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설이 : 심윤경 / 2022년 12월

부실이 2023. 1. 31. 11:35

* 작가의 말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는 행복했을까요?

소년 동구는 착하고 속 깊은 아이였다. 동구는 자기가 저지르지 않은 잘못을 대신 짊어지는 아이였다. 오래된 갈등으로 돌이킬 수 없이 무너져가는 가정을 구하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동구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거침없이 내던졌다. 진심을 다한 그 아이의 몸부림에 독자들은 감동했고, 그 책은 오랫동안 사랑받았다.

 

17년 만에 다시 내놓는 나의 두 번째 성장소설에서, 나는 사납고 버릇없는 아이들을 옹호하고자 했다. 거칠게 폭발하는 아이들, 앙칼지게 대드는 아이들에게 대놓고 잘한다 잘한다 해주고 싶었다. 사나운 아이들은 이런 위선적인 일방향 소통을 거절하기로 결심한 아이들이다. 자기 생각이 있고, 그 주장을 펼칠 용기가 있고,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깽판조차 불사할 결의가 있는 아이들이다. 어른들은 사나운 아이들의 용기와 에너지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리고 침묵하는 착한 아이들이 억누르고 있는 감정과 욕망들을 밝고 안전한 곳으로 꺼내주어야 한다.

 

[내용정리]

 

미국인 엔더슨 가족에게 입양 :

설이가 아프다고 겨우 3주만에 돌려보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적응하지 못하고 죽을 듯이 아팠던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앤더슨 가족의 집에는 어딘지 외국 느낌을 주는 체리 향기 같은 것이 감돌았는데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그 달콤한 냄새에 속이 뒤집혀버렸다. 그들의 따뜻한 환영과 다정한 스킨십, 그리고 인내심 있는 기다림의 눈길조차도 그 냄새를 없앨 수는 없었다. 나는 속절없이 토하고 고열이 오르고 시체처럼 널부러져 있다가 결국 이모의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는데, 그 과정에 앤더슨 가족의 잘못이 크다고 말할 수 없다. 그들은 내가 죽을까 봐 진심으로 겁이 났고, 의사도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조언했을 뿐이다.

 

* 풀잎보육원 원장님 58. 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 뇌졸증

원장님이 나를 특별히 아꼈다. 나는 원장실에서 노는 것이 허용된 유일한 아이였다. 나는 소란을 떨거나 원장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며 원장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을 금방 터득했다. 책을 보는 게 서로에게 가장 좋았다. 원장님은 바쁘게 일하다가도 내가 기특하다며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었고 원장실에 새로운 책들이 떨어지지 않도록 신경을 썼다.

설이 전학을 알아봐라. 더 좋은 학교로. 나이가 들수록 입양은 어려워질 텐데, 설이가 잘살려면 더 좋은 학교에 가서 공부를 더 잘하는 수밖에 없다.

 

* 통백식당 할머니의 주선으로 우상초등하교에 전학.

교감선생님 :  온몸에 참기름을 발라서 아무데도 다치지 않고 호랑이의 목구멍에서 똥구멍까지 한 번에 미끄럽게 쏙 통과했다고 하는 그 강아지 말이다.

 

* 아이들의 도발은 담임의 시선이 사라진 순간에 찾아왔다. 내 가방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바랬다.

필통도 교과서도, 아무것도 없었다.

내 안에는 삶이 나에게 가져다준 억울함의 휘발유 통이 가득 쌓여 있었고

목구멍 아래에서 그것의 알싸한 냄새를 느끼곤 했다.

학교에서 나는 대체로 모범생이었지만

이런 도발을 맞이하면 그 휘발유 창고에서 몇 통 정도를 꺼내서 불을 붙였다.

가끔 불태워 내보내주지 않으면 억울함으로 한꺼번에 폭발해

펑 소리를 내며 흔적도 없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나는 호랑이에게 꿀꺽 삼켜진 것을 실감했다.

