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이 : 유경
읽은 때 : 2013년
* 유경
1960년생. cbs아나운서로 입사해 노인대상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진행. 이후 노인복지에 뜻을 세우고 복지현장에서 활동하다 학문적인 뒷받침의 필요를 느껴 이대 사회복지대학원에 입학해 공부. 현재 프리랜서 사회복지사로, 노인복지에 관심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연구모임을 이끌고 있음. 칼럼니스트, 죽음준비교육 전문 강사, 노년생활 및 노년준비 관련 현장강연, 방송출연, 노년문화 컨설팅 등 노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전방위 활동을 벌이고 있다.
* 시작 말
돈이 많아야 노년의 삶이 행복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한 노년이 가능하려면 우선 노년의 삶에 대한 사회적 담론이 풍부해져야 한다고 믿는다. 죽음은 노년의 삶을 가장 정직하게 비춰주는 거울로서, 죽음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확장된다면 노년의 삶도 더욱 풍성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개인이나 사회가 죽음을 올바르게 이해한다면 나이듦은 단순한 스러빔이나 소멸이 아니라 인생의 축적과 숙성의 결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죽음준비는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하면서 ‘바로 지금 여기서’ 잘 사는 일이다
결혼 날짜 받으면 결혼준비하고, 아기 낳기 전에 출산준비물 사고, 대학 가려고 입시 준비하고, 취직하려고 취업준비 하잖아요. 죽음준비 역시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자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까지 다 하려면 미리미리 서둘러야지요. ⇨ 죽음준비공부를 하고 나니까 인생의 설거지를 깨끗하게 해놓은 기분이야. 아주 개운해. 정말 고마워!
* 씨랜드 화재 사고로 숨진 아이들
세상에 과연 나와 동떨어진 그들의 죽음이란 것이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각자 따로따로 세상에 태어나지만 눈에 보이게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사는 게 우리들 인생일진대, 어찌 그들의 죽음이 나와는 무관하게 존재하겠는가. 불 속에서 숨져간 아이들이 나와는 얼굴 마주친 적 없는 먼 동네 아이들이었다 해도 어찌 그들의 죽음을 나 몰라라 밀쳐놓을 수 있겠는가. 세상에서 나와 아무 상관없는 그의 죽음은 없다는 것. 모두가 너의 죽음이며 그것은 곧 나의 죽음이기도 하다는 엄숙한 사실을.
* 서울 원목초등학교 소방안전교육 추락사고
학교에서 안전교육 중에 사고가 일어났으니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할 말이 없다. 사고 후 학생들을 조사한 결과, 사고를 직접 목격한 학생 285명 가운데 50%(144명)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세를 겪었고, 현장을 목격하지 않은 학생 1109명 가운데 15%(168명)가 스트레스성 불안 증세를 보인 것으로 발표했다.
눈앞에서 엄마를 잃은 아이들에게 그 어떤 것이 위로가 되며 그 무엇을 바꾼다 한들 기억을 떨칠 수 있으랴. 그래도 남은 삶을 조금이라도 덜 아프고 덜 힘들게 살아가도록 돕는 길을 찾아야 하니 그게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겠지. 거대한 파도에 휩쓸린 아이가 다시 일어나 걸으려면 무척 많은 시간과 주위의 진심 어린 도움이 필요하다. 부모를 잃는다는 건 아이들에게 가장 큰 아픔이며 시련이기에 주위 가족들은 물론 사회 전체의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여 보살피고 사랑으로 양육해야 아이들이 상처를 딛고 일어나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이는 우선 가까운 가족들이 자신과 똑같은 슬픔과 아픔을 어떤 식으로 극복하는지 보면서 배울 것이므로 집안과 주위 어른들의 역할과 태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아이들은 우리 사회가 죽음과 그로 인한 상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해내는지 그 방식을 보면서 치유의 길로 들어서거나 아니면 상처를 안으로 키워 병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니 사회가 평소 죽음을 금기어로 만들어 밀어낼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죽음을 삶의 영역 안에서 소화해 내고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는 슬픔의 여정을 아프고 힘들지만 누구든 끝까지 잘 걸어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엄마 잃은 아이들이 잘 걸을 수 있도록 길을 고르고 걸림돌을 치워주는 일, 우리들 어른들의 몫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우리의 몫, 나의 몫이다. 불의의 사고로 세상 떠난 엄마들도, 생각지 못한 사고로 엄마를 잃은 아이들도 결국은 나 자신일 수 있으며 내 사랑하는 아이일 수 있으므로.
