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왕궁, 천년의 길 : 백제왕궁박물관 특별전 : 2022년 8월 4일 ~ 10월 16일
1. 백제왕궁, 길을 찾다
왕궁리유적은 백제가 아닌 마한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의 또 다른 도읍지라는 학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후 1989년부터 20여 년에 걸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 왕궁터였음이 확실시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우리는 1400년 동안 흙 속에 묻혀 기억에서 사라졌던 백제왕궁의 길을 다시금 찾게 되었습니다.
2. 백제 왕궁, 길을 만들다
이곳은 과거부터 왕궁리오층석탑이 자리한 이름난 명소로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휴식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궁리유적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유적의 현장자료를 보존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익산시는 유적보호를 위해 10여 년에 걸쳐 정비를 진행하였습니다. 왕궁리유적의 본래 주인은 1400년 전 사라졌지만, 다시금 정비된 유적은 21세기 문화`생활`여가의 장소로서 새로운 길을 만들었습니다.
3. 백제왕궁, 새로운 길을 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하나로 왕궁리유적이 등재되었습니다. 그 길의 중심에는 많은 시민의 염원과 노력, 그리고 13년간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오며 왕궁리유적을 알린 전시관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눈부시게 발달한 기술에 발맞춰 이를 접목시킨 박물관으로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박물관은 새롭게 정비를 마치고 여러분과 함께 새로운 천년의 길 여정을 출발하고자 합니다. 2022년 8월 4일 박물관으로 재개관.
* 백제역사유적지구 8곳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백제 후기(475~660년) 문화를 대표하는 왕성, 사찰, 왕릉, 외곽성으로 구성된 8개 유산이다.
8개의 유적지구는 1400년 전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잘 보여주며, 백제가 동아시아 교류의 중심으로 활발하게 교류하며 꽃피운 백제문화의 국제성도 확인할 수 있다.
공주 : 공산성,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부여 :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부여 왕릉원, 정림사지, 나성
익산 :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 왕궁리유적이 특징
. 백제 왕궁으로서는 처음으로 왕궁의 외곽 경계와 내부 구조가 명확하게 확인된 유적이다.
. 처음부터 왕궁을 조성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조성되었으며,(1:1 또는 2:1의 비례로 공간 분할), 이러한 공간 분할은 중국의 고대 왕궁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 기암괴석과 장대석, 강자갈을 이용하여 정원을 장식하고 수로를 통하여 물의 흐름을 조절한 백제 최고의 정원유적이 확인되었다.
. 중국산 정원석이 발견되면서 중국과 교류한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으며, 백제의 정원 문화는 일본의 정원 문화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 왕궁 안에 공방을 두어 필요한 금, 유리 등의 제품들을 직접 생산했다.
. 왕궁리유적에서는 삼국시대 최초로 대형 화장실이 발견되었다. 대형 화장실에서는 뒤처리용 막대기가 발견되었고, 기생충알이 발견되어 백제인들의 식생활을 유추할 수 있다.
* 왕궁리유적 : 화려한 백제의 왕궁을 엿보다 : 어린이를 위한 자료
왕궁리유적은 용화산에서 시작하는 능선 끝부분에 있는 낮은 구릉 위에 만들어졌다.
높은 곳은 깍아내고, 낮은 곳은 흙을 메운 대규모 토목 공사를 실시하여 왕궁이 들어설 공간을 마련했다. 이는 왕궁이 위치한 지대를 높게 만들어 궁 밖에서 보면 더욱 웅장하고 장엄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왕국리유적을 둘러싸는 궁장은 2:1 비율의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으며, 궁궐 내부 공간은 남쪽과 북쪽을 1:1로 구분하였다. 이는 중국의 사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 당시 백제가 중국과 활발히 교류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왕궁의 내부 구조뿐만 아니라 정원과 조경 기술에서도 교류가 활발했는데, 이 기술들은 이후 백제를 통해 다시 일본에까지 전해진다. 이처럼 왕궁리유적은 당시 동아시아 왕조들이 왕궁을 만드는 원리, 다양한 기술 등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인정된다.
