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생의 한 가운데 : 루이제 린저

부실이 2020. 12. 11. 15:04

지은이 : 루이제 린저

읽은 때 : 2009년

 

* 루이제 린저(1911-2002년)

1911년 독일 바이에른에서 태어난 루이제 린저는 뮌헨대학에서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뒤 한때 교편을 잡기도 했다. 1940년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를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1944년 나치즘에 반대하다 투옥되었고 이때의 체험을 살려 <옥중기>로 펴냈다. 평생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적극 개입하며 다양한 저술활동을 했고 작곡가 윤이상과의 대담집 <상처 입은 용>을 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슈켈레 문학상(1952), 하인리히 만 상(1987), 엘리자베트 랑게서 문학상(1988) 등을 수상했다.

 

* 작품 해설

니나의 삶을 통해, 암담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꿋꿋이 영위해 가는 여성의 전형을 제시함으로써 작가 루이제 린저는 전후 독일문단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었다. 니나의 삶은 그 자체가 사랑이며 도전이고 모험이다. 그녀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세상의 평판이나 도덕률에 구애받지도 않는다. 이처럼 자유로운 영혼이 있었기에 그녀는 나치에 저항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외부를 향한 영혼의 날카로움에 내부는 찢기고 피 흘린다. 그 반대편에 슈타인이 서 있다. 니나가 삶의 한가운데에서 치열함을 보여준다면, 반대편에 서서 사랑하는 사람을 응시하는 슈타인 역시 고독 가운데 삶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또 다른 사람임을 보여주고 있다.

 

* 줄거리

소설은 암에 걸려 죽음을 앞둔 슈타인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일기장을 보냄으로써 진실을 밝히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평범한 중년남성인 의사 슈타인은 어린 소녀 니나 부슈만을 만나면서 운명적인 관계를 지속한다. 슈타인은 어느새 니나를 사랑하게 되지만, 니나보다 20년 연상인 그의 입장에서 니나에 대한 사랑을 이루는 일은 쉽지 않다. 두 사람의 기질적 불일치 역시 그로 하여금 관찰자의 입장에만 머물도록 한다.

광기와 절망에 찬 소녀의 삶은 기존의 질서를 뒤흔들며 파격으로 치닫는다.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나치즘에 저항하다 투옥되는가 하면, 자살을 기도한다. 의사 슈타인은 18년 동안 삶의 한가운데 서서 이 모든 질곡을 굳건히 받아들일 뿐이다. 그는 휴머니즘과 합리적 이성이라는 윤리적 도덕률에 갇혀,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그 무게를 버티다 스러져간다.

 

[내용정리]

 

니나 부슈만 : 우리는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고 자기 자신과 게임을 할 수 있어. 자기 자신의 내부를 보면 수백 개의 서로 다른 자아가 보여.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될 수 있어.

 

마가렛 : 니나가 자신을 내맡기고 있는 인생이 나보다는 니나를 더 잘 돌봐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걱정 때문에 손질도 못한 얼굴, 절망적이고 침울한 얼굴이지만 그렇지만 생명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폭풍우에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며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니나 :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 일단 제가 떠맡은 것이니까요. 이제 와서 도망을 친다면 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될 거에요. 그것이 나의 할 일이 아니라면 나는 그 일에 매여 있지 않았을 거예요’

운명에 대한 니나의 믿음은 요지부동이었다. 이것이 그녀의 강점이며, 그녀를 보호해주고 지탱해주는 것이었다. 1933년, 친척 할머니를 돌보는 니나,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는 니나.

 

나는 할머니를 오랫동안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생전 처음으로 인간이 정신적으로 자신을 구원하지 못하면

삶은 끔찍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도 그럴 것이 여기 있는 이 늙은 여자만 그러는 게 아니니까요.

할머니의 파멸은 할머니만의 파멸이 아니죠.

팔십이 넘은 나이에 악의에 차고 고집불통으로 일방통행이 되고 낯뜨거워질 정도로 탐욕스러워진다면

대체 그 인간이란 뭔가요?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그들대로 너무 지쳐 살아온 의미가 없다고 말해요.

전 늘 사람이 나이가 들면 착해진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늙음이 두렵지 않았어요. 

이젠 틀려요. 만약 저도 그렇게 된다면 대체 왜 사는걸까요?

 

나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도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우리에겐 하나같이 허영심이 있어. 우리 자신에게 조심스러워야 돼. 이런 싸구려 효과를 자신에게 허락할 때

우리는 빨리 타락하고 말거든.

 

니나는 무슨 일이 있든 어떤 것을 꼭 잡고 있을 그런 형은 아니다. 그녀는 집시를 닮은 구석을 지니고 있어. 