* 국립 4·19 묘지
세상에 남은 자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너나 할 것 없이 나이 들고 늙어가지만, 사진 속 젊은 얼굴들은 영원히 늙지 않으며, 어린 얼굴들은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은 채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 삶과 죽음이 갈라놓은 길과 다시는 서로 만날 수 없게 떼어놓은 세상을 새록새록 되새기게 만들 것이다. 이들의 젊고 어린 얼굴에서 아무것도 배우고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바보다. 정말 이 많은 분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전쟁에서 개인의 일이 아닌 나라 일을 하느라 목숨을 잃었구나. 과연 내 목숨에 값하는 중한 가치라는 것은 무엇일까 의문이 일었다. 내 목숨을 바쳐 지켜내야 할 가치라는 것이 과연 있기나 한지 슬며시 회의도 생긴다.
오래전 서로를 죽이고 죽어야 했던 전쟁터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떠났을 자 얼마일까. 의미 부여를 한다면 못할 것이 없겠으나 수없이 많은 묘비의 숲을 지나며 허무를 극복하기에는 힘이 부족하다. 어느 무덤 앞.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것들을 가져다놓은 가족들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이미 이 세상에서는 벗어나 있지만 그래도 여기서의 만남과 사랑을 추억하는 것은 얼마나 소중하며 애틋한 일인지. 산책객 중 한 사람에 불과하지만 묘비 하나로 남은 분들과의 만남은 삶을 그리고 목숨에 값하는 우리들 생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준다.
* 내리는 비하고 싸우지 마세요.
나한테 짜증스런 비가 저 멀리 누군가에게는 고마운 비일 수 있습니다. 비오면 비오는대로 그냥 그렇게 삽시다. 나는 속으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날씨 때문에 화내지 않기로 결심을 했고 그 다짐을 지켜오고 있다.
자연을 완전히 지배하는 양 잘난 체하면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느날 갑자기 지진과 홍수와 태풍과 해일이 밀어닥쳐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거나 다치고 살던 터전이 다 망가지게 되면 우리는 우선 충격을 받으면서 잊고 살았던 자연의 거대한 힘에 몸을 떨곤 한다. 그 놀람에서 정신 차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무서운 사건의 한 가운데에서 온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게 된다.
사람은 어디서 어떤 이유로 죽음을 맞이할지 알 수 없을 뿐, 누구나 죽는 것은 분명하며 그 사실을 모두가 잘 알고 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죽음도 마찬가지여서 전혀 예기치 못한 순간에 죽음과 맞닥뜨렸을 뿐 죽음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일상이 그대로 유지되는 상황이었다면 아직 죽음이 이르지 않았으리라는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어느 빗줄기, 어느 바람에 휩쓸려 갈지 모르는 약한 생명임을 인정할 일이다. 그래야만 또다시 일어서서 남은 생을 살아갈 수 있다. 등이 붙은 쌍둥이인 삶과 죽음. 우리들 살아 있는 두 눈이 뒤를 보지 못하고 앞만 보며 살게 만들어져 있어 두 눈 똑바로 뜨고는 죽음의 형상을 볼 수 없다 해도, 언제 어디서든 죽음을 따라나설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하는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 정윤수(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죽음으로만 내가 저지른 죽음을 갚을 수 있고, 죽음으로만 유족들의 아픔을 씻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라도 우리가 가해자의 인권과 존엄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저 구석에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아무런 배려와 위로도 받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건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우리 곁에서 울고 있는 범죄 피해자들은 결코 그들이 아니며 남이 아니다. 바로 우리일 수 있다. 누구든 범죄 피해자가 될 수 있으므로, 그것도 언제 어디서든 그렇게 될 수 있다.
버스 창문이 열려 있어 바람이 들이닥칠 때 한 사람은 창문을 닫자고 하고, 다른 한 사람은 열어놓자고 하면 누구 편에 서는 게 맞는 것일까. 나는 약한 사람 쪽에 서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 자살 : 자살한 집안에서는 반드시 이어서 자살자가 나오는 법입니다.
