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부실이 2022. 10. 19. 14:17

*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우리가 놓치는 민주주의 위기 신호

 

* 스티븐 레비츠키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 정당,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라틴아메리카의 정권 교체 등에 중점을 두고 연구해왔다.

* 대니얼 지블랫

하버드대 교수이자 정치학자. 19세기부터 현재까지의 유럽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연구의 독보적인 권위자다.

 

* 책 날개 안쪽

트럼프 당선 직후, 전통을 자랑하는 민주주의조차 쉽게 무너질 수 있음을 깨달은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 그들은 [뉴욕 타임스]트럼프는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가?’라는 제목으로 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칼럼을 썼다. 이 책에서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다분한 극단주의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조건에서 선출되는지, 선출된 독재자들이 어떻게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지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두 저자는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매우 유사한 패턴으로 무너졌음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 패턴 속에서

후보를 가려내는 역할을 내던진 정당, 경쟁자를 적으로 간주하는 정치인, 언론을 공격하는 선출된 지도자등 민주주의 붕괴 조짐을 알리는 명백한 신호들을 찾아냈다.

1장 민주주의자와 극단주의자의 치명적 동맹

 

1922년 베니토 무솔리니 :

무솔리니가 정권을 잡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자신의 당이 의회에서 차지했던 35(535석 중), 기성정치인들의 분열, 사회주의에 대해 만연한 공포, 3만 명에 달하는 위협적인 검은셔츠단을 활용하여 소심한 국왕인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관심을 샀다.

무솔리니 득세와 사회주의 후퇴로 이탈리아의 정치 질서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주식시장도 회복되었다. 그러자 졸리티나 사란드라 같은 원로 정치인들 역시 당시의 변화를 환영했다. 그들은 무솔리니를 유용한 인물로 보았다. 그러나 이솝우화에 등장하는 말처럼 이탈리아는 조만간 마구에 묶이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기존 엘리트 집단은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으며, 나중에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어긋나고 말았다.
그들은 두려움과 야심, 그리고 판단 착오라는 치명적 실수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들은 권력의 열쇠를 잠재적 독재자에게 기꺼이 넘겨주었다.

 

* 우고 차베스( ~2013) : 1998년 즈음, 베네수엘라는 비리로 몸살을 앓고, 경제가 어려워 혼란 속에 있었다. 당시 부정부패를 없애고 복지 정책을 강화하겠다고 외치던 차베스는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으며 당선되었다.
대통령이 된 이후, 주민소환`쿠데타 등의 사건이 발생하여 정치적인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결국 재선을 거듭하며 14년간 집권하였다. 석유가 많이 생산되는 점을 활용하여, 무상 교육, 무상 의료와 같은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질서에 반대하며 남미의 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했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국제 석유값 하락으로 인해 국가 경제가 매우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때문에 중공업, 상공업에 투자하기 보다는 석유시장에만 의존하며 적극적인 복지를 폈던 차베스의 정책에 대해서는 그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제툴리우 바르가스 : 브라질의 산업화를 선도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장하고 의무교육을 대대적으로 도입했으며 인종차별과 여성차별 등의 악습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브라질 사회의 통합을 적극적으로 주도했다는 긍정적인 평과 함께 임기 전반기에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독재정치를 펼친 데다가 2기 집권시에는 민주주의적인 정책을 펼쳤다고 하지만 경제적으로 침체일로에 빠졌다는 점 때문에 비난을 동시에 받는다.


그리고 바르가스는 비록 분배정책을 펴고 노동자와 여성, 흑인들의 권리를 향상시켜서 브라질의 발전을 도모한 것 자체는 높게 평가하면서도, 목장주 출신이라는 출신성분 덕택에 대지주들을 제압해서 집권했음에도 막상 토지개혁에는 미적지근거렸고, 현재까지도 소수의 지주들이 브라질 농토의 대부분을 독식하는 구조가 유지되어서 브라질 사회의 문제점인 극심한 빈부격차가 유지되었다는 한계점을 지적하는 평도 있다.


1930년 군부의 쿠데타로 집권한 이후 장기 집권을 한 독재자. 중남미 포퓰리즘의 선구자격이 되는 인물 중 하나로 이 때문에 평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이웃나라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과도 비교되기도 하는 인물로 파시즘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편으로는 인종차별을 철폐하는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바르가스의 이름을 따서 설립된 제툴리우 바르가스 재단은 현재도 중남미에서 싱크탱크로 유명하다.


* 알베르토 후지모라 : 페루의 제90대 대통령. 일본인 이민 2세 출신으로, 199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나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의 범죄를 저질러 축출되었다.
* 아돌프 히틀러 :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 독일군에 자원입대했다. 전쟁에서 패배하자 이후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했다. 반혁명 반유대주의 정당인 독일노동당(이후의 나치당)에 입당한 뒤, 총서기와 총리를 역임한 후 1934년 총통에 취임했다. 19399월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 무솔리니 : 유럽 최초의 파시스트 지도자로서 이탈리아를 세계대전 속으로 끌어들여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 인물이다. 그는 뛰어난 대중연설로 이탈리아 총리에 올랐다. 이후 권위주의 통치를 통해 1인 독재 체제를 확고히 했다. 그러나 히틀러와의 동맹관계를 구축하면서 2차세계대전의 늪에 빠졌다.

* 노련한 정치인들의 순진함

노련한 기성 정치인들이 왜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른 걸까?

1933년 아돌프 히틀러의 등장. 히틀러는 1923년 폭행으로 9개월간 투옥. 그 기간 동안에 쓴 자서전 나의 투쟁이다. 석방 후 히틀러는 공식적인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1930년 초 경제가 흔들리면서 중도우파 세력이 경쟁에서 밀려났고 공산주의와 나치가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

 

선거로 세워진 정부는 19303월 대공황의 고통 속에서 무너졌다. 당시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국가 비상사태에서 대통령이 수상을 임명할 수 있다는 헌법 조항을 실행에 옮겼다.

1933년 보수주의 정치인들은 뭔가 타협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회동을 가졌고 한 가지 합의안을 마련했다. 그것은 대중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아웃사이더 인물인 히틀러를 수상 자리에 앉히는 것이었다. 그의 높은 인기를 이용.

이탈리아와 독일의 시나리오는 독재자를 권력에 앉힌 치명적 연합의 대표 사례다.
경제 위기와 여론 악화, 선거 패배는 노련한 정치인들조차
판단의 시험대에 들게 만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카리스마 있는 아웃사이더가
기성 질서에 도전하면서 정치 무대로 올라설 때
그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여 이용하겠다는 생각은 정치인에게 대단히 유혹적이다.
이와 같은 악마의 거래는
기성 정치 세력이 아웃사이더에게 정당한 도전자의 자격을 부여할 때 아웃사이더에게 유리하게 흘러간다.

 

무솔리니 : 1920년대 초 이탈리아의 경우

파업이 늘고 사회불안이 고조되면서 정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수상 졸리티는 갑자기 정치 무대에 뛰어오른 무솔리니의 인기를 이용하기 위해 국민당, 파시스트, 자유당으로 이루어진 선거 동맹인 부르주아 연합을 맺었다. 하지만 부르주아 연합은 선거에서 20%, 무솔리니는 연합 내에서 자리를 지켰고, 그의 세력은 이를 기반으로 권력에 도전할 자격을 얻었다.

 

우고 차베스의 집권 :

1980년대 접어들면서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 경제가 위기를 맞았고, 경기 침체가 10년 넘게 이어지면서 빈곤율은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국민 불만은 커지고 1989년에 일어난 대규모 폭동은 기성 정당에 위기의식을 가져다주었다.

19922: 우고 차베스가 이끄는 혁명군 하급 장교집단이 대통령에게 반기.

쿠데타 실패. 199211월 두 번째 쿠데타도 실패 차베스는 투옥.

이후 그는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기로 노선을 바꿨다.

칼데라는 차베스의 반정부 지지층과 손을 잡음으로써 대중의 인기를 얻었고 이를 기반으로 1993년 대선에 출마. 칼데라와 차베스의 공식 연합은 그 전 대통령의 정치 입지를 강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차베스에게 새로운 신임장을 주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 차베스 모두 흡사한 여정을 거쳐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그들 모두 대중의 관심을 사로잡는 기술이 있었을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인들이 경고신호를 무시하고 권력을 쉽게 넘겨주거나(히틀러와 무솔리니) 혹은 정치 무대에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주었기(차베스) 때문에 권좌에 오를 수 있었다. 기존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책임을 저버릴 때 그 사회는 전제주의로 들어서는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 독재자를 감별하는 법

많은 독재자는 권력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 고유한 조짐을 드러낸다. 그들에게는 뚜렷한 경력이 있다. 히틀러는 쿠데타에 실패했고, 차베스 역시 무장봉기에 실패했다.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은 의회 폭력에 가담했다. 20세기 중반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은 쿠데타에 성공했다. 일부는 처음에는 민주주의 규범을 성실히 따르다가 나중에 본색을 드러낸다.

 

* 잠재적인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신호( 민주주의 정권의 몰락 : 린츠. 1978)

. 말과 행동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거부
. 경쟁자의 존재를 부인
. 폭력을 용인하거나 조장
. 언론의 자유를 포함하여 반대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정치인.

 

포퓰리스트는 기성정치에 반대한다.

그들은 자신이 국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부패하고 음모를 꾸미는 엘리트 집단과 전쟁을 벌이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기존 정당 체계의 가치를 부정하면서

기성 정치인들을 비민주적이고 비애국적인 자들로 매도한다.

또한 지금의 통치 시스템은 가짜 민주주의임을 유권자에게 강조한다.

 

* 정당이라는 문지기

잠재적 독재자를 걸러내야 할 일차적 책임은 민주주의 문지기인 정당과 그 지도자들에게 있다. 주요 정당이 문지기 역할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극단주의 세력을 고립시키고 억제할 힘이 있어야 한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은 여러 방식으로 거리두기를 실행할 수 있다.

 

첫째, 잠재적인 독재자를 선거 기간에 당내 경선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정당 지도자는 선거에서 이길 가능성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극단주의자를 고위직 후보자로 공천하려는 유혹을 떨쳐내야 한다.

 

둘째, 정당의 조직 기반에서 극단주의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스웨덴 : 보수당 산하 스웨덴 민족주의 청년동맹은 1930년대 초 급진적인 형태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의회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히틀러를 지지하면서 돌격대를 조직했다. 1933년 스웨덴 보수당은 이 집단을 당에서 제명했다. 그들은 거리두기 전략을 선택함으로써 스웨덴 최대 중도우파 정당에서 반민주주의 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저지.

 

셋째, 반민주적인 정당이나 후보자와의 모든 연대를 거부함으로써 거리두기를 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당도 때로 선거에서 이기고 의회를 장악하기 위해, 혹은 내각을 구성하기 위해 극단주의자와 손을 잡으려는 유혹을 느낀다. 그러나 이러한 연합은 장기적으로 파괴적인 결과로 이어지고 만다.

 

넷째, 극단주의자를 체계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1930년대 초 독일 보수당이 히틀러와 합동 집회를 갖거나 칼데라가 차베스 지지 연설을 했던 것처럼 잠재적인 독재자를 정상인으로 보이게끔 만들거나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다섯째, 극단주의자가 유력 후보자로 떠오를 때 주요 정당들은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용기 있는 지도자는 급박한 순간에 민주주의와 국가를 당의 이익보다 앞세우고, 또한 유권자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연합을 통해 민주 세력을 집결함으로써 극단주의자가 권력을 차지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 극단주의를 막기 위한 일시적 동거(문지기 역할)

벨기에 가톨릭당 지도부 1936: 극단주의 렉스당과 결별

벨기에 총선이 이뤄질 무렵 파시즘은 이탈리아와 독일을 넘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었다. 1936년 선거는 중도 세력을 흔들어놓았다. 가톨릭당은 딜레마에 처해 있었다. 그들은 오랜 경쟁자인 사회당`자유당과 협력할 것인지 아니면 이념적으로는 가깝지만 민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렉스당과 우파 연합을 형성할 것인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렉스당과의 협력으로는 당의 정체성을 지킬 수 없다고 판단 내렸다.

 

반민주주의 세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이중 전략을 취했다.

우선 가톨릭당 지도부는 렉스당에 동조하는 인사들을 확인하고, 극단주의 입장을 표명한 당원들을 제명했다. 그리고 극우 세력과 거리두기를 시작했다. 다음으로 외부적으로는 렉스당에 맞섰다. 렉스당과 가톨릭당 사이의 마지막 충돌은 1936년 선거 후 새로운 내각 수립 과정에서 일어났다. 거기서 렉스당은 권력의 주변부로 물러났다.

