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웅치`이치 전적지

부실이 2022. 10. 30. 20:34

 

* 웅치전적지

 

웅치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완주군 소양면 신촌리 일원을 말한다. 음력 1592413일 조선에 침략한 왜군은 6월 말경에 전라도를 제외한 조선의 거의 모든 지역을 점령하였다. 하지만 선조가 왜군을 피해 북쪽으로 거처를 옮기고, 이순신의 활약으로 바닷길이 막혀 전쟁이 길어질 조짐이 보이자 왜군들은 전라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59278일 새벽, 왜장 고바야카와 타카카게가 이끄는 왜군이 전주로 진출하기 위해 웅치를 공격해 왔다. 김제군수 정담, 나주판관 이복남,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조선군은 진안 세동리부터 완주 산촌리까지 방어선을 구축하고 쳐들어오는 왜군과 혈전을 벌였다. 결사적으로 맞섰지만, 왜군의 지속적인 공격에 조선군의 1`2차 방어선이 무너지고 최후 방어선인 웅치 정상부에서 정담을 비롯한 많은 장정들이 장렬히 전사하였다.

당시 전투가 끝나고 왜군들은 조선군의 충성심과 용맹함에 감탄하여 조선군의 시신을 묻고 추모하는 뜻을 담아 조조선국충간의담이라고 쓴 푯말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79일 웅치를 넘은 왜군은 안덕원 근처까지 진출했지만, 웅치 전투에서 입은 전력의 심각한 손실과 안덕원 전투에서 황진에게 패배. 이정란 장군의 전주부성 방어태세 등 때문에 전의를 잃고 710일 진안으로 철수함으로써 전주부성 점령에 실패하였다.

웅치전적지 일원에서 일어난 격전은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후 웅치전적지 일원에서 활약한 조선군이 이치 전투에도 참전하여 승리하면서 왜군의 전라도 점령 의욕은 꺽이게 된다. 결국 웅치`이치전투가 있었기에 전라도가 지켜졌고, 이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이 승기를 잡는 요인이 되었다.

 

* 이치전적지

 

이치는 대둔산 기슭인 운주와 진산 사이의 고개를 말한다. 이치전적지는 선조 25(1592)에 조선군이 전라도를 침략한 왜군과 맞서 싸운 곳이다. 임진왜란이 한창일 때 왜군이 이곳을 넘어 전주성을 공력하려고 하였다. 동북현감 황진, 광주 목사 권율, 의병장 황박 등의 지휘 아래 전라도 관군 15백 명과 의병이 이곳 이치를 지키고 있었다. 조선군은 이치의 험난한 지형을 이용하여 장수 고바야카와가 이끄는 왜군을 물리쳤다.

이치전투의 중요한 의미는 웅치전투와 더불어 왜군의 기세를 꺾고 전라도를 지켜 낸 데 있다. 그리고 정유재란까지 조선의 군량 보급과 병력 보충 등에 크게 기여하여 조선군의 사기를 높이고,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데도 그 의미가 있다. 이곳에는 이치전투를 기리는 이치전적비를 비롯한 여러 기념물들이 서 있어 호국 정신을 드높이고 있다.

 

* 권율장군 이치대첩비

 

임진왜란 당시 명장 권율의 이치대첩을 기념하는 비이다. 이치(배티재)는 대둔산을 넘어 전부 완주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로, 임진왜란 당시 2만여 병력의 왜적이 이곳으로 진경(進境)하였는데, 먼저 길목을 지키던 권율 장군이 약 천오백명의 군사로 적을 섬멸하여 왜군의 호남 진출을 막았다. 이에 고종3년에 이치대첩비와 대첩사를 함께 세워 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