낙인이야말로 우리 곁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자살에 대해 분명하게 인식하고 제대로 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을 방해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자살은 외면하고 싶지만 그래도 엄연히 우리들 살아가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삶의 일부분이기 때문에 반드시 공개적으로 이야기해야만 한다. 그래야 문화가 바뀌고 자살예방에도 도움이 되며 그 유가족들도 남은 생을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아도 아픈 사람들에게 그런 낙인을 찍는 일은 함께 살아가는 우리 사이에 서로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흔히 자살은 ‘가족 내의 비밀’로 묻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흘러 새로운 세대가 태어나 이어져도 그것만은 다음 세대에 전달하지 않고 숨기면서 그것을 경험했고 기억하는 가족 이외에는 서로 공유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을 견딜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원인은 가족들 자신이 그 일을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족들의 충격, 슬픔, 죄책감, 아쉬움, 절망, 안타까움, 분노, 원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어서 그들 자신이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느끼고 실제로 뒤따라서 목숨을 끊기도 한다.
한 사람이 죽으면 보통 혈연관계에서 여섯 명의 유가족이 생겨난다고 말하는데, 가족은 아니더라도 친구나 친지 등 그 영향권 안에 드는 사람까지 합하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자살에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노출되어 충격을 받는다. 오죽하면 이들을 일컬어 ‘자살 생존자’라고 하겠는가. 자살을 시도했다가 살아난 사람을 ‘생존자’라고 부를 정도니 자살 사건이 남은 사람들 혹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참고로 자살 시도 후 살아난 사람에 대해서는 ‘시도자’라는 단어를 쓴다.
* 어느 목사님의 말씀
‘자살한 사람의 영혼 구원 문제는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된다는 뜻은 아니고. 다만 우리들의 잣대를 가지고 단죄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남은 가족의 평안을 위해서 기도하고 위로해야 합니다. 저는 가여운 영혼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시기를 간구할 것이고, 아울러 가족들의 큰 슬픔을 위로해 주시기를 빌 겁니다.’
* 자살자 유가족 자조 모임
‘자살 생존자’들의 남은 인생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살이 일어난 이유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끝없이 묻는 왜?왜? 의 인생이며 만약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을 되풀이하는 가정의 인생일 수 있다. 그들이 이런 삶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적·정서적 지원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막 시작한 단계다.
서울시광역정신보건센터에서 지난 5월 처음으로 ‘자살자 유가족 자조모임’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같은 처지에 있는 유가족들이 자신의 감정과 경험을 털어놓으면서 도움을 받고 또한 자신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상처를 회복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자살은 결코 혼자 죽는 게 아니다. 다른 죽음의 경우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을 보내지만 자살에는 낙인을 찍는다. 낙인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남아서 겪을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처절한 고통을 생각해보자. 자살자가 죽는 그 순간, 나중에 자살 생존자로 불릴 그들도 어느 한 부분 혹은 전체가 함께 죽는 것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그들이 글자 그대로 그들이 아닌 것은 우리들을 데리고 갔기 때문이다.
가족들은 상대적인 나이가 아닌 지금 그 사람만을 보기에 나이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없이 최선을 다해 치료하고 기도로 매달리며 제발 죽음이 피해가기를, 죽음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나이가 적다고 죽어서는 안 되고, 나이 많다고 죽는 게 아깝지 않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인생의 간난신고를 겪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해낸 사람이 가는 길까지 무턱대고 애통해하며 붙잡아야 하는지, 생각해본다.
* 자기자신도 또 다른 사람도 살 만큼 살았다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천수를 누리고 간 거라고 나는 믿는다.
아쉽다고 해서, 안타깝다고 해서 죽음의 길을 거부하거나 가는 사람을 내게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태어나 누구나 한 번은 가는 길. 내게 주어진 생의 의무와 역할을 무사히 다 마치고 기쁨과 슬픔의 높낮이를 골고루 경험했다면 가는 길 또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
잘 떠나고 잘 보내는 일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헤어짐이며 그 지점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떠난 사람에게나 이 땅에 남은 사람에게나 또 다시 새로운 만남을 기약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 봐도 살 만큼 살다 가셨다 생각되는 분의 떠남이 나는 부럽기만 하다.
* 삼풍백화점 붕괴
502명이 목숨을 잃고 937명이 크게 다친 사고, 부실 공사와 부정이 연루된 어이없고 황당한 사고, 불법 증축과 개조가 불러온 예견된 사고. 자연재해가 아닌 전형적인 인재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그 뿐.