 

가톨릭당이 우파 연합을 선택하지 않았던 데는 벨기에 국왕과 사회당의 역할이 컸다. 1936년 선거를 통해 사회당은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했고, 내각 수립에서 주도권을 쥘 수 있었다. 연립 내각에는 보수주의 정당인 가톨릭당과 사회당은 포함되었지만 양쪽 진영 모두에서 반체제 세력은 제외되었다. 물론 사회당은 가톨릭당 인사인 젤란트를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않았지만, 당의 이익보다 민주주의 수호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연립 내각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핀란드 : 1929년 극우파 라푸아 운동을 배제

핀란드 극우파 집단인 라푸아 운동이 갑작스럽게 정치판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핀란드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시작했다. 라푸아 운동이 점점 과격한 양상을 보이면서 핀란드의 기존 보수당들은 단호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1930년대 말 농민조합운동, 자유진보당, 인민당 대다수가 폭력적인 극단주의자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이념적 경쟁자인 사회민주당과 손을 잡고 연합 전선을 형성하였다. 또한 보수주의 대통령도 라푸아 운동과의 관계를 끊었고, 결국에는 이들의 정치 활동을 금지했다. 핀란드의 파시즘 열풍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오스트리아(문지기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 : 2016년 극우주의 호퍼 배제

2016년 오스트리아 대선에서는 중도우파 정당인 국민당이 급진적인 우파 정당인 자유당을 물리쳤다. 녹색당 전직 의장 판데어벨렌과 극단주의자인 자유당 당수 호퍼의 도전을 받았다.

당시 보수주의 국민당 일부 인사를 비롯하여 주요 정치인들은 호퍼와 그의 자유당에 승리를 내줘서는 안된다고 믿었다. 호퍼는 이민자에 대한 폭력을 용인한 전력이 있었다. 또한 많은 이들은 호퍼가 대통령이 되면 자유당에 특혜를 베풀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 오스트리아의 오랜 전통이 무너지게 될 것이었다. 이러한 위협에 직면한 일부 국민당 인사는 호퍼를 물리치기 위한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그리고 그들의 이념적 경쟁자인 진보주의 녹색당 후보 판데어벨렌을 지지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미국 사회는 끊임없이 전제주의 위협을 겪었다. 코글린과 롱, 매카시, 그리고 윌리스 같은 인물이 30%에서 40%에 달하는 지지율을 얻었다. 잠재적 독재자의 위협으로부터 미국 사회를 지켜 준 것은 민주주의 문지기, 다시 말해 미국의 정당 체제였다.

 

* 비민주주의가 지켜온 민주주의

1920년 공화당 후보로 워런 하딩 결정. 공화당 권력자들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보다 안전한 후보자를 선정하는 데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극단주의 후보를 걸려낼 수 있었다.

 

1787년 미국 헌법은 세계 최초로 대통령제를 만들어냈다. 대통령제는 문지기 역할을 중요한 과제로 남겼다. 대통령은 의회의 일원이 아니며, 다수당이 선출하지도 않는다. 적어도 이론적으로 대통령은 국민이 뽑는다. 그리고 누구나 대선에 출마할 수 있으며, 최고 득표자가 대통령이 된다.

 

건국의 아버지들은 문지기 역할에 주목했다.

헤밀턴 : 건국자들이 고안한 장치는 바로 선거인단이었다.

우리는 처음에 국민에게 아첨했다가, 대중선동가로 변신하고, 결국에는 폭군으로 군림해서 공화국의 자유를 허물어뜨린 인물들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헤밀턴은 대통령을 투표로 선출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위험을 걸러내는 특별한 장치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간접선거제에서 각 주의 유명 인사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최종적으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책임을 진다.

헤밀턴은 이러한 시스템에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인물이 대통령 자리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며, 또한 음모를 꾸미고 인기에 영합하는 인물은 걸러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렇게 선거인단은 미국 정치의 고유한 문지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 시스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유는 건국자들의 고유한 설계에 두 가지 결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헌법은 대통령 후보 선출 방식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선거인단은 국민투표가 모두 끝난 이후에 활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후보 선정 과정에서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다. 둘째, 헌법은 정당에 대해서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1800년대 초 정당이 성장하면서 미국 선거제도의 작동 방식이 바뀌었다.

각 주는 정당 지지자를 선출하기 시작했다. 대의원은 이제 정당의 대리인이 되었고, 이 말은 곧 선거인단이 문지기 역할을 정당에 넘겨주었다는 뜻이다. 이후 정당들은 이러한 시스템을 계속 유지했다.

 

정당은 미국 민주주의의 관리인이 되었다.
정당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함으로써
위험한 선동가가 대통령이 되지 못하게 막는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았다.
정당은 두 가지 역할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우선 민주주의 관리자로서 유권자의 뜻을 가장 잘 대변하는 후보자를
선출해야 한다.
다음으로 걸러내기 기능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에서 위협이 되거나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을 걸러내야 한다.

 

* 문지기가 제 역할을 할 때

1830년 초부터는 각 주의 대의원이 참석하는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를 결정했다. 여기서 대의원은 일반 투표가 아니라, 주 및 지역 정당위원회에서 뽑혔다. 그들에게는 특정 후보를 지지해야 할 의무는 없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대의원은 그들을 전당대회로 보낸 정당 지도부의 결정을 따랐다. 그랬기 때문에 이러한 방식은 당의 내부자들, 그리고 대의원을 통제하는 정당 지도부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유리했다. 주 및 지역 정치인들로 이루어진 정당 네트워크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 인물이 대선 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1901년 프라이머리 제도가 도입되었다.

선출된 대의원들은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특정 후보에게 표를 던질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인사와 보조금을 비롯한 다양한 혜택에 관한 권한을 갖고 있는 당 지도부는 이러한 문제를 조율할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대통령제의 문지기 역할을 계속 해낼 수 있었다. 실질적인 힘은 여전히 당 내부자들, 혹은 오늘날 말하는 조직인에게 주어져 있었다. 이들의 지지를 얻는 것이야말로 대선 후보로 지명받기 위한 유일하고 확실한 방법이었다.

이러한 전당대회 시스템의 오랜 역사는 문지기 역할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균형의 개념을 잘 보여준다. 이들 원로 정치인은 말 그대로 정당 네트워크의 핵심 구성원이다.

 

정당내부자들은 동료평가의 기능을 했다.
시장과 상원 및 하원의원들은 대선 후보자들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후보자들과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환경에서 함께 일했기 때문에
그들의 성격과 이념, 그리고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밀실회의는 평가 시스템으로 기능했고,
이를 통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대중 선동가와 극단주의자를
당 밖으로 쫓아낼 수 있었다.
미국 정당의 문지기 기능은 대단히 효과적이어서,
외부 인사는 후보자 명단에 좀처럼 이름을 올릴 수 없었다.

 

* 강해진 프라이머리(예비선거), 약해진 정당

변화의 전환점은 1968년이었다.

로버트 케네디 암살 후 부통령 허버트 험프리는 프라이머리에서 경쟁을 하지 않고 후보 지명을 받음. 시카고 전당대회에서 벌어진 사건은 당 내부자가 주축이 된 대선 후보 지명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혔다. 로버트 케네디 암살에 따른 충격과 베트남 전쟁을 둘러싸고 고조되는 갈등, 그리고 반전 시위대의 뜨거운 열기는 시카고 전당대회가 열리기 전부터 기존의 후보 지명 시스템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증폭시켰다.

 

1968년 대선에서 험프리가 패배하면서, 민주당은 맥거번-프레이저 위원회를 설립하고 후보 지명 시스템을 새롭게 검토하도록 했다.

 

민주당과 공화당은 1972년을 시작으로 전당대회에 참석하는 대의원 대부분을 각 주의 프라이머리와 코커스(정당집회)를 통해 선출했다. 후보들은 대의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이들을 미리 선출해두었다. 당 지도부에 의존하지 않고, 또한 전당대회의 밀실 협상과도 무관한 이들이 처음으로 대선 후보를 뽑게 되었다.

민주당의 경우 많은 주에서 비례대표제, 그리고 여성과 소수민족의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을 받아들였다. 양당은 구속력 있는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자 선택 과정에서 당 지도부의 영향력을 크게 약화했고, 그 과정을 유권자에게 열어놓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개방적인 정치 절차 : 조지 맥거번(1972) : 대선 후보로 지명을 받기 위해 당 체제를 거쳐야 할 필요가 없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정당의 문지기를 건너뛰고, 그 힘을 무력화할 수 있게 되었다.

민주당 : 초기 프라이머리에서 불안정과 분열을 겪었던 민주당은
1980년대 초에 한 걸음 후퇴했다.
그들은 전국 대의원의 일부는 프라이머리에서 선출하는 것이 아니라,
당이 임명하는 선출직 공직자가 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주지사, 대도시 시장, 상원 및 하원 의원)
전국 대의원 가운데 15~20%에 해당하는 이러한 슈퍼대의원
프라이머리 투표자들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맡고,
당 지도부가 승인하지 않는 후보를 차단하는 시스템으로 기능한다.
공화당 : 1980년대 초 레이건 행정부와 함께 순조로운 항해를 시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슈퍼대의원의 필요성을 전혀 느끼지 못했고,
민주적인 후보 지명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치명적인 선택을 내리고 말았다.

 

프라이머리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거 자금과 호의적인 언론 기사, 그리고 더욱 중요하게 모든 주에서 활발하게 뛰어줄 인력이 필요했다. 또한 프라이머리라고 하는 힘든 장애물 경주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후원자와 언론인, 이익단체, 사회운동가, 그리고 주지사와 시장, 상원 및 하원 등 주 단위의 주요 인사들과 연합을 형성해야 했다.

 

1976년 아서 하들리 : 이처럼 힘든 과정을 보이지 않는 프라이머리라고 표현했다.

그는 프라이머리 시즌 이전에 시작되는 일련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후보를 선출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점에서 선출된 공직자, 사회운동가, 이익집단 등 정당 체제의 구성원들이 그 게임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들리는 이들의 지지 없이 양당에서 후보 지명을 받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왜 정치인들은 잠재적 독재자를 방조하는가

 

도널드 트럼프(1946~) :

미국의 기업인·정치인. 45대 미국 대통령을 지냈다. 기업인으로서는 주로 부동산업에 종사했으며, 트럼프 오거니제이션의 회장으로 2004년부터 미국 NBC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를 진행했다. 201611월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여 미국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재임 중 미국 우선주의를 채택하여 외교와 경제 정책을 추진했다. 2020113일 시행된 선거에서 접전 끝에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선거인단의 과반을 확보하면서 연임에 실패했다.

 

1972년 시작된 프라이머리 시스템(당 내에서 예비 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은 특히 특정 형태의 아웃사이더에게 약점을 드러냈다. 그들은 바로 보이지 않는 프라이머리를 건너뛸 정도로 엄청난 부와 인기를 누리는 유명인들이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정당 문지기들은 힘을 크게 잃었다. 첫째, 연방대법원의 2010년 판결 덕분에 외부 자금을 선거운동에 훨씬 더 수월하게 끌어들일 수 있게 되었다. 자금이 풍부한 프라이머리 후보자들의 약진은 미국의 정치 환경이 보다 개방적이고 유연해졌음을 나타내는 현상이었다.

정당 문지기의 힘을 위축시킨 또 다른 요인으로 대체 언론, 특히 케이블 뉴스와 소셜 미디어 산업의 성장을 꼽을 수 있다. 새로운 매체 환경에서는 보다 쉽고 빠르게 인기와 대중적 지지를 끌어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공화당 쪽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 트럼프 당선의 핵심 원인

도널드 트럼프의 정치 성공에는 대통령으로 당선되기까지 문지기 기능의 마비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프라이머리, 실제 프라이머리, 그리고 본 선거였다.

 

트럼프는 기존 언론을 정당의 지지와 전통적인 선거운동의 대체물로 활용하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디지털 시대의 자질을 갖춘 맞춤형 후보자인 트럼프는 끊임없는 논쟁거리를 빚어내는 방식으로 주류 방송 채널을 공짜로 활용했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 내부자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2016년 그들은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완전히 포기하고 말았다.

 

* 예정된 독재자의 탄생

도널트 트럼프는 공직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그의 대중 선동술과 이민자 및 이슬람인에 대한 극단주의적 입장, 시민사회의 규범을 경멸하는 태도, 그리고 푸틴을 비롯한 여러 독재자에 대해 늘어놓은 칭찬은 다양한 언론과 정치 세계에서 혐오감을 자아냈다. 트럼프는 독재자를 구별하는 우리의 리트머스 테스트 네 항목 모두에서 양성반응을 보였다.

