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 김영수 : 2025년 문고에 제출한 원고
김영수 작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는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인간통찰 15’ 라는 작은 제목을 별도로 달았다. 즉 차례에 열 다섯 개라는 큰 주제 아래 여러 개의 이야기들을 달고 있었다. 700쪽에 가까운 두꺼운 책으로, 내용 또한 쪽수만큼 두껍고 재미있다. 작가는 중국 한나라 때 사가였던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를 꼼꼼이 읽었고, [사기]의 역사 현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책 내용 중에는 [사기] 속의 인물들과 관계되는 사진들이 중간 들어 있어서 이천 년 전의 중국 역사가 사실이라는 점을 시각적으로 이해를 더하게 해준다.
지금 중국은 ‘신중화주의’를 꿈꾸면서 [공자]와 [사기]를 소프트 전략의 대표주자로 내세웠다고 한다. 사마천이 [사기] 속에서 꿈꾸었던 중국의 미래는 이것이 아닐 것이다. 사마천의 [사기]는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보편적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사기]의 정신을 공유한다면 특정한 목적이나 불순한 의도에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 춘추전국시대와 헬레니즘
춘추전국시대 약 550년은 중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다. 필자는 이 시기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했다’는 점을 늘 강조한다. 인간관계의 모든 갈등과 해결책이 제시되었고, 이 시대를 읽고 분석하기 위한 수많은 사상가와 철학가들이 등장했다. 과학기술을 비롯하여 사회 모든 분야가 사상유례가 없을 정도로 발전했고, 인간의 무한한 능력을 제대로 인식했다. 치열한 경쟁과 함께 활기찬 인적 교류가 진행되었다. 인간의 능력에 대한 긍정적 사고와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조건없이 경쟁적으로 모시는 풍토가 보편화되어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입증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기회의 시대이기도 했다.
[사기] 머리말 중에서
춘추전국시대가 중국사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였던 것처럼, 서양에서 고대의 그리스를 중심으로 한 헬레니즘 문화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와 닮은 점이 많다. 현대의 중국이 고대의 춘추전국시대에서 중국의 정체성을 보고자 하는 것처럼, 헬레니즘은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유럽을 형성하는 두 개의 정신적 기둥으로 우러름을 받는다.
유럽의 지성들이, 정신들이 영감을 얻고자 할 때면 찾아간다는 헬레니즘의 그리스. 사마천의 [사기]를 통해 바라본 춘추전국시대는 그리스 시대 못지않게 풍부한 창조의 원천이 될 수 있겠다는 예감이 든다. 춘추전국시대의 정신은 동아시아 속에서 여전히 살아 움직이고 있다. 그것은 2천 년을 지나온 시간 속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동양 문화의 오래된 우물이자, 인류가 공통으로 소중하게 누리고 지켜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
※ 사마천과 [사기]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읽는 동안 고대의 지성인 사마천이라는 사람이 감성적으로 다가온다. 기원전 145년에 태어나 기원전 91년에 세상을 떠났다는 고대인이 이렇듯 생생하게 멋있는 사람으로 느껴지다니! 사람이 세상을 사는 동안 소중하게 여겨야 할 덕목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많이 비켜가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사마천의 아버지 사다담은 관직이 태사령이었다. 역사에 관계되는 직업으로 사마천이 어려서부터 사관이 되는 길을 훈련시켰다. 13세 되는 해에 사다담은 사마천을 데리고 고향 가까운 곳에서부터 현장답사를 다니며 자료를 수집하였다. 20세가 되던 해에 사마천은 아버지의 권유로 중국 각지를 2젼 여에 걸쳐 여행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역사학자가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은 책을 쓰기 위한 기초 작업에 속한다. 22세가 되던 해에는 무제의 지방 순시에 동행하면서 각지의 민정과 풍속을 살피는 계기가 되었다. 35세 되던 해에는 무제의 명을 받아 서남지방 문물을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38세가 되던 해 아버지 사마담은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필생 사업이었던 [사기] 작업을 완성해 줄 것을 유언한다.