백화점이 무너지고,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파되고, 전쟁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전혀 나와는 무관한 세상. 다른 사람들의 일이다.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사건이나 사고는 늘 놀람과 충격으로 다가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금방 잊혀지는 우리들 일상이며, 언제 어디서 어떤 사건과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고 하면서도 나에게만은, 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만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는 착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죽음준비는 필요한 것. 목숨을 잃는 사건과 사고에 맞닥뜨렸을 때는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닫지만 슬프게도 사랑한다는 한 마디조차 전하지도 못한 채 떠나고 보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나는 2006년도에 남편과 함께 뇌사 시에는 모든 장기를, 사망 시에는 각막과 조직을 기증하겠다고 서약했다.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모두 가족의 동의 없이는 안 되므로 아직 미성년이지만 두 아이에게 우리의 뜻을 잘 설명했고, 유언장에도 나의 뜻대로 해주기를 바란다고 분명하게 밝혀둔 것이다.
보통 장기기증과 이식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조직기증은 덜 알려져 있다. 대한인체조직은행에 따르면 조직기능이란 인체조직 안전 및 관리 등에 관한 법률에서 정하는 폐, 연골, 근막, 피부, 양막, 인대 및 건, 심장판막, 혈관을 본인이 생전에 기증 희망 의사를 밝혔거나 사후에 보호자가 동의한 경우 기증하는 것을 뜻한다.
암으로 다리를 절단해야 할 환자가 뼈 이식을 받아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심한 화상을 입은 아기가 피부 이식을 통해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증자의 조직 채취 과정에는 세척, 건조, 가공 처리 같은 용어들이 사용되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으나 이것이 인간을 물화하는 표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인체의 사용이 인간의 존엄성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생명이 다한 몸으로 다른 귀한 생명을 구하는 것이기에 참으로 의미있고 소중한 일이라고 믿는다. 다만 인간의 귀한 몸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그 모든 과정이 엄숙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사회구성원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그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는 일은 백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나는 선하게 쓰일 것을 믿고 기증 약속을 했고, 그것을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게 사용하는 경우 그렇게 하는 사람이 나쁜 것이지 나의 선의만큼은 결심한 그대로 남은 가족들이 실천해주었으면 한다고 대답한다.
* 안락사와 존엄사
소생이 가능하지만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 자연적인 사망을 앞당기는 것은 안락사. 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은 존엄사. 그래서 존엄사는 자연사이며, 이때 환자의 통증관리 등을 위한 완화의료 행위는 당연히 지속한다.
어떻게 가시든 자식들 마음속에 후회야 남는 거고, 본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게 제일 좋을 거 같은데, 문제는 원하는 걸 말로 못할 때가 온다는 것. 그래서 ‘생존시 유언서’가 있다고 말씀드린다. 유언장은 보통 사후에 공개되지만 이것은 살아 있을 때 충분히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효과가 있어 ‘생전유언’이라고 부른다. 소생이 불가능할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말되 통증을 완화시키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해줄 것을 문서에 적고 서명을 해두는 것이다. 법적인 효력은 없으나 환자 자신의 의사결정을 분명하게 밝혀 둘 수 있어 보호자들이 판단하는 데 영향을 줄 수 있다.
자신의 죽음의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는 것도 죽음준비의 한 항목이다.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것은 결코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의미가 아니고, 자신이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맞이하고 싶은 죽음의 방식을 미리 정해놓는 것이다. 구체적인 의사표시를 해두면 남은 가족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이 과정 자체가 죽음을 통해 삶을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된다. 마지막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가고 싶은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소망 아니겠는가.
* 죽음준비학교
수업을 할 때는 가능하면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가슴 속에 있는 죽음에 대한 기억, 느낌, 경험, 아픔, 슬픔, 분노, 죄책감, 그리움 같은 것들을 꺼내놓으시도록 돕는다. 함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동안 다 같이 가슴 아파하며 위로하는 것은 역시 자식 앞세운 이야기다.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위로 받을 수 없는 고통이며 슬픔이며 아픔이기에.
직접 죽음에 직면하든 떠난 사람 뒤에 살아 남겨지든 그 누구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죽음은 그래서 자꾸 이야기되어야 하고 서로 나누어야 한다고 믿는다. 깊은 이해와 공감은 우리의 상한 마음을 위로해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을 주며 무릎 꺽이는 절망에서 일어나 걷게 하기 때문이다.