 

첫 번째 : 민주주의 규범을 준수하려는 의지의 박약이다. 선거절차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2016년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는 전례 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두 번째 : 상대의 정당성에 대한 부정이다. 전제적인 정치인은 경쟁자를 범죄자, 파괴분자, 매국노, 혹은 국가 안보 및 국민의 삶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비난한다. 경쟁자인 힐러리를 범죄자로 규정하고, 구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 번째 : 폭력에 대한 조장과 용인이다. 정당의 폭력 행사는 종종 민주주의 붕괴의 전조가 된다. 트럼프는 선거운동 기간에 지지자들의 폭력을 용인했을 뿐 아니라, 때로는 이를 조장하기까지 했다.

 

네 번째 : 경쟁자와 비판자의 시민권을 억압하려는 시도다. 오늘날 독재자와 민주주의 지도자를 구분하는 기준은 비판에 대한 대응 방식이다. 독재자는 야당과 언론 및 시민사회에서 자신을 비난하는 이들을 권력을 이용하여 처벌한다.

 

리처드 닉슨을 제외하고 20세기 동안 주요 정당의 대선 후보들은 네 항목 중 단 하나도 충족시키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는 네 가지 항목을 모두 충족한다. 또한 닉슨까지 포함하여, 미국 현대 역사에서 어떤 주요 대선 후보도 헌법적 권리와 민주주의 규범을 무시하겠다는 의지를 공식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트럼프는 미국 대통령제를 설계했던 해밀턴을 비롯한 모든 건국자들이 우려했던 바로 그러한 유형의 인물인 셈이다.

 

* 왜 독재자에게 순순히 권력을 넘기는가(집단적 포기)

첫째,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이다.

둘째, 집단적 포기를 택한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경우에 해당된다.

2016년 공화당 인사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그를 제어함으로써 민주주의 제도를 지켜야 한다는 역할을 저버림으로써 미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민주주의를 잃는 것은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일이다. 이런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공화당은 평소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결단, 즉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하는 과감한 선택을 내렸어야 했다.

사회적 비난에도 불구하고 공화당 지도부 대부분은 트럼프를 지지함으로써 당의 통합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이번 대선의 특별한 상황을 양당 후보가 경쟁하는 일반적인 상황으로 돌려놓았다.

 

이러한 전환은 대단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첫째, 최근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는 유권자 집단의 유동성을 증발시켜버렸다.

미국 사회는 점차 공화당, 민주당 지지자로 뚜렷하게 양분되고, 독립적이거나 유동적인 집단의 비중은 크게 줄어들었다. 자기 당에 대한 충성심과 상대 정당에 대한 적개심은 더욱 높아졌다. 유권자 집단의 유동성이 줄어들면서,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미국 대선은 후보자와 상관없이 점차 접전 양상을 띠기 시작했다.

 

 

 

 

 

 

 

 

주주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

일본인 이민 2세 출신으로, 1990년에 대통령에 당선되어 경제 성장과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나 부정부패와 인권탄압 등의 범죄를 저질러 축출되었다.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1995년 재선에 성공. 재임 중의 불법행위로 재판을 받아 2010년 페루 대법원에서 25년 징역형이 확정.

 

* 대중선동가에서 독재자로

민주주의 규범을 허무는 선동적 지도자와 위기를 느낀 기성 정치 세력 사이에 고조되는 갈등의 결과로 민주주의는 붕괴한다. 붕괴의 과정은 대개 말로 시작된다. 대중선동가는 비판자를 적이나 체제 전복자, 심지어 테러리스트라며 도발적으로 비난한다.

우고 차베스 : 비판자를 이나 반역자라고 칭했다.

후지모리 : 자신의 정적들을 테러리스트나 마약 조직과 연결시켰다.

실비오 베르루스코니 : 불리한 판결 내린 판사들을 공산주의자로 몰아세웠다.

라파엘 코레아(에콰도르 대통령) : 자신을 비난한 언론을 궤멸해야 할 중대한 정적

에르도안(터키 총리) : 저널리스트들이 테러리즘선전에 동원되고 있다며 비판.

많은 선동가들은 말을 넘어 행동으로 옮겨간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포와 적대감, 그리고 불신을 부추긴다.
그러나 이들의 적대적인 표현은 부메랑으로 돌아오곤 한다.
위협을 느낀 언론은
정부를 어떻게든 무력화하기 위해 자제와 전문가로서의 윤리를 저버린다.
또한 야당은 공공의 선을 위해 탄핵이나 대규모 시위, 혹은 쿠데타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하여 정권을 허물어뜨릴 방안을 모색한다.

 

후안 페론 : 1946년 아르헨티나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많은 비판자들은 그를 파시스트로 보았다.

차베스 : 야당은 정신적 무능력을 근거로 차베스를 탄핵하기 위해 정신과 전문팀을 구성해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했다. 유명 일간지와 TV 방송국 역시 차베스를 축출하기 위한 초헌법적 방안을 지지했다.

민주주의는 험난한 과정의 연속이다.
민주주의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협상과 양보, 타협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후퇴는 피할 수 없고, 승리도 언제나 부분적이다.
대통령이 발의한 법안은 의회 승인을 얻지 못하거나
사법부의 반대로 무산될 수 있다.
모든 정치인은 이러한 제약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정치인은 제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그리고 비판의 장벽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다.


아웃사이더들에게, 특히 선동 성향이 강한 독재자들에게
이와 같은 민주주의의 속성은 견디기 힘든 속박이다.
견제와 균형은 그들에게 멍에와 같다.
법안을 발의할 때마다 당 대표와 오찬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던 후지모리 대통령처럼
잠재적 독재자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일상적 정치 과정에서 인내심 부족을 드러낸다.

 

* 심판 매수

선출된 독재자는 그들을 제어하도록 설계된 민주주의제도를 어떻게 허물어뜨리는가?

민주주의 붕괴는 초반에 단편적인 형태로 일어난다. 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려는 독재자의 시도는 종종 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진다. 독재자는 의회 승인을 얻고, 대법원으로부터 합법 판결을 받는다. 가령 부패와의 전쟁, 부정선거방지법, 민주주의 의식 개선, 국가 안보 강화와 같은 시도는 대부분 합법적이며, 심지어 공공의 이익을 위한 노력으로 비춰진다.

심판 매수는 보호막 이상의 기능을 한다.
독재자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정적을 차단하고 동지는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는다.
세무 기관을 앞세워 야당 인사와 기업인, 언론인을 공격한다.
경찰은 야당 지지자와의 시위는 탄압하면서도 친정부 인사의 폭력은 묵인한다.
정보기관을 이용해 정부 비판자를 감시하고, 이들을 협박할 근거를 찾는다.
심판 매수는
주로 공직자나 비당원 관료를 해고하고, 충신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빅토르 오르반 : 헝가리 총리. 헝가리의 트럼프.

2010년 권력에 복귀한 뒤 명목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검찰과 감사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 중앙통계처, 헌법재판소를 여당 인사로 채워 넣었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 정보 자문 몬테시노스가 이끄는 페루 국가정보원은 수백 명에 달하는 야당 정치인과 판사, 의원, 기업인, 언론인 및 편집자 들이 뇌물을 주고받고, 매춘을 하는 등 다양한 불법 행동을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으로 그들을 협박했다.

 

심판 매수를 위한 가장 극단적인 방법은 대법원을 해체하고 새로운 대법원을 구성.

차베스 : 차베스는 제헌의회 구성을 위한 선거를 제안했다.

이를 통해 그는 대법원 판결을 뒤집고 사법부를 포함하여 국가의 모든 기관을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자 했다. 대법원은 결국 차베스의 요청을 받아들였고, 이러한 시도를 합법으로 인정했다.

 

* 경쟁자, 매수하거나 탄압하거나 : 심판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난 뒤, 선출된 독재자는 정적에게 시선을 돌린다.

현대의 많은 독재자들은 갈등의 불씨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쪽을 택했다.

: 이탈리아 무솔리니,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또 다른 많은 독재자들은 정권에 타격을 입힐 수 있는 주요 선수들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택했다(잠재적 정적을 다루는 가장 쉬운 방법은 매수).

, 이들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들거나 뇌물을 준다. 야당 정치인과 그들을 후원하는 기업가, 주요 언론, 혹은 도덕적 신망이 높은 종교계와 문화계 인사들이 그 대상이다.

선출된 독재자들 대부분 정치`경제`언론 분야의 주요 인사에게 공직을 제안하거나, 노골적으로 뇌물을 먹임으로써 입을 틀어막거나, 중립을 지키도록 강요한다. 정권에 우호적인 경영자는 수익성 높은 사업권이나 정부 계약을 따낼 수 있다.

 

매수되지 않은 선수들 : 독재자는 정적에 대한 탄압을 합법으로 포장한다.

페론 정권 : 야당대표 발빈을 존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옥. 발빈은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이미 페론이 대법원 재구성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에 구제받지 못했다.

말레이시아 총리 : 경찰조직과 재구성된 대법원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최대 정적인 안와르 이브라힘을 수사했고 동성애 혐의로 잡아넣었다.

베네수엘라 : 2014년 야당 대표 레오폴드 로페스는 폭력을 선동했다는 혐의로 체포.

 

독재 정권은 종종 명예훼손이나 모욕죄 혐의로 소송을 함으로써 반정부 성향이 강한 언론을 합법적으로경기에 뛰지 못하게 막는다.

에콰도르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 주요 일간지가 자신을 독재자라고 칭한 사설을 게재한 것에 명예훼손으로 4천만 달러의 소송, 승소.

터키의 에르도안과 러시아 푸틴 정권 : 법률을 활용해서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주요 언론사가 공격을 당할 때 다른 언론사들은 자세를 낮추고 자체 검열을 하게 된다. 차베스 정권이 언론에 대한 공격 수위를 높였을 때 야당 친화적인 방송국도 야당 기사를 거의 다루지 못한다.

 

선출된 독재자는 야당을 지지하는 기업 경영자도 공격 대상으로 삼는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 : 2000년 취임 후 러시아 최고 기업가(올리가르히 : 신흥재벌집단)를 크렘린 궁으로 초청. 푸틴은 자신의 감시 아래서 얼마든지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지만, 정치에는 간섭마라고 강조. 저항하는 기업인은 혐의를 만들어 체포, 구속. 이후 야당은 후원이 바닥나면서 점점 힘을 잃어갔고, 실제로 많은 정당이 소멸의 길을 걸었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 : 기업가들을 정치 세계 밖으로 내쫓았다.

 

선출된 독재자는 예술가, 지식인, 팝스타, 스포츠 선수 등 문화계 인사의 입도 틀어막으려 한다. 이들의 높은 인기나 숭고한 도덕성은 독재자에게 위협으로 작용.

페론 정권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작가)를 반페론주의자라고 직장에서 해임.

회유를 통해, 혹은 필요하다면 협박을 통해
영향력 있는 인사의 입을 틀어막는 시도는
독재 정권이 잠재적인 저항에 대처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은 정치적으로 존재를 드러내기보다 집 안에 있기를 택한다. 정치적으로 활발하게 움직이던 인물들 역시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것이 바로 독재 정권이 바라는 모습이다.
주요 언론인과 기업가들이 매수되거나 경기장 밖으로 쫓겨날 때
저항 세력은 힘을 잃는다.
독재 정권은 그렇게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승리를 거머쥔다.

 

* 운동장 기울이기(게리맨더링)

독재정권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들은 게임의 규칙을 바꾼다. 독재자는 헌법과 선거 시스템, 그리고 다양한 제도를 바꿈으로써 저항 세력을 약화하고, 경쟁자에 불리한 쪽으로 운동장을 기울인다. 그리고 이러한 시도는 종종 공공의 선이라는 명목으로 진행된다.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진행.

 

말레이시아 : 말레이시아 전체 인구에서 말레이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약간 넘지만, 불공정한 선거구 확정, 즉 게리맨더링 때문에 전체 선거구 중 70%에서 말레이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헝가리 오르빈 정권 : 2010년 선거로 의회의 3분의 2를 차지한 후 지배 정당인 피데스당은 압도적 대다수를 기반으로 헌법과 선거법을 수정함으로써 권력을 더욱 공고히 했다. 그들은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새로운 다수결 선거 원칙을 수용했고, 또한 게리맨더링을 통해 차지할 수 있는 의석을 극대화했다.