기분내키는데로 천막을 치고 한동안 살다가 그 곳을 알고나면 망설임없이 내던지고 출발한다.

니나의 표정에는 고향 잃은 사람의 비애와 야생적 자유가 지니는 행복감이 함께 있었다. 

모든 것이 살고 있는 가득찬 생!  

 

그는 그의 생을 가득 차지하는 일을 갖고 있었고 삶에 생기를 주는 사랑을 지니고 있었어.

행복이란 결국 늘 생기를 지니고 무엇엔가 몰두해 있는 가운데 있는 게 아닐까?

 

누구든 자기 자신에 관해 얘기해선 안됩니다. 자기자신에게까지도, 마음을 털어놓고 나면 우리 더욱 가난하고

외로워지니까요. 속마음을 서로에게 얘기함으로써 타인과 가까워지리라는 건 환상에 불과합니다.

전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여야 한다는 것 이상은 알지 못합니다.

제 내면에는 숱한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은 그 어느것도 미정이고 이제 시발점에 놓여 있을 뿐입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무엇에 스스로를 묶어 둘 수 있겠어요. 전 아직 알 수 없습니다.

 

슈타인 : 죽은 뒤에 생전의 죄를 속죄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오. 내가 지은 죄란 결단을 회피했다는 것이오. 나는 그것이 비겁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물어보오. 아마 유약했기 때문일 것이오.

 

나는 곧 내가 계속 자신을 속이고 있음을 알았다. 내 인생에는 전혀 방해물이 없었다. 상처도 없었다. 지금까지 모든 일은 잘되어 왔다. 그러나 또한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는 남자가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나는 나 자신을, 삶을 떠올려보았다. 어떤 큰 사건이 금전적 걱정이 없는 삶, 갈등이 있어도 얼마간의 자기기만과 관용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질 정도에 지나지 않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아름답고 조용한 삶이었다. 나는 더 이상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니나는 자기가 바랄 수 있는 모든 것, 재능과 삶과 정열과 그 남자를 가졌다. 말없이 격렬한 정열, 비상한 극복의 힘, 이별.

 

나는 나에게는 없고 그녀에게만 있는 그녀의 순수하고 강한 특성들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다름 아닌 그녀의 용기와 생에 대한 집요한 호기심, 단호함을 말이다. 니나는 모험을 하기 위해 태어난 여자였다. 나는 그 용기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고. 그녀의 용기, 정신, 본질은 넓은 무대가 필요하다.

 

이런 정도의 책임감, 이러한 확고한 자신감, 객관적으로 필수불가결한 것에 대한 정확한 감각이 약간은 비인간적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이런 성격은 어디에서 획득한 것일까? 그러나 나는 그것을 찾을 수 없었다. 니나는 차갑지 않았으며, 메마르지 않았다. 냉혹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열정이 있었으며,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여러 정신적 자세를 얻기까지 니나는 어떤 대가를 치렀을까? 이제 나는 니나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토록 강력한 힘과 용기를 요구한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 앞에 있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네트 아주머니 : 내 생각에는 네가 그 애를 계속 옆에 둘 수 없을 것 같구나. 그애는 네가 갖고 있는 조용한 세계에서는 살 수 없을 거다. 뜨거움, 소란, 변화들이 있어야 하는 애다. 그 애는 많은 모험을 무릅쓸 그런 종류의 여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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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위로하지 않았다. 이때 나는 고통이 생명의 샘이 있는 저 심층까지 파고들어간 것을 느꼈다. 고통이 생명의 샘을 뚫고, 새로운 물, 새로운 생명이 용솟음치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밝은 기분이 다가오는 것을 느낀다. 수년 전부터 알지 못하고 지냈던 생의 위기가 극복되었다고 느낀다. 이제 나는 알았으니 더 이상 그것으로 미망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니나를 사랑한다. 나는 절대 잃을 수 없는 새로운 순화된 방식으로 니나를 사랑한다. 나를 구원하고 고통에 대해서 니나에게 감사한다. 지난밤의 눈물은 내 인생의 경직된 궁핍함을 씻겨 내려가게 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새로운 밝은 기분의 어두운 밑바닥인 체념의 슬픔이다.

니나는 내가 가지려고 했고 되기를 원했던 모든 것에 대한 비유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라도 항상 있어주면 좋겠다. 니나는 생 자체에 대한 비유이다.

 

이번의 생의 위기는(1937년 1월 자살 기도) 니나에게 커다란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들은 그녀 안에 있는 가장 깊은 층을 생명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러나 그녀가 완쾌되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모른다. 니나는 선과 악 두 방향 모두에서 커다란 힘을 펼칠 수 있는 여자다. 그는 긴장과 위험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1937년 7월 니나 아들 출산. / 10월 니나, 할과 이혼.

