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웅천 : 역사 문화자원의 보고
웅천은 외교, 군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웅천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성곽이 남아있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최초의 개항장이었던 제포왜관이 설치되어 조선전기 한일간 문화와 문물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과 여성 독립운동가 김조이의 생가지가 이곳 웅천에 있어 항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제포왜관지
왜관은 조선 초 왜인들을 연안지역에 한정하여 정박하게 하고 통상을 허락한 공간이다. 제포(내이포)는 부산포, 울산의 염포와 더불어 삼포 가운데 하나로 1407년 개항하였다. 제포왜관은 이 개항장에 설치된 것으로, 여기에서 교역과 접대 등에 관한 일을 맡아보게 하였다.
부산포왜관과 염포왜관은 현대 도시화과정 속에 훼손되어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제포왜관은 그 구조가 확인된 유일한 왜관이며, 조선이 왜에게 토지를 할애하여 조성한 선린외교의 산물로 대왜 관계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창원 진해 웅천읍성
웅천읍성은 1407년 내이포를 개항하여 일본과 무역을 하게 되자 일본인의 불법거주가 많아져 이를 막고 읍면을 보호하기 위하여 세종 16년(1434) 축조하였다.
단종 1년(1453)에 증축이 있었으며, 중종 5년(1510)에는 삼포왜란으로 일시 함락되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웅천왜성의 자성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는데 임진왜란이 종결된 이후에도 조선군의 대일본방어 최일선기지로서 역할을 수행한 역사적으로 중요한 성곽이다.
* 창원 진해 제포진성
제포진성은 고려말 공양왕 2년(1390)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군만호진을 처음 설치하였고, 조선전기 성종 때는 경상도 우수군이 머물 수 있는 군영을 설치했던 곳이다.
수군은 배 위에서만 방어한다는 원칙이 성종 때에 무너지면서 경상도와 전라도 등 22곳에 수군진영을 만들었는데, 이 성은 성종 16년(1485)에 쌓기 시작하여 이듬해에 완성하였다. 성터는 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해안에 이르도록 자연지형을 이용하여 만들었으며 자연석으로 기반을 마련하였다. 성문 밖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쌓은 작은 성이 있으며, 성벽 주변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못을 파서 돌렸다.
* 제포 수중목책
진해 제포 수중 목책은 16세기 경 제덕만 일대의 수군의 군선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관방 유적이다. 제포 수중 목책은 삼포왜란 직후 왜의 선박 출입을 통제하고 우리 선박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서 제포진성의 육지 성곽을 보조하는 기능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97년 제덕만 일대의 매립공사 중 발견되어 조사되었으며 조사 후 이곳은 매립이 완료되었다.
* 창원 진해 웅천왜성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장기전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나라 남해안에 축조한 18개의 성 가운데 하나이며, 왜장 소서행장(고니시 유키나가)이 진을 치고 왜군의 제2기지로 활용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정상부에 본성을 두고 아래에 2개의 성을 질서있게 배치하였고, 육지방면의 방비를 철저히 하기 위하여 남쪽으로 긴 나성을 둘렀다.
[고적조사자료]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웅포성이라 하여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것을, 임진왜란 때 왜군이 보수하여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