 

독재정권이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법률을 수정한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이 끝나고 시작된 1870년 재건시대에 남부연합을 구성했던 모든 주에서 전제적인 단일 정당 정권이 탄생했다. 당시의 일당독재는 노골적인 반민주적 헌정 공학의 산물이었다.

재건 시대를 거치는 동안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 대규모로 참정권을 부여함으로써 남부 지방에서 백인의 정치 장악력과 민주당의 정치세력은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

1867년 재건법, 그리고 인종을 기준으로 선거권을 제한하지 못하도록 규정한 수정헌법 15조 덕분에 남부 주에서 과반이 넘는 유권자 집단으로 떠올랐다.

 

연방군은 남부 지방에 걸쳐 흑인 유권자의 대규모 유권자 등록 절차를 관리했다. 전국적으로 선거권을 부여받은, 그리고 글을 읽을 줄 아는 흑인의 비중은 186880.5%로 크게 증가했다. 그리고 남부주들을 중심으로 흑인의 유권자 등록률은 90%를 넘었다. 실제로 흑인들은 투표에 참여했다.

이선거권 부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집단에 큰 정치적 힘을 주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압도적으로 공화당(북부)을 지지했기 때문에

흑인 선거권 부여는 공화당 그리고 예전에 민주당(남부)이 지배했던 지역에

도전하는 정치인에게 새로운 활력이 되었다.

 

백인들은 규칙을 바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를 허물었다.

재건 시대가 끝나갈 무렵 1885년에서 1908년까지 남부연합 지역의 11개주 모두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선거권을 박탈하는 쪽으로 헌법과 선거법을 수정했다.

이들 주 정부는

재산 요건, 읽고 쓰기 능력, 그리고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투표용지 등

다양한 우회 방법을 동원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대부분 압도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은 그들의 선거권을 박탈함으로써 다시 선거판을 지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흑인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는 선거권을 제한하려는 시도가 가장 먼저 시작된 지역이다. 187690%까지 치솟았던 흑인 투표율은 1898년에 11%로 급감했다.

 

* 그들은 국가위기를 즐긴다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 1969년 두 번째 임기를 위한 재선에서 승리하고 난 뒤, 다시 한번 임기를 연장하기 위해 국가 비상사태를 이용하려는 음모를 꾸몄다.

위기는 예측하기 힘들지만 그에 따른 정치적 영향은 예측이 가능하다.
독재자는 권력을 집중시키고, 권력을 자주 남용한다.
전쟁과 테러는 군중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권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극적으로 높아진다.
시민들 역시 국가 안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전제주의 조치에 더욱 관대해진다. 9`11테러(2001) 이후에 설문조사에 응한 미국인 응답자 중 55%
테러방지를 위해 시민의 자유를 일부 제한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후지모리 대통령 :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게릴라 폭동이 고조되는 가운데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이후 1992년 자신의 쿠데타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정당화했을 때 페루 국민들 대부분 그의 편을 들어주었다. 실제로 쿠데타 이후 후지모리 대통령의 지지율은 81%까지 치솟았다.

 

어떤 독재자는 스스로 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마르코스 : 1972년 계엄령 선포.

히틀러 : 1933년 수상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베를린 국회의사당 화재.

히틀러와 헤르만 괴링, 요제프 괴벨스는 그 사건을 즉각적으로 활용하여 시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긴급조치를 정당화했다. 이 긴급조치는 한 달 뒤에 나온 수권법과 함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비판세력을 무력화하고 나치의 권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했다.

푸틴 대통령 : 1999년 총리가 된 직후 모스크바 폭탄 공격 받음. 푸틴은 즉각 체첸 공화국에 전쟁을 선포하고 전면적인 진압작전에 돌입. 푸틴의 정치적 인기가 폭탄 공격과 더불어 크게 치솟았다는 점이다. 러시아 국민은 푸틴을 지지했고, 이후로 몇 년에 걸쳐 반대 세력에 대한 공격을 용인하는 태도를 보였다.

터키 에르도안 정권 : 안보 위기를 활용함으로써 그들의 권력 장악을 정당화했다.

이슬람국가(isis)의 테러 공격을 빌미로 조기 선거를 실시함으로써 의회를 장악.

2016년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에르도안은 더욱 위협적인 전략으로 대응했다.

 

 

 

5장 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이지 않는 규범

 

균형과 견제를 기반으로 삼는 미국의 헌법 체계는 지도자가 권력을 함부로 독식하거나 남용하지 못하도록 설계되었고, 이러한 설계는 미국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기능했다.

남북전쟁이 벌어졌던 동안에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

행정부 권력 집중은 이후 전쟁이 끝나고 나서 연방대법원에 의해 원상 복구되었다.

1972년 워터게이트 스캔들 리처드 닉슨 대통령 :

불법 도청 사건은 의회 수사로 이어졌으며, 특검을 요구하는 양당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탄핵 국면으로 접어드는 가운데 결국 대통령의 사임으로 마무리되었다.

 

1. 아무리 잘 설계된 헌법이라고 해도 때로는 실패한다.

독일의 1919년 바이마르 헌법 :

국가 최고 법률가들이 설계되었다. 1933년 히틀러의 권력 강탈에 무너지고 말았다.

 

식민지 시대 이후의 남미 상황 :

새롭게 독립한 여러 공화국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정치 모델로 삼았고, 미국 방식의 대통령제와 양당제, 대법원, 선거인단 및 연방제까지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남미 지역의 많은 독립국은 건국 초기에 내전과 독재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아르헨티나 : 1853년 아르헨티나의 헌법은 미국 헌법과 흡사하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에도 불구하고 19세기 말에 있었던 부정선거, 1930년과 1943년에 일어난 군사 쿠데타, 그리고 페론의 포퓰리즘 독재를 막지 못했다.

 

필리핀 : 1935년 필리핀 헌법의 초안은 미국 식민지 당국의 도움을 받아서 작성.

미 의회가 승인한 필리핀 헌법은 권력분립과 권리장전, 대통령 중임제. 마르코스 대통령은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1972년 계엄령 선포 후 헌법을 철폐해버리고 말았다.

 

2. 헌법 조항은 여러 다양한 뜻으로 해석될 여지가 농후하다.

헌법 조항이 다양한 해석에 열려 있다면 후손은 건국자들이 예측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헌법을 악용할 위험이 있다.

 

3. 헌법 조항의 문구를 있는 그대로 기계적으로 해석할 경우, 법의 취지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

법체계에 본질적으로 내포된 개념적 공백과 의미의 모호함 때문에 헌법 조항에만 의존해서는 민주주의를 잠재적 독재자의 횡포로부터 지켜낼 수 없다. 이 말은 미국 정치 시스템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미국 민주주의를 지켜준 것은 무엇인가?

미국 사회의 경제적 풍요, 탄탄한 중산층, 활발한 시민사회 등 다양한 요인이 함께 민주주의를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강력한 민주주의 규범을 꼽는다. 모든 성공적인 민주주의는 비공식적인 규범에 의존한다. 비록 이러한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지만, 시민사회에서 널리 존중받는다.

 

민주주의는 성문화된 규칙(헌법)과 심판(사법부)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건강하게 기능하는 국가의 경우,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성문화된 헌법을 지속적으로 강화한다.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완충적인 가드레일로 기능하면서, 일상적인 정쟁이 전면전으로 치닫지 않도록 막아준다.

규범은 개인의 성향을 초월한 것이다.
공동체 및 사회 내부에 널리 공유된,
모든 구성원이 인정하고, 존중하고, 강화하는 행동 규칙에서 비롯된다.
규범은 성문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
특히 규범이 작동할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규범의 가치는 물과 산소처럼 그것이 사라질 때 비로소 드러난다.

 

* 상호 관용, 혁신적이고 놀라운 규범

상호 관용이란 정치 경쟁자가 헌법을 존중하는 한 그들이 존재하고, 권력을 놓고 서로 경쟁을 벌이며, 사회를 통치할 동등한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개념이다.

미국 건국 초기에도 여당은 곧 이단 :

당시 존 에덤스를 위시한 연방주의자와 토머스 제퍼슨을 앞세운 공화주의자는 서로를 새 공화국에 대한 위협으로 여겼다. 연방주의자 집단은 스스로를 헌법의 구현으로 자처했고, 공화주의자들은 미국이라는 새로운 공화국 프로젝트에 반대하는 집단으로 간주했다.

미국 정치인들이 상대 당이 적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권력을 차지하는 경쟁자라는 인식을 갖게 된 것은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난 뒤였다. 바로 이러한 관용에 대한 인식이 미국 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근간이 되었다.

 

1931년 스페인 :

새로운 좌파 공화당 정권은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양 진영은 서로를 위협적인 적으로 인식했다. 교회와 군대, 군주제와 같은 전통적인 제도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지켜보았던 가톨릭과 군주제 옹호자로 이루어진 우파 진영은 새 공화국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상호 관용 규범이 자리잡지 못한 스페인 공화국은 그렇게 무너지고 말았다. 1933년 우파 정당인 가톨릭 세다당이 승리하면서 의회를 장악했을 때 새 공화국은 위기를 맞이했다. 파시즘을 추구하는 청년 집단이 포진해 있던 세다당이 이듬해 그 정부에 합류했을 때 많은 공화당 인사들은 이를 중대한 위협으로 인식했다.

 

스페인 정국은 폭력 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정당 간 건강한 경쟁이 사라지면서 시가지 전투와 폭탄 테러, 교화 방화, 정치인 암살, 쿠데타 음모가 이어졌다. 걸음마 단계였던 스페인 민주주의는 결국 1936년 내전으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 제도적 자제, 오래된 전통의 규범

민주주의 생존에 중요한 두 번째 규범 자제지속적인 자기통제, 절제와 인내혹은 법적 권리를 신중하게 행사하는 태도를 뜻한다. 자제 규범이 강한 힘을 발휘하는 나라에서 정치인들은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활용하려 들지 않는다.

민주주의를 무한히 이어지는 경기라고 한번 생각해보자. 경기가 이어지려면 선수들은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서는 안 된다. 예의와 페어플레이 정신으로 파괴적인 공격을 삼가야 한다.

영국 정부의 총리 임명 :

임명은 왕의 특권이다. 공식적으로 왕은 내각 구성을 책임질 총리를 자기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국 총리는 하원에서 다수를 차지한 정당의 일원으로서 일반적으로 당 대표가 맡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이러한 관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영국의 왕들은 수세기에 걸쳐 그 관습을 자발적으로 따랐다.

 

미국 대통령 임기 제한 :

미국 역사상 두 번의 임기 제한은 법률이 아니라 자제의 규범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1952년 수정헌법 제22조가 추가되기 전까지, 미국 헌법의 어떤 조항도 대통령이 최대 두 번의 임기로 물러나야 한다고 명시하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임기 제한은 이후로도 실질적인 힘을 발휘했다. 미국 역사상 이 규범을 위반한 사례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의 1940년 삼선뿐이었다. 그리고 루즈벨트의 위반은 결국 수정헌법 22조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제 규범은 특히 대통령제 민주주의에서 그 가치가 높다.

자제의 반대는 제도적 특권을 함부로 휘두르는 것이다.(헌법적 강경 태도)

이 말은 규칙에 따라 경기에 임하지만,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거칠게 밀어붙이고, 영원히 승리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민주주의라고 하는 경기가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하지 않고, 오로지 정치 경쟁자를 없애버리기 위한 전투 자세다.

 

헌법적 강경태도를 활용한 사례 :

아르헨티나 1840년대 후안 페론 대통령 :

의회 내 다수 지위를 활용하여 세 명의 대법관을 해임.

1990년 대통령 카를로스 메넴 :

1853년 메넴 대통령은 자제의 미덕을 보여주지 않았다. 336번의 행정명령.

 

베네수엘라 마두로 대통령 : 2015. 헌법적 강경 태도를 위해 사법부를 활용한 경우.

많은 차비스타 법관들이 포진한 베네수엘라 대법원은 의회가 통과시킨 모든 법안을 위헌으로 판결함으로써 의회를 무력화.

파라과이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의 탄핵 사건 : 2012. 입법부 또한 그들의 헌법적 특권에 탐닉할 위험이 있다.

 

에콰도르 압달라 부카람 대통령 : 1990년대. 에콰도르의 기성 정치체제를 비판함으로써 대선에서 당선된 포퓰리스트 정치인. 야당은 정신적 무능력을 근거로 탄핵. 헌법 정신을 명백하게 침해.

 

미국 : 미국은 수정헌법 14조와 15조에서 보편적인 남성 선거권을 보장하고 있었음에도, 민주당이 지배하는 남부 지역 주 의회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선거를 방해하는 다양한 방안을 내놓는다. 가령 인두세나 읽고 쓰기 시험의 도입과 같은 아이디어는 합법적인 방안으로 보였지만,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합법적으로 흑인들을 정치에서 몰아내는 것.

