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백제 기술 흙에 담다 :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부실이 2023. 1. 24. 15:06

* 백제 기술 흙에 담다 : 국립부여박물관 2022 특별전

2022.10.01. ~ 2023. 02. 29

 

 

* 전시를 열며

국립부여박물관은 2022년 백제의 테크놀로지(기술)를 조명하는 시즌 2 ‘백제 기술, 흙에 담다를 개최합니다.

이번 특별전은 이라는 재료에 주목하여 백제인의 흙 다루는 기술과 소조상의 예술성, 그리고 흙을 매개로 주변 국가와 교류한 내용을 담아 보았습니다. 백제 지역에는 토기를 비롯하여 건축에 사용한 기와와 벽돌 등 흙으로 만든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불교사찰에서 만든 소조상은 수량과 제작 기법에 있어 삼국 중 단연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전시에서는 백제뿐만 아니라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삼국시대 이후의 소조상도 함께 선보입니다.

 

* 흙에 아름다움을 담다

백제에서는 종류와 크기가 다른 다양한 토기를 만들어왔습니다. [뚜껑이 있는 굽 달린 사발, 손잡이 달린 그릇]은 곱게 정선된 태토를 사용하여 빚은 회백색 토기이며, 백제 최상급 토기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표면을 물손질하여 매끄럽고 단정하게 만든 형태는 유약을 바르지 않은 상태의 도자기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또한 [뚜껑이 있는 굽 달린 사발]의 뚜껑과 몸체에는 세로선을 새겨 넣어 서로의 짝을 맞출 수 있게 표시하였습니다. [호자]는 표면에 세밀한 표현은 생략되었지만 앞다리를 세우고 입을 벌리고 있는 익살스러운 호랑이를 연상시킵니다. 당시 백제 사람들은 이러한 토제품을 만들 때 편리함만 추구한 것이 아니라, 흙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과 즐거움도 함께 담았습니다.

 

* 흙에 지혜를 담다

백제는 침류왕 원년(384)에 중국의 동진(317~420)으로부터 불교를 받아들입니다. 한성기에 불교와 관련 있는 유적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최근 공주의 대통사지 발굴조사에서 소조상의 존재가 확인되었습니다. 백제에서는 늦어도 웅진기부터 소조상을 만들었으며, 이후 사비기에는 부여 정림사지, 익산 제석사지 등에서도 많은 소조상을 안치하였습니다.

소조상은 흙을 조형 재료로 사용하며 재료의 특성상 수분을 잃게 되면 수축으로 인한 변형과 함께 균열이 생기고 결국에는 무너지게 되는 재질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불상 내부에 골조()을 만들고 그 위에 흙을 덧붙였으며, 불에 구워 강도를 높이기도 하였습니다. 흙은 주변에서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경제적인 재료이며 제작에 필요한 도구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눈으로는 제한적으로 보였던 소조상의 내부를 과학의 힘을 빌려 조사한 결과 소조상의 뼈대를 이루는 다양한 골조와 흙의 종류를 다르게 하여 제작한 흔적이 확인되었습니다. 일부 소조상 표면에서는 금박도 확인되고 있어 채색할 때 금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소조 기술과 백제금동대향로

금속품을 제작하는 방법 중에는 금속을 녹여 틀에 붓고 모양을 만드는 주조기법이 있습니다. 이 틀을 거푸집(용범)이라고 부릅니다. 거푸집은 원하는 형태를 만들기 쉬우면서도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고온의 액체 금속으로 인해 녹거나 변형이 생기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액체 금속에서 발생하는 가스가 잘 배출되는 통기성도 필요합니다. 이에 가장 적합한 재료가 흙입니다. 금속품의 모양이 복잡할 경우, 밀랍처럼 열을 가하면 녹아내리는 재료를 이용하여 원하는 형상의 모형을 만들고 흙(거푸집)으로 그것을 감싼 후 열을 가해 모형을 거푸집으로부터 제거하는 밀랍주조법을 사용합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밀랍주조법을 사용한 대표적인 금속품입니다. 제작에 사용한 거푸집은 금속품이 완성되고 나면 용도를 다하여 폐기하기 때문에 남아 있지 않지만, 공정이 복잡한 금속품을 만들 때도 흙 다루는 기술은 반드시 필요하였습니다.

