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역사유적지구 : 유네스코 세계유산
1. 공주 공산성 : 사적 제12호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은 공산성은 웅진도읍기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은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공산성은 산성 안에 왕궁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며, 백제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왕궁지 :
산성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왕국지에는 여러 기의 건물지와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건물지 가운데 벽주 건물은 위계가 높은 건물들에 사용되는 건축양식으로 건물의 상부를 꾸미는 다양한 기와들이 발견되었다.
* 왕궁부속시설지 :
공산성 내 가장 넓고 평탄한 지형으로 백제 시대 왕궁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여러 부속 건물들이 있었던 장소이다. 조사결과 수십여 기의 건물지와 도로, 축대, 배수로, 공방지, 저수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 공산성 성벽 :
길이 약 2.6km에 이르는 공산성 성벽은 토성구간과 석성구간으로 나뉜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석성)은 대부분 조선시대에 쌓은 것이지만 그 아래로 백제시대에 쌓은 토성이 지나고 있다.
2.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 사적 제13호
웅진도읍기 백제 왕과 왕족들이 묻혀있는 무덤들로, 무령왕릉이 대표적으로 알려져 있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에는 두 가지 무덤형태가 확인되는데 돌을 쌓아 만든 굴식돌방 무덤과 벽돌을 쌓아 만든 벽돌무덤이 그것이다. 1~5호분은 백제 전통의 무덤양식인 굴식돌방무덤, 6호분과 무령왕릉은 벽돌무덤이다. 벽돌무덤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양식으로 웅진도읍기 활발한 교류를 통해 적극적으로 중국문화를 받아들였음을 보여준다.
* 무령왕릉의 발견 :
무령왕릉은 백제시대 무덤 중 도굴되지 않은 채 발견되었으며, 묘지석(국보 제163호)을 통해 무령왕의 생애와 매장 시기(525)를 알 수 있다. 무덤에서 출토된 유물만 4,600점 이상으로, 백제의 사회`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 6호분과 사신도 :
벽돌무덤인 6호분에는 무덤을 지키기 위해 동쪽에는 청룡, 서쪽에는 백호, 남쪽에는 주작, 북쪽에는 현무가 그려져 있다.
3. 익산 왕궁리유적 : 사적 제408호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재위 600~541)기에 조성된 왕궁이다. 발굴조사 결과 장방형의 궁장 내부에서는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남쪽에는 의례, 정치와 관련된 건물이, 북쪽에는 정원과 후원이 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 대형건물지 :
너비 35미터, 길이 18미터의 규모로서 정전 건물로 추정된다. 거의 동일한 규모와 구조의 건무이 부여의 관북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 생활시설 :
국내 최초로 고대 화장실 3기가 확인되었다. 궁에 거주하던 궁인들과 관리들이 사용한 것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미생물의 분석으로 과거 백제인들의 식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 후원 :
왕궁의 북쪽에는 후원이 조성되었다. 중국산 어린석(수석)과 곡수로 등 각종 시설들은 백제 후기의 화려한 정원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왕궁리유적에서 확인된 정원은 중국-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정원문화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4. 익산 미륵사지 : 사적 제150호
미륵사지는 동아시아 최대의 사찰터 중 하나이다. 미륵사는 미륵이 세상에 내려와 3번의 설법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는 모습을 가람으로 구체화한 백제문화의 탁월한 독창성을 보여준다. 또한 탑과 금당을 3곳에 배치한 독특한 가람을 보여준다.
* 백제인의 염원을 담은 탑 :
미륵사지에는 3개의 탑이 있었다. 중앙에는 목탑이 자리했고, 양측으로는 석탑이 있었다. 동측 석탑은 1992년에 재건되었으며, 서측 석탑(국보 제11호)은 2001년부터 해체 보수가 진행되어 2019년에 완료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리봉영기가 발견되어 639년에 석탑이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게 되었다.
* 미륵사지 석탑 사리장엄 :
미륵사지 석탑에서는 금동제사리외호, 금제사리내호, 유리병으로 구성된 3종의 사리기와 금제사리봉영기 등 사리장엄이 출토되어 봉안 시기(639), 석탑의 축조, 미륵사의 조성에 대한 역사적 진정성을 더해주고 있다.
5. 부여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 사적 제428호 / 사적 제 5호
538년, 백제 성왕은 북쪽으로부터 서쪽까지 반달처럼 금강이 휘감아 흐르는 평야지대로 천도하였다. 새 왕궁은 사비(부여)의 북쪽 부소산 기슭에 세워졌으며, 현재의 관북리 유적을 왕궁으로 보고 있다. 왕궁 뒤쪽에 위치한 부소산은 평소 황이 즐겨 찾는 후원이었고, 산 정상과 능선을 따라 판축기법으로 쌓은 부소산성은 비상시에 피난처로 사용되었다.