 

1947년 5월

니나를 얻기 위한 투쟁은 한 특별한 여성을 얻겠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특수한 방향으로 나 자신의 본질을 인식하고 발전시키려는 투쟁뿐이었다. 가령 이 여자 혹은 저 여자를 선택할 때 중요한 것은 자기 본질의 이런 가능성 저런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었다. 니나는 나 자신에게서 부인하려고 한 이런저런 부분과 가능성의 회신이 아니었을까.

 

1939년 2월 나찌당 입당.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나의 모든 친구들을 구할 수 있었다. 위험은 지나갔으며 내가 보호해 준 사람들은 다치지 않고 살아남았다. 그들은 지금 이전의 직책을 되찾았으며 나의 명예회복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나는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 커다란 죄의식을 갖고 있다. 입당은 작은 일에 불과하다. 나 같은 인간에게 새로운 시대의 운명이 맡겨져서는 안된다. 나는 명철한 통찰력을 갖고 있으나 그 통찰에 무조건 따르는 힘을 소지하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 미래는 니나와,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지나치고 일방적이긴 하지만 강력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은 필요 없다.

 

1942년 니나는 할에게 줄 독약을 달라고 했다. 카페인 처방.(할 수용소에서 자살)

1943년 니나, 내란 방조죄로 15년 징역.

1944년 알렉산더 포로수용소에서 죽음.

 

1939년 위장 입당한 것도 언젠가 니나를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 때문이 아닌가. 내가 양쪽으로 타협하려 했던 것은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내 죄를 통찰한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는 것은 아니다. 한번 저질러진 행위는 결코 철회될 수 없으며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이처럼 뼈저리게 느낀 적이 없었다. 나의 과오는 엄밀하게 따진다면 사소한 것, 그러나 그 과오는 나의 양심에 깊은 죄의식으로 각인돼 있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1946년 8월

니나는 이제야 바다에 당도해서 바람을 업고 가는 배와 같다. 이전의 우울, 음침하고 완고한 정열, 변덕스러운 기질을 전혀 찾을 수 없다. 그녀는 성공했다. 인생의 밝은 부분, 이성, 지성들을 갖추게 되었다. 그녀의 세계는 그런 외면적 성공의 세계가 아니다. 그녀는 그런 성공을 조만간 업신여기게 될 것이다. 행운은 그녀의 편이었으며 무슨 일을 시작하든 그녀는 성공했다.

 

1947년, 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한 인생에게 감사한다.

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라는 비겁한 무기로 나를 쓰러뜨리기 전에 스스로 자유롭게 이 삶을 끝내는 쪽을 택하겠소.

 

마가렛 : 나는 불행하지 않았고 삶에 대해 지나친 요구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행복하다고 나 자신과 타협할 수 있었다. 내 얼굴은 말끔한데 니나의 얼굴은 표정이 가득하다. 바로 이것이었다. 니나는 이 얼굴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다. 니나는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서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니나는 다른 사람에게 결단을 강요한다. 만약 용기가 있다면 나는 지금 남편과 이혼하리라.

 

나도 애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나는 남편도 없잖아. 너는 그 이상을 갖고 있어. 나 자신도 말을 해놓고 놀랐다. 그 전에는 이런 수상한 시대에는 자식이 없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은 전혀 없는 것보다는 그것을 잃고 슬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슬픔도 재산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내 나이는 마흔 여덟이다.

내가 우는 것이 슈타인의 지난 고통과 니나의 엄청난 이별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그리고 축축하고 촘촘한 회색빛 그물에 얽혀 있듯이 자신의 운명에 얽혀 있는 인간들 때문에 우는 것이라는 것을. 대체 누가 그 그물을 찢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그 그물에서 벗어났다 해도 그것은 발치에 걸려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끌고 다닐 수밖에 없다. 그 그물은 아무리 얇아도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다.

 

퍼시의 아버지 :

아주 이질적인 사람들이 함께 있는 이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 이 가족의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불행을 주기 위해 태어났다. 각각은 다 나름대로 소중한 존재이긴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방해물이고 쇠사슬처럼 무거운 짐이 될 뿐이다. 나의 생의 반려자는 훌륭한 주부이긴 하지만 좀 더 높은 노력에 대해서는 이해가 전혀 없다. 정신적인 활동을 무시하고 나를 아주 무시한다. 돈을 못 벌어온다고. 퍼시는 어머니의 유능함을 물려받고 영국 할아버지의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았는데, 그리고 고집을 물려받았는데. 인생은 힘든 거다. 함정과 위험이 가득 도사리고 있고 아무도 행복하지 못해. 그와 결혼하지 마라.