 

* 부식되는 민주주의 가드레일

상호 관용의 규범이 허물어질 때
정치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권력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한다.
정당이 서로를 위협적인 적으로 간주할 때 정치 갈등은 심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선거 패배는 일상적인 정치 과정의 일부가 아니라 재앙이 된다. 패배의 대가가 심각한 절망일 때
정치인들은 자제 규범을 포기하려는 유혹에 넘어간다.
헌법적 강경 태도는 관용의 규범을 허물어뜨림으로써
경쟁자가 위협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키운다.
그 결과 민주주의 가드레일은 사라진다.

6장 민주주의에 감춰진 시한폭탄

 

* 양극화의 약화, 규범의 강화

연방주의자 애덤스 대통령과 공화주의자 제퍼슨이 경쟁을 벌였던 1800년 대선에서, 양 진영 모두 영구적 승리를 목표로 삼았다. 제퍼슨의 승리.

정상적인 정치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새로운 세대의 경력 있는 정치인들이 등장하면서 정쟁의 위험성이 점차 낮아졌다. 독립전쟁 이후 미국 정치인들은 경쟁자가 반드시 적은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졌다.

 

마틴 반 뷰렌은 현대적인 민주당의 설립자이다.(미국 8대 대통령)

건국자들이 상대 진영을 마지못해 인정했던 반면, 반 뷰렌 세대의 정치인들은 경쟁자에 대한 인정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전면적인 투쟁의 정치가 어느덧 상호 관용의 정치로 바뀐 것이다.

그러나 상호 관용의 규범은 탄생과 함께 시들고 말았다. 그 이유는 건국자들이 묻어놓으려 했던 주제, 즉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 때문이었다. 1850년대에 걸쳐 노예제에 대한 상반된 입장은 정치 양극화를 부추겼고, 새로운 격렬한 감정으로 정치판을 물들였다. 남부 지역의 백인 농장주들, 그리고 그들과 입장을 같이한 민주당에 공화당이 새롭게 들고 나온 노예제 폐지는 심각한 위협이었다. 노예제를 둘러싼 정치 양극화는 미처 여물지 못한 상호 관용의 싹을 짓밟아버렸다. 남북전쟁

 

남북전쟁 세대가 점차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민주당과 공화당 사람들은 공생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상호 관용이 정치 규범으로 다시 자리 잡게 된 것은 인종차별 문제가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지고 나서였다.

첫 번째 : 1877년 타협(흑인 선거권 보장을 위한 연방 차원의 노력 중단).

그 타협안의 골자는 1876년 대선에서 불거졌던 논쟁을 마무리 짓고 공화당 후보 헤이즈를 대통령으로 선출하는 대신, 연방군을 남부 지역에서 철수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이 타협으로 재건 시대는 실질적으로 막을 내렸다.

두 번째, 1890년 연방선거법안이 부결된 사건.(흑인 선거권 실질적으로 폐지)

이 법안의 취지는 연방정부가 하원선거를 감시함으로써 흑인의 선거권을 현실적으로 보장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이 부결되면서 남부 흑인의 선거권을 보장하려는 연방정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고, 흑인 선거권은 실질적으로 폐지되었다. 미국 민주주의를 뒷받침한 관용의 규범이 인종차별을 외면하고 남부 일당 지배를 공고히 했던 비민주적인 타협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상호 관용의 규범은 이어 제도적 자제를 강화했다.

19세기 말 비공식적인 모임과 협상의 문화가 정치의 모든 영역으로 스며들면서 합리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기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외부인의 눈에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미국의 정치 시스템을 돌아가게 만드는 것은 헌법이 아니라 그것의 활용, 즉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라고 지적했다.

 

* 민주주의 규범의 정착

20세기로 접어들 무렵에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 규범은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 이 두 규범은 미국 사회의 튼튼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의 기반을 이뤘다.

헌법 체계가 우리의 기대대로 움직이기 위해서는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가 절묘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부는 필요한 시점에 대통령의 권력을 견제해야 한다. 그 둘은 민주주의의 감시견이다.

다른 한편 입법부와 사법부는 행정부가 제대로 기능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제의 규범이 등장한다. 대통령제 기반의 민주주의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을 견제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기관이 그들에게 주어진 힘을 최대한 발휘해서는 안 된다.

 

자제의 규범이 무너질 때 권력 균형도 무너진다.

정당 간 혐오가 헌법 정신을 지키려는 정치인들의 의지를 압도할 때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두 가지 형태로 무너지게 된다. 가장 먼저 야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하면서 권력이 분열되었을 때 헌법적 강경 태도가 위험 요인이 된다. 이러한 국면에서 야당은 그들의 제도적 특권을 최대한 휘두른다. 그들은 정부의 돈줄을 죄고, 대통령의 사법부 임명을 전면 거부하고, 심지어 대통령 탄핵까지 모의한다.

 

다음으로 여당이 입법부와 사법부를 장악함으로써 권력이 집중될 때 강경 태도가 아니라 규범의 포기가 위험 요인이 된다. 정당 간 적개심이 상호 관용의 규범을 압도할 때 의회를 장악한 여당은 헌법적 의무보다 대통령의 권력 강화에 집중한다. 그들은 야당의 승리를 막기 위해 감시견의 역할을 저버리고, 대통령의 탄압적이고 불법적인 전제 행위를 묵인한다.

아르헨티나 페론 시절의 순종적인 의회,

베네수엘라 차비스타 정권의 대법원처럼

입법부와 사법부가 감시견에서 애완견으로 전락할 때 독재를 향한 문이 활짝 열린다.

대통령 권한 : 행정명령, 사면권, 대법관 임명권
입법부의 권한 : 필리버스터, 상원의 조언과 동의, 대통령 탄핵

 

권력기관이 이러한 권한을 무기로 사용할 때 의회는 마비되고 정부는 기능을 멈춘다. 그리고 민주주의 제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20세기 동안 미국 정치인들은 그러한 권한을 활용하면서 자제의 규범을 잊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 :

미국 대통령은 부분적으로 헌법의 공백에 의해 최고의 권한을 지닌 권력기관이다. 공식적인 권한을 규정하는 미국 헌법 제2조는 그 한계를 구체적으로 정의하지 않는다. 미국 대통령 권한은 20세기에 전쟁과 경기 침체 등 국가의 긴급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더욱 커졌다.

미국 행정부는 법률, 관리, 예산, 정보, 전쟁의 차원에서 막강한 힘을 확보했다. 전후 미국 대통령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장악했다. 또한 글로벌 권력 경쟁과 복잡한 산업 경제로 보다 강력한 행정부 권한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대통령이 자제 규범을 실천하는 흐름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워싱턴 : 나의 많은 행동이 선례로 남을 것이다.

공화국의 대통령 자리에 처음으로 오른 정치인으로서, 워싱턴은 헌법 조항을 완성하고 규범과 관습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면서 동시에 입법부의 고유 영역을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 대통령의 관리자 이론에 충실했다. 결론적으로 견제와 균형의 테두리 안에서 국정을 운영하였다.

 

대법원의 재구성 :

가장 먼저 비협조적인 판사를 해임하고 그 자리를 측근 인사로 채우는 것이다. 다음으로 대법관 수를 늘려 그 자리를 친정부 법관으로 채우는 것이다. 대통령은 연방대법원 규모를 합법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들은 한 세기 넘게 그러한 일을 하지 않았다.

 

비공식적 규범 : 예의와 호혜주의

예의 : 동료 상원의원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거나 곤란하게 만들지 않으려는 태도. 그 기본 목적이 정치적 불일치가 개인 간의 감정싸움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 정치인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정과 같은 관계가 필요하다.

호혜주의 규범 : 협력의 문을 계속 열어놓기 위해 동료를 강하게 비난하거나 권한을 함부로 휘두르는 행동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상원 의원이 공식적인 권한을 최대로 활용하려 한다면 그것은 암묵적인 합의를 어긴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동료의 협조를 기대하기 힘들다. 그럴 경우 입법 활동은 차질을 빚는다.

 

입법부의 또 다른 중요한 권한은 연방대법원 및 주요 부처 인사의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조언과 동의. 이론적으로 상원은 대통령의 측근 인사를 내각이나 대법원에 임명하는 것을 저지할 수 있다. 실제로 상원은 이러한 특권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헌법이 보장하는 가장 폭발적인 권한 : 대통령 탄핵권

미국에서 탄핵은 오랫동안 자제 규범에 의해 통제를 받았다.

2012년 파라과이 : 이틀간의 급조한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 탄핵.

1997년 에콰도르 압달라 부카람 탄핵 : 정신적 무능력이라는 의심스러운 근거로 탄핵.

 

*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와 극복

미국의 견제와 균형 시스템은 20세기에 효과적으로 작동했다. 그것은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그 시스템을 탄탄히 뒷받침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미국의 민주주의 규범은 수차례 도전과 위기를 맞았다.

 

첫 번째 : 루즈벨트 행정부 권력이 비대해졌던 시절.

루즈벨트는 대법원 재구성을 넘어서 일방적인 행보를 고집함으로써 전통적인 견제와 균형 시스템에 심각한 위해를 가했다. 세 번째 임기에 도전. 150년 된 역사 규범을 파괴. 그럼에도 독재로까지 넘어가지 않았다. 이유 중 하나가 양당이 협력해서 대통령의 월권에 저항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 : 매카시즘

1950년 초 매카시즘은 상호 관용 규범을 위협했다. 공산주의 세력이 성장하면서 특히 1940년대 말 소련이 핵을 보유한 초강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정치인들은 당파적 목적을 위해 반공주의를 감정적인 측면에서 활용하기 시작했다.

 

반공주의는 1946년에서 1954년에 걸쳐 당파 정치 깊숙이 스며들었다. 냉전이 시작되면서 국가 안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고, 20년 가까이 권력의 주변부에 머물렀던 공화당은 이러한 상황에서 새로운 선거 전략을 모색했다.

상호 관용에 대한 매카시즘의 파괴 활동은 1952년에 절정을 이루었다. 최고의 전환점은 1954년 육군 -매카시 청문회였다. 여기서 매카시는 일격을 당했다. ‘품위라는 걸 모르십니까? 결국 모두 포기하기로 한 겁니까?’

 

세 번째 : 닉슨 행정부의 전제주의 행보

1950년대에 닉슨은 상호 규범을 완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독재를 향한 움직임까지 공식적으로 드러냈다. 1970년 닉슨은 홀드먼 비서실장에게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정보 프로그램개발을 위해 정권에 반대하는 인사 목록을 작성하라는 메모를 전달했다. 닉슨 행정부는 국세청을 정치 무기로 활용하여 민주당 전국위원회 의장 래리 오브라이언과 같은 핵심 야당 인사들에 대한 세무 감사를 벌였다.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닉슨 행정부의 불법적 파괴 활동은 거대한 반발에 직면했다.

1973년 상원 청문회에서 대통령과 관련된 백악관 비밀 테이프의 존재가 거론되었다.

특검 콕스를 해임 콕스 해임은 닉슨 대통령 사임에 대한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하원 사법위원회는 탄핵을 위한 절차를 시작 연방대법원은 닉슨이 그 테이프를 넘겨야 한다는 판결 닉슨 사임. 미국 의회와 법원은 양당의 협력에 힘을 얻어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저지할 수 있었다.

 

* 차별로 유지된 민주주의의 종착점

미국 민주주의 제도는 20세기를 거치는 동안 여러 차례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매번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 민주주의 가드레일은 온전히 유지되었고 양당정치인, 때로는 사회 전반이 민주주의를 침해하는 시도에 저항했다.

 

이제 우리는 경고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미국 정치 시스템을 떠받치는 규범은 사실 인종차별에 의존해왔다. 재건 시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의 평화는 그 원죄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다시 말해 1877년 타협과 이후로 이어진 남부 지역의 반민주화 흐름, 그리고 흑인 차별법인 짐 크로 법을 근간으로 삼았다.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을 통해 가속화된 미국 사회의 인종 포섭의 과정은 마침내 미국을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로 바꾸어놓았다. 그러나 이러한 민주화 흐름은 미국 사회를 양극화시켰고, 재건 시대 이후로 이어져 내려온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에 최고의 도전 과제를 안겨다주었다.

 

 

7장 규범의 해체가 부른 정치적 비극

 

* 규범 파괴, 불법만 아니면 괜찮다?