* 익산 왕궁리유적(사적 제408호)
익산 왕궁리유적은 백제 무왕(재위 600~641)기에 조성된 왕궁이다. 발굴조사 결과 장방형의 궁장(궁의 담장) 내부에서는 왕궁과 관련된 다양한 시설들이 확인되었다. 남쪽에는 의례, 정치와 관련된 건물이, 북쪽에는 정원과 후원이 배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 대형건물지 : 너비 35미터, 길이 18미터의 규모로서 정전건물로 추정된다. 거의 동일한 규모와 구조의 건물이 부여의 관북리유적에서도 확인되었다.
. 생활시설 : 국내 최초로 고대 화장실 3기가 확인되었다. 궁에 거주하던 궁인들과 관리들이 사용한 것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미생물의 분석으로 과거 백제인들의 식생활을 확인할 수 있다.
. 후원 : 왕궁의 북쪽에는 후원이 조성되었다. 중국산 어린석(수석)과 곡수로 등 각종 시설들은 백제 후기의 화려한 정원문화를 잘 보여주고 있다. 왕궁리유적에서 확인된 정원은 중국-백제-일본으로 이어지는 정원문화의 교류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왕궁리유적 곡수로)
* 답사 후기
익산은 대한민국의 4대 고대도시로 자리매김했다는 해설사의 설명이 있었다.
경주, 공주, 부여, 익산.
고대도시로 선정되는 기준 4가지가 있는데 왕궁유적, 왕릉, 통치 이념을 대변하는 사찰 , 도시에 관한 기록.
익산은 왕궁유적(왕궁리유적), 왕릉(쌍릉), 사찰(제석사), 기록은 일본의 자료 속에서 있었다.
그런 기준을 갖추어서 고대도시에 합당하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무왕 제위기간 동안 왕의 도시였다.
백제 무왕 시기의 정치적 상황이 녹록치 아니하였음은 현재도 매일이 줄다리기인 것 같은 정치상황인 것처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삼국이 등을 기대고 서로 견제하면서 밖으로 힘을 과시해야 하고
안으로는 정치세력들과 합종연횡을 해야 하는 머리되는 지도자의 복잡한 세력관계.
백제왕궁전시관에서 백제왕궁박물관으로 재개관한 날이 2022년 8월 4일이다.
남편과 휴가를 이용하여 간 날이 8월 13일.
백제왕궁박물관은 재개관한 날을 기념하여 ‘2022년 문화재 익산야행’이라는 이름으로 큰 축제를 준비하였다. 정소는 백제왕궁(왕궁리 유적) 일원으로, 8월 12일부터 14일. 18시부터 23시까지 진행. 문화재청, 전라북도, 익산시, 익산문화관광재단이 공동으로 추진한 축제였다.
그런데 13일은 낮에 비가 추적추적 왔다. 사전 정보 없이 왕궁박물관을 갔는데 박물관이 재개관 하였고 밤에는 축제를 한다고 했다. 전시실 해설사는 점심시간이 임박했음에도 기꺼이 해설을 해주신다고 해서 열정어린 해설을 들을 수 있었다. 전시실의 중심되는 부분은 역시 왕궁유적에 관해서이다. 왕궁리오층석탑이 들어서 있는 자리가 왕궁유적인데 그것은 왕궁으로서의 지위는 무왕의 치세기간 동안이었고 무왕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석탑이 세워지고 절이 대신 그 자리에 자리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준비된 자료에는 오층석탑에 관해서는 설명이 짧다. 석탑 이전의 왕궁의 자격으로 유적은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녁에 ‘익산야행’ 참석했다. 왕과 왕비와 함께 백제의 옷으로 갈아입고 손에는 청사초롱을 들고 오층탑돌이를 하고 두 번째는 손에 왕궁리오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 모양의 등을 들고 왕의 정원과 후원에 이르는 길을 두 사람씩 짝을 지어 길게 늘어서 걸으면서 설명을 들으면서 비가 와서 질척질척한 길을 걸어서 돌았다. 다행이 밤에는 비가 그쳐서 가능한 행사였다. 먹거리 트럭에서 저녁식사거리를 사들고 숙소에서 먹는 일정으로 마무리. 행운의 시간들을 보냈다고 훗날 기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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