지어는 늘 보던 가재도구조차도 알아보지 못했다. 그녀는 더 이상 주부 노릇을 할 수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면 온몸이 쑤시고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그녀는 집어드는 모든 것을 바닥에 떨어뜨렸고 그 물건들이 떨어질 때마다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낮에도 그녀는 대개 아무런 분간 없이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고 문과 방향을 혼동했다.

 

때때로 그녀는 자기가 어디까지 갔었으며 어떻게 시간이 흘러갔는지 알지 못했다. 그녀는 이제 도대체 시간 개념과 방향 감각이란 것을 잃어버렸다. 그녀는 더 이상 꾸며댈 수도 없었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져 버렸다. 그녀를 보는 사람은 누구나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이성을 잃을까 두려워했다.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서둘러 작별을 위한 몇 통의 편지를 썼다.

신경쇠약증 진단. 자살.

 

* 독후감 포인트

1.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포기하지 않았다. : 그것은 내가 훗날 부인과 이혼하고 어린 딸을 키우는 과정에서 겹쳐진다.

2. 어머니는 자신의 삶이 성장하고 성숙되어지는 과정을 만들어나갔다.

미혼모 입장에서 결혼 - 술중독 남편과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음 - 아들을 대학 보냄 - 책을 읽으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됨 - 남편은 애증의 대상에서 가여운자로 초점이 바뀜. - 변하는 부인을 오히려 낯설어하는 남편 - 신경쇠약증 처방 받음. 일상생활을 수행하기가 어려워짐

3. 자살에 관한 사유 : 글쓴이 아들은 어머니의 자살에 대해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려고 하였다.

 

그녀는 남편에게 관대해졌고 그가 변명을 늘어놓아도 그대로 놔두었다.
그녀는 그에게 연민을 느꼈고 그 순수한 연민 때문에 종종 무기력해졌다.
그들은 참된 의미에서 함께였던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에 멀어지지도 않았다.

 

한 인간으로서 계속 성장하고 성숙해지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던 어머니의 성장이 엿보이는 대목이 알콜중독이었던 남편,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언쟁하고 폭력을 당했던 때가 젊었을 때라면 나이 들어가면서 성숙해진 어머니는 그와 언쟁하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남편은 그런 그녀를 낯설어했다. 그러함에도 그녀의 내면에서 키워진 사람에 대한 연민은 인류공통의 수준 높은 의식이었다빅토르 위고 작품 '레미제라블'은 우리말로 '불쌍한 사람들'이란 해석이 있다. 레미제라블은 불어로 불쌍한, 가여운의 뜻을 가진 형용사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이 사람에 대한 안됐다! 라는 연민이기도 하다.

 

한 사람이 어려운 환경과 섭섭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이겨냈을 때는 더 단단하고 성숙한 사람으로 변모되는 과정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고전은 현재에도 생명력을 유지한 채 사람들은 여전히 감동을 받으면서 내면의 소중한 에너지로 전환되는 것이다.

 

작가 페터 한트케는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이런 승화된 인간의 모습을 보았고 그런 어머니를 글로 쓰고 싶다고 욕망하였을 것 같다. '소망 없는 불행' 제목에서는 부정이 가득했음에도 책 내용 또한 전쟁의 도가니 속에서 한 여인이 처절하게 가족을 지키면서 살아남는 과정이 페터 특유의 어려운 표현들이어서 가려 읽어야 가능한 해석이었다. 책을 읽고 누구나 자신의 해석이 있어야 한다면 나는 이런 긍정성을 소망 없는 불행에서 읽었다. 레미제라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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