그들처럼 괴상한 웃음으로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거나 온몸에 참기름을 잔뜩 바르고

호랑이의 배 속에서 매끈매끈하게 살아남아야겠다고 결심했.

 

사라진 물건들은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나를 마음대로 밟아도 되는지 아닌지 점검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내 물건들을 함부로 버리거나 훼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문제가 되면 유치한 장난이었다고 둘러대기 위해 어딘가에 고이 숨겨두었을 것이다. 나는 그 물건들이 무사히 나에게 돌아올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죽지 않고 배짱 있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했다.

 

* 첫 번째 입양 : 부자집. 2년 후 그 집의 사업이 망하자 보육원으로 돌아옴.

* 두 번째 입양 : 대학교수집. 부인이 세상 떠나자 보육원으로 돌아옴.

* 세 번째 입양 : 앤더슨집에서 체리향만 맡으면 토해서 돌아옴.

 

* 동그라미를 그리려면 흔들리지 않는 중심점이 꼭 있어야 한다.

이모는 내가 어떤 호칭과 관련지어 변함없이 떠올릴 수 있게 된

이 세상 단 한 명뿐인 사람이었다.

이모는 내가 풀잎보육원에 처음 오던 날 우연히 그곳에 들렀고

그곳에서 아기를 돌볼 일손이 필요하다는 말에 자원봉사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작은 월급을 받으며 눌러앉았다. 내가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늘 풀잎보육원에 있었고 원장님이 풀잎보육원을 떠난 뒤로는

위탁모가 되어 나를 아예 집으로 데리고 왔다.

마른 들풀 같은 이모를 우주의 중심으로 삼아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가늠할 수 있게 되었다.

tv를 볼 때면 당연하다는 듯 이모의 무릎을 베고 누었고

이모는 참외를 깍아 내 입에 넣어주며 내 볼을 쓰다듬었다.

푸석푸석하고 부숭부숭한 이모의 손바닥이 내가 아는 인간의 감촉이었다.

이모가 아니었다면

나는 사람이 사람을 부르는 호칭들 속에

따뜻함을 불러일으키는 어떤 기운이 있다는 사실을 영원히 알 수 없었을 것이다.

 

* 사람들이 나에게 화를 내지만,

그 이유가 실은 다른 곳에 있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은 날이었다.

그걸 알고 나서 내 마음에 끼었던 먹구름이 깨끗이 사라졌다.

지금 누군가가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면 고맙겠다.

그들이 화를 내는 진짜 이유까지 알게 된다면, 상처는 나을 것이다.

- 이모가 가르쳐준 놀라운 비밀

 

* 시현 엄마

밀크티의 시현엄마와 딥브레인의 시현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 데다가 딥브레인을 거절하자 밀크티도 사라져, 결국 딥브레인의 답 없는 시현 엄마만 남았다. 함묵증에서 벗어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나는 어른에게 소리 지르는 아이가 되었다.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고 자란 많은 아이들이 고마우신 부모님께 왜 함부로 빽빽 소리를 지르고 못된 반항을 하는지, 나는 완전히 체득했다. 내가 받은 것이 축복받은 재능이든 유복한 환경이든, 그것을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발로 쾅쾅 짓밟기 전에는 이 저주받은 고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 곽은태 선생님

춤을 잘 추는 아버지와 춤을 잘 추는 시현이 사이에서 곽은태 선생님은 미움의 덫에 걸렸다. 내가 본 시현은 화내고 비웃는 시현이었다. 그 모습 이전에는 나비처럼 춤추다가 얼어붙어, 놀라고 겁먹은 눈으로 아빠를 보는 시현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모습이지만, 왠지 방금 내 눈으로 본 것처럼 낯이 익었다.

 

한때 저분의 동산처럼 넓고 든든한 어깨를 동경했던 적이 있었다. 그 위에서 자라는 아이라면 흔들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세상의 부모와 자식들에 대해서 대단한 착각을 하고 살았던 것 같다. 곽은태 선생님의 어깨는 한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위에서는 나비 한 마리도 중심을 잡기 힘들 것 같았다.