밀랍 : 꿀벌이 벌집을 만들기 위해 분비하는 물질로 상온에서 굳어지는 성질이 있다.

 

* 청양 본의리 출토 [소조 불상 대좌]의 과학적 조사

문화유산은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흔적을 남기며, 이 흔적을 통해 만든 시기와 제작 기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청양 본의리 출토 [소조 불상 대좌]와 같은 토제품은 크게 흙 쌓기`성형`건조`소성을 거쳐 제작되며 특히 성형과정에서 제작 기법과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토제품의 제작 기법을 파악하기 위해 눈으로 관찰하거나 탁본`사진 등을 이용하였지만 최근에는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영상 처리 및 분석 방법들이 널리 활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 기술은 3차원 스캐닝 모델을 이용한 디지털 가시화입니다. 이 기술은 스캔 자료 자체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형상에 위치`좌표`깊이`곡률`명암`음영 중 일부를 강조하거나 매핑하여 보여주는 컴퓨터 그래픽 기법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조 불상 대좌]의 제작 기법을 파악하기 위하여 3차원 스캔 데이터를 디지털로 볼 수 있게 하였고, 불상 대좌에 새긴 글자의 흔적도 다양한 방법으로 보여주고자 하였습니다.

 

* 과학으로 본 백제 소조상

우리가 아프거나 다쳤을 때, 병원에서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기 위해 X선 투과 촬영을 하거나 컴퓨터 단층 촬영(CT)을 합니다. 이처럼 문화유산에도 첨단과학 기술을 접목해 문화재를 훼손하지 않고 X선 투과촬영과 컴퓨터 단층 촬영을 하여 눈으로 볼 수 없는 부분을 조사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소조상의 내부를 과학의 힘을 빌려 비추어 보는 시도를 하였습니다.

과학적 조사에서는 소조상의 뼈대를 이루는 다양한 골조가 확인되었습니다. 눈으로 제한적으로 보였던 목심, 목심에 지푸라기 등의 식물을 감은 것, 갈대류를 엮고 지푸라기 등의 식물로 묶은 심, 금속심 등이 더욱 선명하게 나타났습니다. 또한 흙의 종류를 다르게 하여 제작한 흔적도 확인됩니다. 익산 제석사지 출토 소조상은 거친 흙으로 기초를 만들고 그 위에 고운 흙을 덧붙인 후 마지막으로 가장 고운 흙을 사용하고 채색을 하였습니다. 일부 소조상 표면에서는 금박도 확인되고 있어 채색할 때 금이 사용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소조상으로 소개된 부여 정림사지 출토 인물상을 조사한 결과 돌이라는 것을 밝히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 백제 사찰과 소조상

소조상은 한번 파괴되면 본래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올 수 없으므로 파괴된 건축 부재들과 함께 폐기장에 버려진 채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공주 대통사지`부여 정림사지`익산 제석사지` 출토 소조상은 사찰의 중심부에서 떨어져 있는 구덩이에서 깨진 기와 등과 함께 발견되어 폐기장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전하는 기록이 없어 많은 양의 소조상이 사찰의 어느 공간에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웃 나라인 중국과 일본에서는 목탑 내부에 부처님의 생애와 불교의 세계관 등 불교 경전의 내용을 소조상으로 표현한 사례가 있습니다. 백제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소조상을 활용하여 당시 백제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기 쉽게 설명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공주`부여`익산 지역 백제 사찰에서 출토된 소조상을 한 자리에 모았습니다. 흙이 주는 따뜻함을 지니면서도 사실적으로 표현된 백제 소조상이 본래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 백제 주변 나라의 소조상 : 중국, 고구려, 신라, 일본 소조상