* 사비시기 왕궁, 관북리유적 :
관북리유적에는 대형건물지, 지하저장시설, 연못, 도로 유구 등 왕궁관련 시설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대형건물지(35미터*18.5미터)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커서 왕궁 내에서 가장 중요한 전각건물이었을 것으로 보며, 거의 동일한 구조와 규모의 건물지가 사비 후기 왕궁인 익산의 왕궁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 부소산성 :
부소산성은 왕궁의 후원이자 비상시 방어성으로 사용되었으며, 지금도 그 당시의 성벽(토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부소산성에는 낙화암과 고란사 등 백제의 전설과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6. 부여 정림사지 : 사적 제301호
정림사지는 사비도성의 중앙에 위치한 절터이다. 백제인들의 뛰어난 감성과 기술을 잘 보여주는 높이 8.3미터의 석탑이 남아 있으며, 조사결과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등이 확인되어 불`법`승의 불교 3보를 모두 구비한 백제 고유의 사찰 건축을 보여주고 있다. 백제의 사찰은 탑과 금당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된 모습(1탑1금당)이 특징인데 정림사지를 통해 백제식 가람의 전형을 확인할 수 있다.
* 정림사지 오층석탑 : 국보 제9호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시대 석탑으로 탑의 원형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남아 있다. 목탑의 구조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으며 완벽한 균형미와 비례미를 보여준다.
* 와적기단 :
와적기단이란 기와를 이용해 건무의 기단을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하는 방식으로 사비시기 왕궁지인 사찰유적에서 많이 확인되었다. 익산의 왕궁리유적에서도 다수 확인되며 일본에 전해져 널리 유행하였다.
7. 부여 나성 : 사적 제58호
사비도성의 북`서`남쪽은 금강이 자연적인 방어벽의 역할을 하였고, 동쪽은 나성이 도시를 방어하는 역할을 하였다. 동아시아에서 도시를 둘러싸는 방어성으로는 매우 이른 시기이며, 6km가 넘는 성곽의 대부분을 확인할 수 있다.
* 나성의 기능 :
나성은 수도를 방어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수도의 안과 밖을 구분하는 상징저인 경계 역할을 하였다. 이는 경외매장(도성 밖에 무덤을 조성)의 원리에 따라 사비시기 왕실 구성원들이 묻힌 부여 왕릉원이 나성의 밖에 위치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 나성의 축조 방법 :
나성은 산지구간에는 판축공법을, 저습한 평지구간은 부엽공법 등으로 지형적 특성에 따라 다양한 축조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백제는 당시 중국에서 받아들인 기술을 바탕으로 백제에 맞게 사용하였으며, 이러한 축조 기술들은 이후 일본으로 전해졌음이 확인되었다.
8. 부여 왕릉원 : 사적 제14호
나성 밖에 위치한 부여 왕릉원은 사비도읍기 왕과 왕족드이 묻힌 곳으로 무덤의 양식은 백제의 전통적인 굴식돌방무덤이다. 사비시기에는 석재 가공 기술이 발전하여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무덤을 만들었다. 웅진도읍기의 왕릉들과 비교할 때 석재 가공 기술의 발달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 왕릉원에서는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데 초기 아치형으로 만들어진 무덤은 단면이 육각형에서 사각형으로 변화한다. 이러한 무덤양식은 신라와 일본에까지 전해져 동아시아에서 새로운 무덤 양식이 출현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 고분벽화 :
1호분인 동하총의 내부 벽면에는 사신도, 천장에는 연꽃과 구름을 그린 벽화가 발견되었다.
* 능산리사지 :
능산리사지(사적 제434호)는 나성과 부여 왕릉원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백제금동 대향로(국보 제287호)와 '부여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국보 제288호)'이 발견되었다. 이를 통하여 능산리사지를 부여 왕릉원에 모셔진 왕족들의 명복을 빌던 사찰로 추정할 수 있다.
* 답사 후기
공주는 2022년 10월 대체휴일 포함한 날에 휴가를 무령왕릉 발굴 50주년 특별전을 보러 다녀왔다.
부여는 2015년을 경계로 이쪽저쪽해서 5월에 휴가를 내어서 다녀왔다.
익산은 8월 여름 휴가 때 다녀왔다.
몇 년 전의 기억도 기억의 창고에서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만큼 기억력이 쇠퇴하고 있다는 증거.
익산을 다녀와서 자료를 정리하면서 공주 부여도 간략하게 정리가 같이 된다.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것들이 머릿속에서도 정리가 된다는 느낌.
'역사 공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산 입점리고분전시관 (1) | 2022.09.15 |
---|---|
익산 마한박물관 (0) | 2022.09.06 |
국립익산박물관 (0) | 2022.09.04 |
백제왕궁박물관(익산) (0) | 2022.09.04 |
낭산, 도리천 가는 길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0) | 2022.09.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