* 죽음의 느낌
수많은 단어 가운데 어르신들이 가장 많이 말씀하시고 공감을 나타내는 단어는 두려움이다. 죽음이 두려운 이유는 우선 죽을 때 아플까봐서이다. 살아오면서 보고 겪은 죽음 가운데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며 인간의 존엄성 같은 것은 생각해볼 여지도 없이 생을 마감하는 경우도 많았기에 그것은 두려움이 되어 어르신들 가슴에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다음으로 자식들이나 주변 사람들한테 폐를 끼칠까봐 두렵다고들 하신다. 떠나는 당사자는 그렇다쳐도 자식들한테 괴로움을 주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소망이 두려움이라는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생각과 느낌이 중요하다. 죽음마저 다른 사람이 만들어놓은 기준이나 틀 속에 넣을 필요는 없다. 또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들 개개인이 끊임없이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탐구할 때 죽음은 우리의 일상이면서도 단 한 번뿐인 우리들 생의 최종 단계임을 스스로 증명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마지막 계단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을 향해 이어져 있기에 한없이 자유로우며 아름답다.
* 인생 그래프
인생그래프 그리기 수업을 마무리하면 어르신들은 저절로 느끼신다. 오르내림 없이 일직선으로 그려지는 인생 그래프는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똑같은 인생 곡선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는 것을. 남은 인생의 곡선을 성공과 행복을 뜻하는 위쪽에 그려 넣을지 실패와 불행을 뜻하는 아래쪽에 그려 넣을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살아온 인생을 중간 점검하며 인생그래프를 그려보자.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내 인생의 최하점수를 받기도 하고, 평범했던 시절이 최고의 행복 기간으로 점수 매겨지기도 할 것이다. 20대에 있었던 어떤 괴로웠던 일을 떠올리면서 내 인생에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최악의 불행이라고 40대에는 생각했을지 몰라도, 더 오랜 시간이 지나 70대에 이르면 살아오면서 누구나 충분히 겪을 수 있는 그저 그런 보통의 일로 여길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손으로 오늘 그린 ‘내 인생의 그래프’가 내일은 또 다른 모양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이다. 다 그려진 그래프를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면 저절로 장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비를 오르고 내리막으로 미끄러지면서도 열심히 살았구나. 짧든 길든 굴곡 있는 인생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스스로가 대견해지기도 하다. 인생그래프 그리기는 간단하게 내 인생을 조망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을 기록하고 함께 나누면서 어르신들은 감사와 용서와 화해를 생각하신다. 죽음준비를 하며 맺힌 것을 풀고 가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비록 그 상대가 세상을 떠났거나, 이제는 어디에서도 그 사람을 찾을 길 없다 해도 어르신들 가슴에는 감사와 용서와 화해가 싹튼 이상 그것은 이미 이루어졌다고 나는 믿는다. 어르신들의 진심이 반드시 그 상대방에게 가닿았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지금 이 땅에 있든 없든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리라. 죽음 준비교육을 하다보면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이 한 줄로 이어진 존재임을 느끼게 된다.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 하나이듯, 삶과 죽음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우리들을 평생 따라다니고 짓누르던 것들을 각자 마음속에서 꺼내 적어보니 사람 마음이 다 거기서 거기. 그러니 버리고 싶은 것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더 이상 미루지 않기. 한 달 남았을 때 하지 말고 당장 하기. 왜 목숨이 한 달 남았을 때 하냐고. 그래서 죽음준비교육은 곧 삶의 교육일 수밖에 없다. 생각이나 말과 달리 글자가 되어 구체적인 형상을 갖게 되면 신기하게도 그 단어 혹은 그 일이 현실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 왜 미룰 필요가 없는지, 왜 미뤄서는 안 되는지, 왜 지금 당장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 죽음준비는
죽을 날짜를 받아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 속에서 매일 하는 일. 날마다 새로 태어나고 새롭게 죽음으로써 비로소 우리들 생이 여기 이렇게 존재하는 것이므로 그러니 결코 내일로, 다음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 사랑도, 용서도, 화해도, 감사도. 어르신들이 진지하게 자신이 떠난 후의 일들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사후 처리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신다. 이 고민이야말로 죽음준비의 핵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고민 속에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용서하고 화해하며 정리할 것은 무엇인지 하나씩 끄집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 준비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다가올지 모르는 죽음을 기억하며 지금을 그리고 일상을 사는 것이다. 메멘토 모리(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죽음을 기억하고 생각하며 살 때 우리는 진정 지금 여기서의 삶에 충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생존시 유언서
저는 제가 병에 걸려 치료가 불가능하고 죽음이 임박할 경우를 대비하여 저의 가족, 친척, 저의 치료를 맡은 분들께 다음과 같은 저의 희망을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선언서는 저의 정신이 아직 온전한 상태에 있을 때 적어놓은 것입니다. 저의 병이 현대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고, 곧 죽음이 임박하리라는 진단을 받은 경우, 죽는 시간을 뒤로 미루기 위한 연명조치는 일체 거부합니다. 다만 그런 경우 저의 고통을 완화하기 위한 조치는 최대한 취해주시기 바랍니다. 이로 인해, 마약 등의 부작용으로 죽음을 일찍 맞는다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몇 개월 이상 이른바 식물인간 상태일 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연명조치를 중단해주시기 바랍니다.