깅리치는 1989년 소수당 원내총무, 그리고 1995년 하원 의장을 거치면서 공화당 지도부에 합류. 1994년 선거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공화당은 40년 만에 처음으로 하원 다수당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하원 역시 깅리치 인사들이 포진하면서 크게 달라졌다. 공화당의 이념적 고집, 타협에 대한 반감, 그리고 행정부 활동을 방해하려는 강한 의지는 의회의 전통적 민습의 종말을 앞당겼다.

 

1994년 전쟁으로서 정치 시작 : 타협 불가 정치를 방침으로 정함.

1995, 예산 심의에서 타협을 거부했고 5일 동안 연방정부 셧다운.

199621일 동안의 셧다운 사태 촉발.

: 이처럼 자제의 규범이 사라질 때 견제와 균형 대신에 정체와 마비가 들어선다.

1998년 클린턴의 탄핵을 위한 하원 투표. 하원 내 공화당 인사들은 양당의 협력 없이 탄핵을 밀어붙였고, 이 말은 곧 상원에서 가결이 나지 않을 것임을 의미.미국의 민주주의 규범을 허물어뜨렸다. 탄핵을 정치화했고, 당파전쟁의 무기로 격하시켜버렸다.

 

* 분열을 사랑하는 사람들

부시 : 초당적 협력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우측 행보를 이어나갔다.

상원 내 민주당 인사들은 조언과 동의에서도 자제의 규범에서 점차 멀어졌다.

민주당이 대통령의 행보를 막기 위해 자제의 규범을 저버렸다면, 공화당은 그들의 대통령을 지키기 위해 그 규범을 외면했다. 감시견에서 애완견으로 전락한 미국 의회는 그 제도적 의무를 저버리고 말았다.

 

* 오바마의 등장과 가속화된 규범 파괴

2008년 버락 오바마의 대선 승리.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관용과 협력의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극단주의와 정쟁의 시대로 흘렀다.

 

트럼프의 오바마의 정당성에 대한 문제 제기 : 오바마에 대한 공세는 공화당 지도부로까지 이어졌다. 한 세기 넘게 미국의 정당 사이의 적대감은 정치권 주변부에만 머물렀다.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를 포함하여 공화당 주요 인사들은 수십 년 만에 처음으로 상호 관용의 규범과 자제 규범마저도 완전히 저버렸다.

 

* 다른 정당 지지자와는 결혼도 안 된다

상호 관용과 자제의 규범이 허물어지는 과정 이면에는 당파적 양극화가 있었다.

연방정부 셧다운, 의회의 인질극, 10년 중반의 선거구 조정, 그리고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에 대한 논의 거부는 단지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다. 지난 사반세기에 걸쳐 민주당과 공화당은 경쟁 관계를 넘어서 진보 진영과 보수 진영으로 완전히 갈라졌다.

 

미국 정치판에서 당파 간 적개심이 위험할 정도로 높아진 현상 :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오랫동안 이어진 정당 재편에서 비롯되었다. 20세기 말 대부분 미국의 정당은 다양한 유권자 집단과 넓은 정치 견해를 포괄하는 이른바 이념적 빅텐트를 이루고 있었다.

민주당은
진보주의 뉴딜 연합, 노동조합, 가톨릭 이민자 2세대 및 3세대,
그리고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물론 남부 보수주의 백인 집단의 이해관계를 대변했다.
공화당은
북동부 진보주의자부터 중서부 및 서부의 보수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집단의 이익을 대변했다.
개신교 집단은 양당에 모두 걸쳐 있었다.
약간 더 높은 비중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양당 모두 믿음을 저버렸다는 비난에서 자유로웠다.

 

이처럼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내부적으로 다양성을 보존했기 때문에 정당 간의 양극화는 지금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은 세금이나 지출, 정부규제, 노동조합과 같은 사안을 둘러싸고 충돌했지만, 잠재적 위험 요인인 인종에 대해서만큼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었다. 양당 모두 부분적으로 시민권을 지지했지만, 남부 지역에서 민주당의 반대, 그리고 하원위원회 시스템의 전략적 통제는 인종을 논의의 테이블에서 치워버리는 역할을 했다. 이처럼 정당의 내부적 다양성은 서로 간의 갈등을 완화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인사들은 서로를 적으로 바라보지 않았고, 다양한 분야에서 공통점을 찾아냈다. 민주당과 공화당 내 진보 세력은 하원에서 시민권 보장을 위해 표를 던졌고, 반대로 민주당 남부 인사와 공화당 북부 우파 인사들은 시민권을 억압하기 위해 하원에서 보수주의 연합을 형성했다.

 

1964년 시민권법과 1965년 선거권법으로 정점을 이루었던 시민권 운동은 이러한 정당 구도를 깨버렸다.

시민권 운동은 흑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일당 지배를 종식시킴으로써 남부 지역을 민주화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정당 재편을 장기적으로 가속화했다. 시민권법은 민주당을 시민권을 지지하는 정당으로, 그리고 공화당을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정당으로 규정해버렸다.

이후 수십 년에 걸쳐 남부 백인 집단은 공화당으로 넘어갔다. 백인 유권자에게 호소했던 닉슨의 남부 전략그리고 이후로 레이건의 암묵적인 인종차별 메시지는 유권자들에게 공화당은 인종차별을 옹호하는 보수주의 백인의 고향이라는 뚜렷한 이미지를 전했다.

20세기 말 전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었던 지역이 공화당 기반으로 바뀌었다. 이와 동시에 거의 백년 만에 처음으로 투표를 하게 된 남부 지역의 흑인들은 시민권 운동을 옹호한 북부의 많은 진보적인 공화당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민주당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남부가 공화당으로 넘어갔고, 북동부는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1965년 이후로 시작된 정당 재편과 함께 유권자 집단 역시 이념을 기준으로 재편되었다. 이념이 곧 정당의 정체성. 전반적으로 공화당은 보수주의를, 민주당은 진보주의를 상징하게 되었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더 이상 이념적 빅텐트가 아니었다. 민주당 내 보수주의 인사, 그리고 공화당 내 진보주의 인사가 사라졌고, 그에 따라 정당 간 공통분모도 줄어들었다.

정당 재편은 진보와 보수 대결을 넘어서 나타나고 있다. 정당 지지자 집단의 사회적, 민족적, 문화적 특성이 크게 바뀌면서 정당은 이제 단지 서로 다른 정책적 접근방식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공동체 문화와 가치를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다. 시민권 운동

 

미국 사회는 1960년대를 시작으로 거대한 이민의 물결을 경험했다.

남미를 시작으로 아시아로 이어진 이민자 물결은 미국의 인구통계 지도를 크게 바꾸어놓았다. 1950년만 해도 미국 전체 인구에서 유색인종이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살짝 웃도는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2014년에 이르러 38%로 증가했다. 미국 통계청은 2044년이면 유색인종이 미국 인구의 과반을 차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민은 흑인 선거권 부여와 더불어 미국의 정당 체제를 바꾸어놓았다.

이민으로 새롭게 유입된 유권자 집단 중 많은 이들이 민주당을 지지했다. 민주당 지지자 중 유색인종 비중은 1950년대 7%에서 201244%로 크게 증가했다. 공화당 지지자 중 백인 비중은 2000년대 이르기까지 줄곧 90%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당이 점차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던 반면, 공화당은 백인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남았다.

 

공화당은 개신교의 정당이 되었다.

개신교 집단은 특히 1970년대 말에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중요한 계기는 1973년 연방대법원의 낙태 합법화 판결이었다.

1980년 레이건을 시작으로 공화당은 보수주의 기독교 집단을 대변하면서 점차 개신교 친화적인 입장을 취했다. 낙태 반대, 동성 결혼을 부정했다. 1960년대만 해도 주로 민주당을 지지했던 백인 개신교 집단은 서서히 공화당 쪽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2016년을 기준으로 백인 개신교 집단의 76%가 공화당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더욱 거세지는 민주주의 공격

언론의 변화가 공화당에 더욱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에 비해 당파 성향이 강한 매체에 더 많이 의존한다. 우파 언론의 성장 또한 공화당 선출직 인사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자금이 풍부한 보수주의 이익단체들은 이러한 강경 입장을 더욱 강화했다.

보수단체가 공화당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공화당 인사들이 이념적으로 보다 단호한 입장을 취하도록 요구했다. 후원자와 압력단체가 권력의 핵심을 장악하면서 공화당은 극단주의 세력에 더욱 취약해지고 말았다.

 

공화당을 극단주의로 내몬 것은 사회적, 문화적 변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다양성이 꾸준히 높아졌던 민주당과는 달리 공화당은 문화적 차원에서 오랫동안 동질적인 상태로 남아 있다. 공화당의 핵심 지지층인 백인 개신교 집단은 200년 가까이 미국 유권자의 대다수를 차지했고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우월한 위치를 누렸다. 그러나 이제 백인 개신교 집단은 다수의 지위를 잃었고, 그 규모는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다.

 

호프스테터의 지위불안’ : 많은 공화당 지지자들이 급격한 사회 변화 속에서 그들이 자라난 진정한 미국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들은 스스로를 자기 땅의 이방인들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뉴트 깅리치에서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는 공화당 정치인들은 양극화된 사회에서 경쟁자를 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 쓸모가 있으며, 정치를 전쟁으로 인식하는 입장이 유권자의 마음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게 해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8장 트럼프의 민주주의 파괴

 

* 국가 기관을 장악하라

트럼프 대통령은 심판에 해당하는 법 집행, 정보, 윤리 사법기관에 대해 적대감을 드러냈다. 취임 후 그는 FBI, CIA, 국가안전보장회의 등 정보기관의 수장들을 불러 개인적인 충성을 요구했다. 그것은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러시아 연류 의혹에 대한 수사를 막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트럼프는 행정부에 대한 보호 요청을 묵살하고 러시아 수사를 오히려 확대하고 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마자 FBI 코미 국장을 해고했다. FBI 82년 역사상 10년 임기가 끝나기 전에 국장을 해고한 사례는 그전까지 단 한 차례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독립적인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사법부를 공격한 것은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나라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행동이었다.

 

베네수엘라 : 차베스 정권이 임명한 오르테가는 수사의 독립성을 강력하게 요구했으며 마두로 정권에서 드러난 부패와 권력 남용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다. 오르테가의 임기는 2021년까지 보장되어 있었고, 해임은 오직 법률에 의해서만 가능했음에도, 마두로 정권이 의심스러운 절차를 밟아 구성한 헌법 제정의회는 2017년 그 검찰총장을 해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린 판사들까지 공격했다.

2017년 전 애리조나 보안관 조 아르파이오를 사면함으로써 사법부를 간접적으로 공격했다. 아르파이오는 인종차별적 수사 방식을 중단하라는 연방 법원의 명령을 어긴 것으로 기소되었다. 그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을 지지하는 많은 이들의 정치적 동지이자 영웅이었다.

역사적으로 미국 대통령들은 사면권을 지극히 제한적으로 행사했고, 또한 그때마다 법무부의 조언을 구했다. 자신을 보호하거나 정치 이득을 위해 사면권을 남용한 경우는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법무부의 자문을 구하지 않았을 뿐더러, 그 사면은 분명하게도 자신의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정치적 선택이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다음 수순으로 공직자윤리국에 압박을 가했다.

공직자윤리국은 독립적인 감시 기구로, 법적 수사 권한은 없지만 이전 행정부들의 존중을 받았다. 행정부 관료들은 백악관이 로비스트 출신 인사들을 임명한 것에 대한 수사를 중단하도록 공직자윤리국을 압박했다. 이렇게 백악관의 협박과 외압이 계속되는 가운데 쇼브 국장은 위원장직에서 사퇴했다.

사법부와 정보기관을 비롯하여 여러 다른 독립적인 정부 기구에 대해 트럼프가 보여준 태도는 전형적인 전제주의 시나리오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트럼프는 법무부와 FBI를 통해 힐러리 클린턴을 포함하여 여러 민주당 인사를 조사할 것이라는 경고를 공공연하게 했다.

그러나 해임과 협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심판을 매수하지 못했다. 그는 코미의 공석에 측근 인사를 앉히지 못했다. 그 주된 이유는 상원 내 주요 공화당의원들이 반기를 들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상원 내 공화당 의원들은 또한 세션스 검찰총장의 자리를 측근으로 대체하려는 트럼프의 시도에도 반발했다.

 

* 경쟁자와 반대자를 처벌하라

트럼프 행정부는 상대편 주전들이 정치판에서 뛰지 못하게 막았다. 정부 비판자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언어 공격은 한 가지 사례다. 트럼프는 뉴욕 타임스와 CNN 같은 주요 언론이 가짜뉴스를 퍼뜨리고 있으며, 자신에 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위협적인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트럼프는 명예훼손법 개정을 포기하기는 했지만, 위협은 계속되고 있다.