 

 

[독후감]

'생의 한 가운데'는 독일 작가 루이제 린저가 39세 되던 해, 1950년에 발표되었다.

여자 주인공 '니나'는 린저가 작품을 발표할 시기의 나이와 비슷했고 '니나'의 성격이나 2차세계대전을 경험했다는 시대배경은 린저가 살았던 시대와 일치했다. 주인공 '니나'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양은 곧 작가인 린저 자신이었다.

 

'생의 한 가운데'는 니나의 언니 마가렛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형식이다. 나 마가렛이 니나의 얘기를 듣고 슈타인의 편지를 읽으면서 자매이면서도 잘 몰랐던 동생 니나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게 되는 여정이다. 주인공 '니나'는 언니 마가렛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표현된다.

 

"니나는 마치 폭풍우에 약간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깊은 바다 위에 떠 있는 배, 바람을 안고 가는 배와 같았다. 이 배를 보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배는 원하는 곳에 도착하거나, 아니면 어딘가 자기의 행운을 잡을 수 있는 새로운 대륙의 새로운 해안으로 가게 되리라고 믿을 것이다."

 

'생의 한 가운데'를 처음 읽었을 때가 내 나이 설흔 여덟이었다.

작품 속의 '니나'와 '생의 한 가운데'를 발표하던 린저 나이 무렵에 읽고 내 삶에 든든한 배경 하나를 얻은 것처럼 좋았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그리고 십여 년을 넘게 책의 내용도 배경도 잊고 살았다.

 

다시 읽는 '생의 한 가운데'의 주인공 '니나'는 여전히 힘 있고 근사한 여자이다.

"나는 명철한 통찰력을 갖고 있으나 그 통찰력에 무조건 따르는 힘을 소지하지 못한 부류에 속한다. 미래는 니나와, 그리고 그녀와 마찬가지로 때로는 일방적이긴 하지만 강력한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들이 가지게 될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은 필요가 없다."

 

독일이 전쟁에 패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슈타인이 자신과 니나를 평하는 말이다. 니나는 어느 곳에 머물든 그곳에 합당한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스물 한살의 처녀가 병든 늙은 할머니를 수발하고 작은 가게를 2년 동안 운영했다.

할머니가 유산으로 가게를 물려준다는 조건으로. 이런 그녀를 딱하게 바라보던 슈타인에게 말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없어요. 일단 제가 떠맡은 것이니까요. 이제 와서 도망을 친다면 저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으로 생각될 거예요." .

설흔 무렵이다. 어려움에 처하면 슬그머니 빠져나와 어려움을 외면했었다.

그래서 행복했는가? 그건 아니었다. 피할 때마다 나는 누군가와 다투고 갈등하곤 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구 때문이야', 또는 '당신 때문이야' 라고 핑계를 대면서. 그럼에도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칭찬해주고 싶은 것이 하나 있다.

 

15, 6년에 남편에게 이것을 도와주었으면! 하고 청했지만 도와주지 않았을 때, 그때 생각 했었다.

"누가 도와주지 않아도 이건 내가 할 일이야." 한 번의 강렬한 그 느낌은 남편과의 갈등 상황 때마다 작동을 했다. 물론 가슴으로는 용납이 안되지만 머리속에 입력된 이 경험을 적용시켰다. 그러면서 뜨거운 열기를 가라앉히곤 했다. 이 작은 것으로 어찌 누구와 견줄 것인가 마는 나에게는 나름대로 산다는 일이 흔들릴 때마다 지탱해주던 커다란 무게중심이었다.

 

니나의 얼굴을 보면서 언니 마가렛이 말한다. "내 얼굴은 말끔한데 니나의 얼굴은 표정이 가득하다. 바로 이것이다. 니나는 이 얼굴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다." 그 얼굴은 정신적 자세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정신적 자세를 얻기까지 니나는 어떤 댓가를 치렀을까? 이렇게 바꿔 말해도 될 것이다.

 

'생의 한 가운데'는 여전히 묵직한 감동을 준다. 니나를 18년 동안 사랑하고 흠모했던 슈타인은 니나보다 20살이 위인 남자였다. 그것은 성숙한 니나의 정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감이었을 것이다.

"나는 자기 배를 항구에 매어둔 상인과 같다. 배를 내보내야 돈을 벌어올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배를 바다에 내보내는 것은 위험했으며, 나는 본래 모험에 적합한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에 대한 아픈 분석과 반성을 거친 사람, 슈타인. 그러하였기에 밝은 눈으로 니나를 볼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