* 사전 의료지시서
만일에 내가 지속적인 혼수상태(또는 임종 직전의 상태, 의식이 없는 상태, 치매 상태, 또는 결정능력이 없는 무능력 상태 등)로 나의 주치의사와 두 명의 자문의사의 의견이, 어떠한 치료에 의해서도 의식 회복 가능성이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할 경우, 이에 대한 대처나 앞으로의 어떤 추가적인 질병에 대한 나의 소망과 목적은, 의료적으로 합당하게 밝힘.
* 사전의료지시서 Q&A
Q 사전의료지시서는 왜 작성해야 하나. (불의의 사고·불치병 등 대비. 반드시 증인 2명 있어야) “가족과 주변 사람이 의료결정이 필요한 당사자(환자 또는 예비환자)의 의견을 알지 못해 당황하고 감정의 혼란을 겪을 수 있고 환자가 원하지 않는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상황을 막을 수 있다.” Q 누가 작성할 수 있나. “18세 이상으로 정확한 의료에 대해 이해하고 의사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능하다. 뇌 전체의 기능이 정지됐거나 정확한 의료에 대해 이해가 불가능한 사람을 대신해서 작성할 수 없다.” Q 의료에 대한 법적 대리인은 누구를 선택하나. “환자 자신의 가치관과 사전 의료 지시서에 명시된 선택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행할 수 있는 가족을 1차 대리인으로 지정한다. 2차 대리인은 1차 대리인의 자격을 대신하며 가족 또는 주변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주치의 또는 현재 거주하는 곳에 고용된 직원, 사회복지사 등을 법적 대리인으로 선택할 수 없다.” Q 증인이 필요한가. “증인은 반드시 2명 이상이어야 한다. 제1증인은 법적 대리인과 의료진을 제외한 18세 이상의 성인이어야 하며 제2증인은 재산 상속이 가능한 가족이나 친척을 제외한 성인이어야 한다. 만일 2명의 증인이 불가능할 경우 공증을 통해 사전의료지시서를 직접 작성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보관 방법은 “사전의료지시서는 작성하기 전 가족과 충분히 의견을 나눈 뒤 작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성 후 원본은 누구나 잘 찾을 수 있는 장소(집)에 보관하고 가족, 법적 대리인, 주치의 등에게 알려 사본을 보관하도록 한다. 사본 역시 법적으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
누구나 가진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슬픔과 아픔의 기억, 거기서 오는 회피 심리를 똑같이 지니고 있었지만, 이제 그것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났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당당한 목소리를 내실 수 있는 것이리라.
좋은 죽음,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그 길을 찾는 노력이야말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노년을 풍성하고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사실만은 믿어 의심치 않는다.
* 죽음불안척도와 생활만족도 조사
수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르신들의 변화를 눈으로 귀로 확인하고 마음으로 충분히 느낀다. 그것은 어르신들 스스로가 어느 틈엔가 자신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고 자발적으로 그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죽음은 떠나는 자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며, 당사자 한 사람의 준비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죽음은 나의 문제이며 동시에 나와 관계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것을 함께 인정하고 나누는 일은 죽음준비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죽음의 과정을 가장 가까이에서 함께 겪고 그 길을 서로 의지하며 걸어가야 하는 가족들이 죽음에 대한 바른 인식과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거나 죽음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을 때, 아무리 당사자가 자신의 방식대로 잘 죽고자 열망해도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원하지 않는 연명치료 등 자신의 의사에 반하는 일을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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