중국에서는 불교 사찰의 건물 내부를 소조상으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하였습니다. 중국 강소성 보성사에는 당나라 양혜지의 작품으로 전하는 소조상이 남아 있습니다. 또한 북위 영녕사에서는 무려 1500여 점의 소조상이 출토되었습니다. 다양한 크기의 인물`동물`장식은 영녕사의 목탑 안을 화려하게 장엄하였습니다. 최근 중국 남조 지역에서도 소조상이 확인되고 있어 중국 전역에서 소조상이 제작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평양 원오리 사지 출토 고구려 소조상은 좌상과 입상 두 가지 종류가 출토되었습니다. 이 중 좌상의 틀()이 평양 토성리에서 발견되어 기와처럼 틀을 활용한 대량 생산이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신라에서는 소조상 제작에 능한 양지라는 승려가 경주 사천왕사 신장상 등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또한 경주 능지탑에서는 탑의 4면에 대형 소조상을 안치하였습니다. 소조상 안쪽에 서방불, 서방좌비 등의 글씨가 있어 제작 과정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불상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불에 구운 후 합쳐서 만들었다는 점에서 청양 본의리 출토 [소조 불상 대좌]와의 영향 관계가 이야기되기도 합니다.

일본은 중국과 한국에 비해 소조상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7세기 후반에 만든 다이마데라 소조상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소조상으로 제작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호류지 목탑 내부 4면에는 부처님의 일생을 표현한 소조상이 전해지고 있으며, 7세기 후반에 지은 가와라데라에서는 폐기장에서 다량의 소조상이 출토되었고 제작 기법과 폐기 상태가 백제 제석사지의 상태와 유사합니다.

 

* 흙에 그림을 담다

백제에서는 불상 이외에도 흙을 사용하여 벽화와 벽돌()을 만들어 건물의 내부를 장식하였습니다. 부여 부소산 사지`임강사지와 익산미륵사지`재석사지에서는 백제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벽화의 잔편이 출토되었습니다. 백제의 벽화에는 흙에 짚을 넣어 만든 벽에 백토를 바르고 그 위에 안료를 사용하여 인물, `식물, 기하학무늬 등을 그려넣었습니다. 온전하게 남아 있는 벽화가 없어 전체적인 모습은 알 수 없지만 중국 돈황 막고굴이나 일본 호류지 금당의 벽화와 유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부여 외리 유적에서 출토된 무늬 벽돌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식 벽돌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외리 무늬 벽돌은 크게 두 가지 조합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네모 바탕에 문양을 넣은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형으로 구슬무늬를 넣고 그 안에 다시 문양을 배치한 것입니다.

일반적인 무늬 벽돌과 달리 네 귀퉁이에는 홈이 있어 서로 연결하면 연꽃무늬와 산악무늬가 나타나도록 하였습니다. 벽돌 뒷면을 보면 손바닥이나 손을 이용해 누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문양이 새겨진 거푸집을 바닥에 놓은 후, 그 속에 흙을 채워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

 

* 흙에 기술을 담다

백제는 웅진기와 사비기에 중국 양나라와의 기술 교류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켰습니다. 웅진의 대통사를 건립할 때는 양나라의 기와 기술을 도입하여 백제식으로 해석한 연꽃무늬 수막새를 만들었습니다. 사비로 천도한 이후에는 대통사식수막새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고 서천 금덕리 가마터를 비롯하여 부여 왕흥사지`가탑리 사지`구아리 사지`관북리 유적 등에서도 비슷한 무늬의 수막새가 출토되었습니다.

또한 성왕은 538년 사비로 천도한 이후 도성의 정비 등을 목적으로 중국 양나라에 전문 기술자의 파견을 요청합니다. 이에 양나라는 백제에 불교 경전과 모시박사`공장`화사 등 전문 기술자를 파견합니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벽돌에는 양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공주 송산리 고분군과 같은 양나라식 벽돌이 부여 정동리 가마터에서도 발견되었습니다.

백제는 양나라와의 기술 교류 경험을 바탕으로 주변 나라에 적극적으로 문화를 전달하였습니다. 신라에서 황룡사 9층탑을 세울 때는 백제의 건축 기술자인 아비지가 주도하였으며, 일본 최초의 불교 사찰인 아스카데라를 세울 때는 와박사 등의 기술자 집단을 파견하였습니다. 실제로 대통사식수막새는 신라의 흥륜사지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며, 나아가 아스카데라를 비롯한 일본의 고대 사찰에서도 널리 채택되었습니다.