 

* 아코를 묻고 이모의 느낌

이모가 그날 느꼈던 무력함, 눈도 귀도 마비될 것 같은 막막함, 몸부림쳐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나는 익숙했다. 진저리 치게 싫은 그 느낌, 굳이 이름 붙이자면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숨 막히던 순간의 느낌이었다.

나는 평범하게 버려진 아이였고, 신년 방송의 압박에 시달리던 한 pd의 머릿속에 못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전까지는 음식물 쓰레기와 아무 관계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좁은 공간에 버려진 수치심, 외로움, 절망감, 악취까지 이미 알뜰히 내 것으로 섭취한 뒤였다. 그들은 사실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선사해주었다. 도대체 내 삶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일까?

 

나는 이모가 한 말을 이해했다.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막막함이 거짓이 아닌 것을 알았다. 자기 손으로 묻은 아코를 찾을 수 없는 사정도 이해가 되었다. 내게 또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고, 저 슬픈 얼굴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다고,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울리는 소리가 있었다.

 

* 나는 이모에게서 한 번도 뭐를 해라, 하지 마라 하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모는 내가 뭘 하는지도 잘 몰랐고, 내가 하는 일이면 다 좋은 거려니 생각했다. 이모가 내 친부모가 아니라서 사랑과 관심이 부족해서 그랬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이모가 나에게 퍼부어준 그 많은 미소, 언제나 든든하게 안아준 팔뚝,

내가 아플 때마다 곁에서 하얗게 새운 많은 밤들,

그리고 내가 입양과 파양을 거듭하며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돌아올 때마다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내가 돌아온 그곳에 있어주었던 긴 세월.

친부모의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이모가 나에게 준 것이 그보다 하찮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다.

 

* 이모에게 심술을 부리는 건 이모가 다 받아줄 거라는 확신이 있고,

그 확신이 너무너무 달콤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아이는 그런 흔들림 없는 터전을 만나면 발을 쿵쿵 굴러서

그 튼튼함을 확인하고 내심 기뻐하곤 한다.

그리고 이모는 바보 같으면서도 어딘지 귀신같은 데가 있어서,

내가 진짜 상태가 안 좋을 땐 정말 어쩔 줄 모르지만 이렇게 괜한 투정을 부리면

저런저런 하면서 장단을 맞춰줄 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 아기 때부터 네 배의 중심에는 나침반이 딱 서 있었어.

그걸 보고 생각했지. 이 아이는 방향을 잃어버릴 일이 없겠구나.

그러니까 난 아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구나.

넌 항상 네가 원하는 걸 알고 그쪽을 찾아가거든.

나침반은 처음엔 원래 많이 흔들리지만, 결국 옳은 방향을 향하니까.

 

* 납골당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이 폭발적인 눈물은 원장님과 나 사이에 사랑과 감사가 겨우 한 주먹은 아니었다고 소리 없이 속삭였다. 그것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무거웠다.

세상에는 끝내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이 존재한다. 땅속에 파묻힌 것이 아코인지 옥수수인지 확인할 수 없었던 것처럼, 확인해선 안되었던 것처럼, 여기까지, 여기까지였다. 눈물은 돌이킬 수 없이 잃어버린 것을 향한 억울함과 안타까움을 모두 실어 떠나보내라고 흐르는 투명한 강이었다.

그렇게 통곡의 강물에 몸을 맡기고 서 있자, 조금씩 평화로운 기쁨이 찾아들었다.

원장님은 저 세상에서 이 순간을 기뻐하셨을 것이다. 울고 있는 내 마음속에 미움과 사랑과 포기가 각각 얼마큼인지 따지지 않고, 분명히 그러셨을 것이다.

 

* 이모는 곽은태 선생님 부부에게 선생님이 되어줄 자격이 충분하다.