 

에콰도르 라파엘 코레아 대통령 : 그는 수백만 달러 규모의 명예훼손 소송을 벌였고 많은 기자를 투옥했다. 대통령의 이러한 행위는 언론을 완전히 얼어붙게 만들었다.

차베스 정권 : 야당이 장악한 시 정부로부터 그들이 관할하는 병원, 경찰 병력, 항만 시설을 비롯한 다양한 사회제반 시설에 대한 통제권을 빼앗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부 규제 기관을 통해 비우호적인 언론 기업을 압박하기까지 했다.

트럼프는 취임 일주일 만에 불법 이민자에 대한 엄격한 단속 조치에 협조하지 않는 이민자 보호도시에 예산 지원을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을 연방기관에 부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트럼프의 시도는 사법부에 의해 가로막혔다.

 

* 투표를 억제하라

트럼프는 상원에서 낡아빠진 법률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에는 필리버스터도 들어 있다. 필리버스터 제도를 없애버린다면 소수인 민주당을 무력화시켜 다수인 공화당이 상원을 완벽하게 장악할 것이다. 상원 내 공화당 의원들은 대법원 임명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철폐함으로써 닐 고서치를 대법관으로 임명하기 위한 길을 열어놓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필리버스터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공정선거 대통령 자문위원회 : 유권자 신분확인법

민주당은 소수 민족과 이민자 1, 2세대를 대변하는 정당으로 변모했던 반면, 공화당은 압도적으로 백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당으로서 자리를 굳혔다. 미국 유권자 중 소수민족의 비중이 점차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에서 이와 같은 정체성 변화는 민주당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특히 소수민족의 투표율이 이례적으로 높았던 2008년 대선에서 그 영향력은 더욱 뚜렷해졌다.

 

이 흐름을 심각한 위협으로 받아들인 공화당 일부 인사는 짐 크로 법 시절의 남부를 떠올리게 만드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 핵심은 저임금 소수민족 유권자들의 투표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공화당은 유권자 신분확인법을 도입했다. 투표 억제는 명백하게도 민주주의에 반하는 행위다. 그 이유는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저소득 소수민족 유권자 집단이 불리한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유권자 신분확인법은 저소득 소수민족 유권자에게만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혔다. 비교적 적은 영향도 접전일 경우에는 결정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공정 선거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노린 것은 바로 그러한 효과다.

 

대부분의 주 정부는 유권자 정보를 넘기라는 위원회의 요구를 거절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그 계획을 아무런 견제도 받지 않는 상태에서 추진한다면 미국의 선거 시스템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위험이 있다.

 

* 운명의 세 변수 : 여당, 여론, 안보 위기

대통령 임기 첫해에 트럼프는 여러 측면에서 전제주의 각본을 충실히 따랐다. 심판을 매수하고 자신의 경기를 방해할 상대 팀 주요 선수의 출전을 막고, 경기장을 기울였다.

 

전반적으로 트럼프는 무모한 운전자처럼 가드레일을 연속해서 들이받았다. 그래도 아직 가드레일을 뚫고 나가지는 못했다. 많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2017년에는 도로를 이탈하지는 않았다. 미국 사회는 아직 전제주의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트럼프 임기 초반에 불과하다. 민주주의 붕괴는 종종 오랜 세월에 걸쳐 점진적으로 일어난다.

 

에콰도르나 러시아와 같은 일부 사례에서는 처음 1년 동안 민주주의 붕괴 현상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반면 후지모리의 페루나 에르도안의 터키의 경우 초반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후지모리는 임기 첫해에 치열한 언어 공방을 펼쳤지만, 2년을 넘기기까지는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터키 민주주의 붕괴는 페루의 경우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트럼프의 남은 임기동안 미국의 민주주의의 운명은 여러 요인에 달렸다.

첫째, 공화당 지도부의 태도다. 민주주의 제도의 존속은 그들 자신의 대통령에게 맞서면서까지 이를 수호하려는 여당의 의지에 달렸다. 루즈벨트의 대법원 재구성 실패와 닉슨의 몰락은 부분적으로 여당의 주요 구성원들이 분연히 일어나 대통령에게 맞섰기 때문에 가능했다.

 

폴란드 : 법과 정의당 정권은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허물어뜨리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 실패로 끝났다. 법과 정의당의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행정부가 대법관을 마음대로 해임하고 임명하도록 권한을 허용하는 두 가지 법안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헝가리 :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독재 행보를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여당인 피제스 당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았다.

 

공화당 지도부는 견제의 태도를 취할 수 있다.

이러한 태도를 선택한 공화당 인사는 아마도 대법원 임명에서 조세 및 의료보험 개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안에서 대통령의 뜻을 지지하면서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는 대통령의 행동은 비판할 것이다. 장기적인 차원에서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들은 타협이 가능한 사안에 대해서는 대통령과 협력하면서,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확고한 반대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대통령이 권력 행사를 최대한 자제하도록 견제함으로써 임기를 끝까지 마치도록 보좌한다.

 

마지막으로 여당 지도부는 이론적인 차원에서 대통령 탄핵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그들에게 정치적으로 엄청난 부담을 안겨다주는 방법이다. 대통령을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여당 동료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힐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이는 또한 입법 과정에서 여당의 힘을 위축시킬 위험도 있다.

 

민주주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또 다른 요인으로 여론을 꼽을 수 있다.

잠재적 독재자가 군사 쿠데타나 대규모 폭력 사태를 일으킬 수 없다면, 충성을 바칠 사람을 모으고 비판자를 처단하기 위해 또 다른 수단을 찾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여론의 지지는 중요한 무기가 된다.

 

마지막 요인 : 전쟁이나 대규모 테러와 같은 안보 위기는 정치 게임을 완전히 바꾸어버릴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안보 위기는 언제나 국민의 지지율을 높이는 쪽으로 작용한다. 안보가 불안할 때 국민은 행정부의 부당한 처사를 참고, 전제적인 행보를 기꺼이 인정하려 든다.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일반 국민들만이 아니고 판사들 역시 대통령 편에 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미국에서도 안보 위기는 행정부 권력을 강화해주었다. 링컨의 인신보호법 중단에서 루즈벨트의 일본계 미국인 억류, 그리고 부시의 미국 애국법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는 길다. 하지만 지금과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링컨, 루즈벨트, 부시 모두 열정적인 민주주의 지지자였다. 그리고 위기로 높아진 행정부 권력을 임기 말에 행사하는 과정에서 자제규범을 충실히 실천했다.

 

* 트럼프의 극단적인 규범 파괴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주의 제도를 직접적으로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그의 규범 파괴는 분명히 그러한 일을 했다. 공화당은 이러한 규범 파괴 행위에 대해 오히려 그를 대선 후보로 지명함으로써 보상을 안겨다 주었다.

친족을 공직에 등용하지 않는 것처럼 공사를 엄격하게 구분하는 것 역시 오랜 불문율에 해당한다.

대통령이 자신의 이해관계가 달린 사안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도 있다. 대통령은 권력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업가가 대통령 자리에 오르려면 취임 전에 비즈니스 관계를 모두 정리해야 한다.

트럼프는 또한 선거 결과의 정당성에 공식적으로 의문을 제기함으로써 민주주의의 핵심 규범을 파괴했다.

 

멕시코 : 2006년 대선 후보 오브라도르가 선거에 패하고 난 뒤 선거가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펼친 이후로, 선거제도에 대한 멕시코 국민의 신뢰도는 크게 떨어졌다.

 

트럼프는 또한 정치 예의라고 하는 기본적인 규범도 저버렸다.

그는 선거가 끝난 뒤에도 계속해서 힐러리를 공격함으로써 선거 후 화해의 규범을 깨트렸다. 게다가 현직 대통령이 전임자를 공격하지 않는 불문율도 어겼다.(오바마 공격)

 

트럼프의 가장 악명 높은 규범 파괴는 아마도 그의 거짓말일 것이다.

그는 취임 후 49일 동안 매일 한 번 이상 잘못된, 혹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공식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국민이 선출된 지도자를 신뢰하지 않을 때 대의 민주주의 근간이 허물어진다.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를 믿지 못할 때 선거제도의 가치는 사라진다.

 

트럼프가 언론에 대한 존경이라고 하는 기본적인 규범을 저버리면서 신뢰의 상실은 더욱 심각해졌다. 언론의 독립은 민주주의 제도를 지키는 방어막이다.

어떤 민주주의도 언론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실제로 많은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언론을 싫어했다. 그럼에도 미국 대통령들은 거의 예외 없이 언론을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으로 인정했고, 정치 시스템 안에서 언론이 차지하는 위상을 존중했다.

 

* 일탈의 용인은 끔찍한 결과를 낳는다 : 모이니핸

불문율에 대한 위반이 계속해서 일어날 때

사회는 일탈의 범위를 축소하는, 기준을 하향 조정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는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행동이 정상적인 행동으로 바뀌는 것이다.

 

모이니핸은 자신의 가설을 미국 사회에서 점점 늘고 있는 한 부모가정, 살인율,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용인에 적용함으로써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모이니핸의 가설을 미국 민주주의에 적용할 수 있다. 예의, 언론에 대한 존경, 거짓말하지 않기와 같은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비록 트럼프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일탈의 속도는 트럼프 임기에 가속화되고 있다.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사회는 정치적 일탈을 정의하는 기준을 하향 조정했다. 정치적 일탈이 광범위하게 벌어질 때 사회 구성원들은 그 흐름에 압도당한다. 그리고 점차 자극에 둔감해진다.

 

미국 총기협회(nra) : 미국 총기협회는 소규모 비주류 모임이 아니다. 회원 수가 이미 5백만을 넘어섰고, 공화당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와 세라 페일린도 NRA 평생회원이다.

규범은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이다. 규범이 무너질 때 용인 가능한 정치 행동 범위는 넓어지고, 민주주의를 파멸로 몰아갈 주장과 행동이 시작된다.

 

9장 민주주의 구하기

 

1990년에서 2015년의 사반세기는 아마도 역사적으로 가장 민주적인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 부분적인 이유로 서구 강대국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지지했다. 하지만 최근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은 냉전 이후 처음으로 민주주의의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저버렸다.

 

* 민주주의 미래 시나리오

우리는 트럼프 이후 미국의 미래에 대해 세 가지 가능한 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가장 낙관적인 형태로 민주주의가 신속하게 회복되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트럼프가 극단적인 형태로 실패한다면 1974년 닉슨의 경우처럼 트럼프에 대한 대중의 혐오는 미국 민주주의 수준을 높여주는 개혁의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리고 트럼프와 손을 잡음으로써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공화당 지도부는 극단주의자와의 위험천만한 동침을 포기할 것이다.

 

둘째, 보다 어두운 전망으로서 트럼프와 공화당이 백인 민족주의를 앞세워 승리를 이어나가는 경우다.

이 시나리오에서 친트럼프 공화당은 대통령과 상원의원, 그리고 주 의회를 장악하고 결국에는 연방대법원까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공화당은 헌법적 강경 태도를 기반으로 오랜 기간에 걸쳐 과반을 차지하는 백인 선거인단을 구성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대규모 추방과 이민 제한, 투표 억제, 그리고 엄격한 유권자 신분확인법을 함께 실시해나갈 것이다.

 

힘을 잃어가는 다수민족이

기존의 지배적인 지위를 평화롭게 넘겨준 역사적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레바논 : 배적인 기독교 집단의 인구가 줄어들면서 15년간의 내전이 시작되었다.

이스라엘 : 요르단 강 서안 지구를 사실상 병합함으로써 생긴 인구통계 변화로 그 나라는 인종차별 정책에 비유했던 정치 시스템으로 흘러가고 있다.

 

미국 : 흑인에 대한 선거권 부여로 촉발된 위협에 대해 남부 민주당은 재건 시대(1865-1877) 이후로 한 세기 가까이 아프리카계 미국인에게서 선거권을 박탈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공화당이 주도하는 엄격한 유권자 신분확인법과 유권자 명부 정리에 대한 압박은 선거구 조정을 당의 핵심 사안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셋째, 우리의 입장이자 가장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다.

트럼프 이후 미국이 더욱 뚜렷한 양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성문화되지 않은 정치 관습에서 더 멀어지고, 제도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 민주주의의 강성 가드레일마저 사라질 것이다.

이 시나리오에서 트럼프와 트럼프주의는 실패하지만, 그 실패는 정당 양극화를 해소하지 못하고, 또한 상호 관용과 자제 규범의 붕괴도 되돌리지 못한다.