42세 때부터 왕명으로 저술에 들어간 [사기]는 6년 간 계속되었다. 헌데 ‘이릉의 화’라는 사건이 발생하여 사마천은 사형을 받아야 할 처지가 되었다. 그래도 워낙 왕의 신임을 받았던 터라 사마천은 사형 대신 당시로서는 사형 만큼 치욕스러운 궁형을 자청한다. 궁형은 남성의 성기를 절단하는 형벌이었다. [사기]를 마무리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치욕스러운 삶을 선택한 것이다. 50세가 되던 해, 사마천은 사면을 받고 환관에게 주어지는 중서령이라는 관직을 받아 [사기]를 완성하게 된다.
사마천은 55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릉의 화’를 당하기 전까지 사마천의 삶은 비교적 평온한 명문가의 집안 사람으로 살았다. 춘추전국시대를 지나온 지 일백여 년이 넘는 한나라 시대였지만, 나라의 기풍은 여전히 무인의 기풍이 서려 있었고, 국경에서는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때이기도 했다. 그런 시대였기 때문에 황제의 비위를 거스르는 어떤 작은 행동이라도, 반역의 작은 기미라도 보일라치면 그대로 죽음인 시대였다. 황제 또한 왕위 자리 보전을 위해 가장 가까운 친인척과 처절한 싸움이 쉴 새 없던 시절이었다. 폭력의 시대, 인간의 이성을 조각이라치면 아직은 거칠고 덜 다듬어진 단계라고 볼 수 있는 시대였다. 사마천의 생각은 시대를 앞질렀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역사서 [사기]를 통해 드러냈다. 역사적인 사실을 사실적으로 기록한다는 정사 [사기]에 사마천은 곳곳에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비판을 담기도 했다.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우리나라 고려시대 때 역사서인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스님의 [삼국유사].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사마천의 [사기]와 같은 기전체 방식의 정통의 역사서이다. 이에 반해 일연스님의 [삼국유사]는 정사인 [삼국사기]가 빠뜨린 부분들을 일연스님이 개인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편찬한 저서이다. [삼국사기]의 김부식과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사마천이 사형 대신 궁형이라는 치욕스러운 선택을 한 배경이 [사기]를 완성하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이 사무치게 다가왔었다. 김부식은 인생의 말년에 축적된 역량이 있었고, 그런 능력을 인정받아 나라에서는 정사인 [삼국사기]를 저작하라고 임명되었다.
일연스님은 75세 때 [삼국유사]를 저술했다고 한다. 나라가 몽고의 침입을 받았고,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일연스님은 직접 팔만대장경을 만드는 작업을 지휘하기도 했다. 백성들에게 힘이 되는 일, 나라가 어려울 때 긍지를 가지게 할 수 있는 것들을 [삼국유사]는 담고 있다. 모두 다 소중한 나라의 역사책이지만 그 책을 엮을 이들의 개인적인 삶의 여정에 눈길이 간다. [사기]가 사마천의 죽음과 바꾼 책이라면, [삼국유사]는 나라가 몽고에 시달리고 백성들이 고통받을 때 우리나라 과거 역사는 이렇게 자랑스러운 것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는 것이었다. 어떤 사무치는 것들이 그 책을 더욱 귀하게 하는 것 같다.
작가 사마천을 죽음에서 구원한 것이 [사기]였고, [사기]를 통해서 많은 인물들이 복숭아와 배나무로 부활되고 있었다. 도리불언사자성혜. 복숭아와 배나무는 말이 없지만 아름다운 꽃과 열매가 있어 사람들이 모이므로 그 밑에는 저절로 샛길이 생긴다는 뜻으로 덕이 높은 사람은 자기선전을 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듬을 비유했다. 또한 [사기]를 통해서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부활하고 치유되는 자신의 미래를 사마천은 예상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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