이모가 나에게 베풀어준 한결같은 사랑은

대부분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지만

겸손함을 내포한 그 따뜻함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드높아,

언제나 은은한 윤기를 내뿜었다.

 

* 우리 엄마도 그랬을 것이다.

어미 고양이가 새끼를 놓고 떠나가듯이 나를 풀잎보육원 앞 모퉁이에 두고 갔을 것이다. 이모와 원장님은 우리 엄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한 사람은 악착같이 기부금을 받고, 한 사람은 하염없이 사랑을 주었다.

이제는 그 일이 기분나쁘거나 고통스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에게도 자식을 키우는 건 몹시 힘든 일이라서

곽은태 선생님처럼 훌륭한 사람조차 완전히 길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가 그분들께 나를 맡긴 건, 비록 스스로 키우지 못했지만, 좋은 결정이었다.

 

* 이모는 설날 새벽에 버려진 아기를 사랑했다. 아기가 바로 나였다.

그것이 기적 같은 일이었다는 걸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모가 나를 사랑하는 건 너무 당연해서 감사하기는커녕 값없고 하찮게 느껴졌다.

별다른 감사조차 없이 당연하게 받아먹었던 그 소박하고 따스한 사랑이

기적인 걸 이제 알았다.

 

풀잎 위에서 자란 것도 괜찮다.

그 풀잎을 지키려 애썼던 원장님의 투쟁과 이모의 순박한 사랑,

그리고 참을 수 없이 싫었던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그 무엇도 빼거나 더할 수 없이 하나인 것을 이제는 알겠다.

많이 흔들렸지만, 나는 엄마가 나를 내려놓은 그곳에 두 발로 섰다.

그것을 생각하면 자꾸 콧대가 높아졌다.

새해 첫날 나는 언제나 얼굴을 찌푸리고 지냈는데,

이렇게 웃으며 맞이한 새해는 처음인 것 같았다.

 

* 독후감

존재의 본질 : 사랑, 겸손, 믿음, 감사, 친절, 용서

 

사람의 본질은 어느 것일까? 라는 질문이 던져졌을 때가 왜 없었을까?

그럼에도 그 질문이 나의 삶에서 녹아들지 않았던 것은 그 질문에 맞는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이를 읽고 난 한참 후인 지금, 그 질문에 조금 다가가는 느낌이 찾아왔다. 이것이구나!

먼저 나의 삶에서 사람의 본질에 대한 생각이 치열하게 오간 뒤에 설이를 읽고 정리한 노트를 다시 보니

작가는 본질과 껍데기를 구분하였고 본질이 아닌 것을 추구할 때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설이의 입을 통해서 말하게 한다.

 

설이는 이모의 헌신에 대해서 전에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랑이었다고 했지만

사랑의 본질인 겸손함을 내포한 그 따뜻함은 그 자체로 존귀하고 드높아 윤기가 흘렀다고 말한다.

 

곽은태선생님과 부인으로 대별되는 딥브레인.

그것은 아이를 성공의 반열에 올리고자 하는 실력이 먼저 수반되어야 하는 고가의 과외수업이다.

본인의 아들 시현이는 실력이 안되어서 합류를 할 수 없고 설이는 실력이 되지만 공부를 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없고 

빡빡해서 거부했다춤을 좋아하는 시현에게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는 시현 부모에게 

사랑의 본질에 관해서 이모는 훌륭한 스승이라고 설이는 말한다.

 

나를 죽일 수 없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하리라.

진부하지만 이것들은 삶의 본질에 관한 많은 사람들의 사유에서 비롯된 결과물의 표현이다. 어쩌면 이것이 맞나? 이렇게 의심하기도 하지만 나를 시험하는 시련은 파도처럼 오갈 것이다. 파도의 본질은 쉴 새 없이 크게든 작게든 움직인다는 것.

그러함에도 한번 다녀간 느낌, 삶의 본질에 관한 사유는 오히려 본질을 강화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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