가드레일이 사라진 민주주의 : 노스케롤라이나 주(2010년 이후)

 

* 똑같이 지저분하게 싸워라?

미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제도적 특권을
페어플레이 정신에 입각해서 신중하게 활용해야 한다는 규범은
미국 헌법에 적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 규범이 무너질 때
미국 헌법의 견제와 균형은 우리 기대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 정치 시스템의 강점은 자유와 평등.
자유와 평등의 가치는 스스로 발현되지 못한다.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는 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절차적 기반이다.


두 규범은 민주주의 제도가 제대로 기능하도록 만들기 위해
법의 한계를 넘어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정치인들에게 말해준다.
우리는 이러한 절차적 기반을 미국적 신조의 핵심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미국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
우리 두 저자의 관점에서 볼 때
민주당이 공화당처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외국 사례들은 이러한 대응 전략이 오히려 전제주의가 등장할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전면적인 전략은
중도 진영을 위협함으로써 야당의 지지도를 떨어뜨린다.
반면 여당 내 반대파조차 야당의 강경한 태도에 맞서
단결하게 함으로써 친정부 세력을 집결하는 역할을 한다.
게다가 야당이 진흙탕 싸움에 뛰어들 때
정부는 이들을 탄압하기 위한 정치 정당성을 확보한다.

 

 

*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정권(1998 ~ 2012)

차베스는 취임 후 몇 년 동안 민주적인 행보,

야당은 차베스가 베네수엘라를 쿠바식 사회주의로 몰고 갈 것이라는 우려에 선제공격.

20024월 야당, 군사 쿠데타를 지원 민주주의 세력이라는 이미지마저 잃어버림.

200212월 무기한 파업을 선언. 파업은 두 달간 지속되면서 베네수엘라 사회에 45억 달러의 손실. 실패.

2005년 반차베스 세력은 의회선거를 거부 차비스타 정권은 의회를 완전히 장악.

그들은 차베스 정권을 무너뜨리지 못했고 대중의 지지마저 잃어버림.
게다가 차베스가 자신의 정적에게 반민주 세력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고,
행정부가 군대와 경찰, 법원 조직에 개입하게 만들고,
저항 인사를 체포하거나 추방하고,
또한 독립적인 언론 매체를 폐쇄할 수 있는 명분까지 주고 말았다.
야당은 힘과 신뢰를 잃었고
차베스 정권이 전제주의로 빠져드는 것을 바라보아야만 했다.

 

 

* 콜롬비아 알마로 우리베 대통령에 맞선 야당의 전략은 성공적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된 우리베 대통령 역시 권력 집중을 도모.

우리베 정권은 반정부 인사를 체제 전복자나 테러리스트라고 비난했고, 야당 인사와 기자들을 감시하고, 사법부를 무력화하고자 했다. 또한 두 번째 임기에 출마하기 위해 헌법을 두 차례 수정. 그러나 콜롬비아 야당은 초헌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베 정권을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의회와 법원에 집중했다. 그래서 우리베 정권은 야당의 민주적 정당을 공격하거나 이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할 수 없었다. 우리베는 대통령 권한을 남용했지만, 베네수엘라 방식의 제도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덕분에 콜롬비아의 민주주의 제도 역시 위협을 받지 않았다. 20102월 콜롬비아 헌법재판소는 우리베의 세 번째 임기 도전을 위헌으로 판결하면서 두 번의 임기를 마치고 내려올 것을 명했다.

* 우리는 콜롬비아 사례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제도적 채널이 존재할 때 정부 저항 세력은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 미국 트럼프

민주당이 상호 관용과 자제 규범을 회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을 때 다음번 대통령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야당을 상대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전제주의 행보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규범을 어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의회와 법원, 그리고 선거를 통해 저항을 해야 한다. 민주주의 제도를 기반으로 트럼프가 실패하게 만들 수 있다면 미국 민주주의 토양은 더욱 단단해질 것이다.

 

우리는 저항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중의 저항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중요한 책임이다.

저항의 목표는 권리와 제도를 지키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1960년대 흑인 저항 운동에 관한 주요 연구에서 흑인이 주도한 저항운동이 워싱턴에서 시민권 문제의 중요성을 높였고,

또한 대중의 지지를 넓혔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폭력적인 저항은 백인들의 지지를 위축시켰고,

1968년 선거 판세를 험프리에서 닉슨으로 기울이는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우리는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반트럼프 세력은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광범위한 연합 전선을 형성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형태는 서로 이질적인, 그리고 여러 사안에 반대 입장을 취하는 집단이 하나로 뭉치는 연합이다. 이러한 연합은 친구가 아니라 경쟁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광범위한 저항 연합을 통해 중요한 이익을 얻어낼 수 있다.

가장 먼저 미국 사회의 폭넓은 영역에 호소함으로써

민주주의 지지자들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다.

반트럼프 진영을 민주당을 지지하는 진보적인 지역으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지역으로 확장해야 한다.

이러한 노력은 전제주의 정권을 고립시키고 패배시키는 데 중요하다.

포괄적인 연합은 분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든다.

 

지금의 정치 분열이 해소될 때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의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안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낙태에 관해서는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의료보험에 대해서는 같을 수 있다.
그리고 이민자에 대한 이웃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연합을 통해 우리는 상호 관용 규범을 구축하고 강화할 수 있다. 정치인이 일부 사안에 경쟁자와 뜻을 같이 할 때
그들은 상대를 위험한 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것이다.

 

* 정치 양극화 해소로 가는 길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극단적인 당파 분열이다. 양당은 정책적 차이뿐만 아니라 인종적, 종교적 차이를 포함하는 뿌리 깊은 원한으로 갈라서 있다. 미국의 극단적인 양극화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 전에 이미 시작되었으며, 트럼프가 물러난 뒤에도 남아 있을 것이다.

 

* 극단적인 양극화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첫째, 사회적 분열을 인정하면서 엘리트 집단 간의 협력과 타협을 도모하는 것이다. 칠레 : 1973년 칠레의 사회당과 기독민주당의 극심한 분열로 칠레 민주주의 무너짐.

피노체트 쿠데타로 집권

민주주의 연합은 1970년대와는 전혀 다른 정치행태를 보여주었다. 극심한 분열로 칠레의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것이라는 불안감에 휩싸인 정치 지도자들은 비공식적인 협력 규범을 마련했다. 칠레에서 합의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 규범에 따르면 대통령은 법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전에 모든 정당의 지도자를 만나 협의를 해야 한다.

아일윈 대통령과 기독민주당은 사회당을 비롯한 다른 정당과 함께 광범위한 논의를 거친 후에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아일윈은 자신의 동지들과 더불어 독재를 지지하고 피노체트를 옹호했던 우파 정당과도 함께 법안을 논의했다.

새로운 규범은 연합 내부에서, 그리고 연합과 야당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갈등의 위험을 줄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난 30년에 걸쳐 칠레는 남미에서 가장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민주주의 국가 중 하나로 떠올랐다.

 

* 공화당은 당파 갈등의 유발자였다.

2008년부터 공화당은 극단적인 정책 입장으로 마치 반체제 단체처럼 움직였다. 그리고 25년에 걸쳐 꾸준히 오른쪽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근간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지난 사반세기 동안 공화당 지도부 체제는 와해되었다.

첫 번째 : 부유한 외부 집단의 등장 때문이었다.
이들 집단은 엄청난 후원금을 기반으로
공화당 선출직 인사들에게 정책의 방향을 지시했다.
두 번째 : 폭스 뉴스를 비롯한 우파 매체의 영향력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코흐 형제(석유재벌)와 같은 부유한 후원자들, 그리고 영향력 있는 언론사는
공화당의 선출된 인사들에게 공화당 지도부보다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공화당은 미국 전역에서 승리했지만
공화당 체제라고 하는 것은 이제 유령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러한 공동화 현상으로 인해
공화당은 극단주의자 등장에 취약한 조직이 되어버렸다.

 

공화당은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 공화당의 기존 체제를 회복해야 한다.
재정, 풀뿌리 조직, 메시지 전달, 후보 공천에서
당 지도부가 권한을 되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지도부가 후원 단체와 우파 언론에서 자유로워질 때
공화당은 비로소 개혁을 추진할 수 있다.
우선 극단주의자를 주류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리고 지지자 집단의 구성을 다각화함으로써
점차 줄어들고 있는 백인 개신교 집단에 대한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


미국 공화당이 백인 민족주의를 내려놓고
극단적인 자유 시장 이념에서 한 발 물러설 수 있다면,
광범위한 종교적, 보수적 집단을 끌어 모아
장기적으로 탄탄한 지지기반을 다질 수 있을 것이다.(개신교+가톨릭+소수민족유권자)

 

 

*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의 민주화 과정

중도우파 연합인 기독민주동맹 :

1940년대 이전에 독일에는 체계적인 조직을 기반으로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민주적인 중도 정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독일의 보수 진영은 내부 분열과 허약한 조직으로 오랫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보수주의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 사이의 극단적인 분열로 중도우파에 정치 공백이 생겼고, 극단주의와 전제주의 세력은 이러한 상황을 적극 활용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결국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았다.

 

1945년 이후로 다양한 정치 기반의 중도우파 세력이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기독교민주동맹, 즉 기민당은 극단적인 전제주의와 결별했다.(아데나워) 기민당은 창당선언문에서 이전 정권이 지향했던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기민당은 또한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를 받아들임으로써 당의 기반을 확장하고 다각화했다. 그건 무척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나치와 제2차세계대전의 트라우마를 겪은 보수 가톨릭과 개신교 지도자들은 한때 독일 사회를 갈라놓았던 오랜 갈등의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고 믿었다. 독일 전후 민주주의 정착 과정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 민주당이 정치 지평을 다시 넓힐 수 있는 다른 길이 있다.

미국 사회의 뚜렷한 당파적 적대감은

최근 민족 다양성의 증가는 물론 경기 침체, 하위 계층의 임금 정체,

그리고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 불평등이 합쳐져 나타난 결과물이다.

오늘날 민족 요소가 뚜렷하게 투영된 당파적 양극화는

경제성장이 둔화되고, 특히 소득 하위 계층이 많은 피해를 입었던

1975년에서 지금에 이르는 동안 민족 다양성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지금 몇 십 년 동안의 경제 변화 속에서

많은 미국인들은 고용안정성이 떨어지고, 노동 시간은 길어지고,

신분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사회 적대감이 커지는 현상을 경험했다.

사회 적대감은 양극화를 강화한다.

심화되는 정치 양극화를 완화하기 위한 한 가지 방안은

민족을 떠나서 오랫동안 소외받았던 하위 계층의 생활고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 경제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은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정치 양극화를 완화할 수도, 오히려 심화시킬 수도 있다.

미국의 사회정책은
소득이나 생활수준이 특정 기준에 못 미치는 사람을 가려내기 위한
자산조사 방식에 크게 의존해왔다.
자산 조사를 바탕으로 한 복지 정책은
중산층들 사이에서 가난한 사람만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인식을 키웠다.
게다가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민족과 빈곤이 상당 부분 중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 정책은 특정 인종을 하위 계층으로 낙인찍는 결과를 낳았다.
영벅스 : 식료품 할인 구매권을 가지고 스테이크를 사 먹는 사람들을 의미.
북유럽 국가들은 보편적인 모델을 추구한다.
이러한 방식의 복지 정책은 정치 양극화 해소에 도움이 된다.
사회보장제도나 메디케어처럼
사회 구성원 대다수에게 혜택을 주는 복지 정책은
사회 적대감을 누그러뜨리고,
미국의 다양한 유권자 집단을 연결하는 다리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정책을 장기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인종 갈등에 따른 역풍은 일으키지 않으면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다.
: 포괄적 의료보험제도, 최저임금 상승, 보편적 기본소득.
또 다른 사례로는 가족 정책이 있다.
부모에게 유급 휴가를 주고, 맞벌이 부부에게 탁아소 이용을 지원하고,
혹은 대다수 유아를 대상으로 어린이집 교육을 제공하는 정부 프로그램을 말한다.
마지막 방안으로 민주당은 포괄적인 노동시장 정책도 고려할 수 있다.
여기서는 근로자를 교육하고 채용하는 기업에 대한 임금 보조금,
고등학교나 커뮤니티 칼리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실무 경험 프로그램,
광범위한 직업훈련, 해고 근로자를 대상으로 하는 교통비 지원 등이 있다.
이러한 정책은
사회 적대감과 양극화를 자극하는 경제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미국 정치를 재편하게 될 광범위하고 지속적인 연합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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