와박사 : 기와`소조상`금속품 거푸집 제작 등 흙을 다루는 전반적인 기술자

 

* 흙에 시간을 담다

백제 소조상에서 보이는 사실적인 표현과 골조()을 활용한 제작 기법은 백제 이후에도 확인됩니다. 보령 성주사지에서는 200여 점의 소조상이 출토되었습니다. 이 소조상은 신라 문성왕(839~857) 시대에 만든 삼천불로 추정되고 있으며, 목심에 흙을 붙여 성형한 후 불에 구워 단단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고려시대에도 소조상의 기록과 제작 사례가 많이 보입니다. 논산 개태사지에서 출토된 소조상은 실제 사람과 같은 코와 입술의 모습을 하고 있어 사실적인 인상을 줍니다. 서천 신검리 유적의 고려시대 건물지에서 발견된 소조상은 높은 온도에서 구워 강도가 단단하며 부처의 머리인 나발을 따로 제작하여 붙였습니다. 남원 실상사 소조상은 사찰 근처의 폐기장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아직 정식으로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백제 소조상이 폐기장에서 발견되는 사례가 있는 점을 생각할 때 향후 더 많은 자료가 나올 가능성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부여 무량사 극락전의 아미타여래삼존좌상과 같이 대형의 소조상이나 오백나한과 같은 작은 소조상도 함께 만들어집니다.

백제 이외의 지역에서 만든 대표적인 소조상으로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의 여래좌상이 있습니다.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온전하게 전하는 가장 오래된 소조상입니다. 예천 개심사지에서도 폐기장에서 고려시대의 소조 나한상이 발견되었습니다.

 

* 흙에 자유를 담다

백제 사람들의 흙 다루는 솜씨를 어떻게 보셨습니까? 백제의 소조상을 보면 천오백년 전의 사람들이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표현과 독창적이고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느낄 수 있습니다.

흙으로 만든 소조상은 돌이나 금속, 나무를 깍아 형태를 제작한 조각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부드럽고 따뜻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소조상에는 흙을 덧대고 붙여 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자유로움도 느낄 수 있습니다.

흙은 우리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으며 물을 첨가하면 언제든지 재생해서 사용할 수 있는 매우 경제적인 재료입니다. 백제 사람들은 흙의 특징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으며, 흙에 지혜와 노력을 담아 자유를 빚어냈습니다. 흙으로 만든 백제의 문화유산을 보며 백제 사람들의 자유로운 생각을 공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관람 후기

국립부여박물관 특별전 '백제 기술 흙에 담다'를 보고 왔다. 흙이라는 재료는 구하기 쉽고 다루기가 쉬운 소재로서

그만큼 부서지고 쉽고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함에도 많은 양이 만들어졌는 만큼 남아 있는 양도 

적지 않다. 

주제어로 '흙에  아름다움을 담다, 지혜를 담다, 그림을 담다, 기술을 담다' 라는 소제목들이 참 아름답다.

유물에 문학적 상상력이 이어진다. 전시된 유물의 전시 기법도 참 세련되고 품격이 느껴진다. 일상생활에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장소는 분명 비용이 발생되는 곳일텐데 박물관은 그 자리에 머무는 동안 품격있는 주인공이 되는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그런 분위기, 품격을 누리려고 한다.

 

오래 전에 부산박물관 대학에서 강의를 들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기억나는 것은 한 권의 책을 수강생들에게 제공했고 책의 내용은 몇 개의 주제로 이루어졌다. 예를 들면 '백제 기술 흙에 담다' 도 한 과목이 될 수 있다.

고대 무덤의 변천 과정, 탑의 변천과정, 부도에 대해서 등. 이렇게 주제를 가지고 강의자는 영상자료를 준비해서 수업이 참 재미있었다. 박물관에서는 이런 수업을 무료로 제공해주었고 수업을 접한 이후로 박물관은 의미있는 나들이 코스가 되고 있다. 일찍 귀에 담고 눈으로 익힌 것들이 한참 세월이 지나 싹을 틔우고 키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