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익산 입점리고분전시관

부실이 2022. 9. 15. 16:28

* 입점리고분

* 고분의 위치 및 조사

입점리고분은 해발 240미터의 함라산에서 금강변을 따라 뻗어 내린 산 능선의 정상부에서부터 남동측 경사면에 분포하고 있다. 1986년 샛터 마을에 사는 한 학생의 신고로 알려지게 되어 1986년 국립문화재 연구소에서 8기의 고분을 조사하였고, 1988년에는 사적 제347호로 지정된 지여에 대한 정비를 위해 주변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다시 13기의 고분이 조사되어 총 21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이중 3기는 샛터마을 뒷산과 능선 넘어 군산시 나포면에 위치하여 사적으로 지정된 지역의 해발 90~120미터 사이에는 18기의 고분이 남아있다.

 

* 입점리 86-1호분

입점리 86-1호분은 평면 방형에 가까운 굴식돌방 무덤으로 널길이 남벽 우측에 편제되었고, 천정은 궁륭상 천정을 하고 있다. 내부에서 금동제관대, 금동제관모, 금동제신발, 은제말띠드리개, 철제마구류, 청자네귀달린 항아리, 토기 등 다양한 종류의 유물이 출토되어 5세기 중엽경 백제 중앙 세력과 밀접한 관계 속에서 이 일대 최고의 세력으로 성장한 사람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고분유형

입점리고분의 고분 유형은 구덩식돌곽무덤(수혈식 석곽묘) 11기, 앞트기식돌곽무덤(획우식석곽묘) 2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7기, 독무덤(옹관묘) 1기로 여러 유형의 고분이 한 지역에서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현상은 웅포리고분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들 고분간의 관계는 백제지방묘제인 구덩식돌곽 무덤이 중앙묘제인 굴식돌방무덤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묘제인 앞트기식 돌곽 무덤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묘제의 변화는 익산 지역이 백제의 중앙 세력 권내로 흡수 편제되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어서 입점리고분은 백제사 뿐만 아니라 익산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판단된다.

 

* 입점리 98-1호분

입점리고분에서 대표적인 무덤은 입점리 86-1호분과 입점리 98-1호분이다. 입점리 98-1호분은 구덩식 돌곽무덤으로 길이 3`2미터, 폭 1`4미터로 돌곽이 다른 고분 보다 훨씬 크고 출토유물에 있어서도 금동제 귀걸이2점, 목걸이와 팔찌로 사용된 옥 623점, 토기 3점(굽다리 접시) 등 많은 유물이 수습되었다.

입점리 98-1호분은 산 최정상부에 분포하는  7기의 고분 중 가장 크고 출토유물도 다른 고분과 차별성이 있어 위계가 높은 강력한 토착세력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 웅포리고분

* 고분의 위치 및 조사

웅포리고분은 입점리고분에서 북동측으로 직선거리 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오류동마을 뒷산에 위치하고 있다. 함라산 서측 지맥의 남측 사면 해발 47미터~85미터 사이에 위치한다. 1986년 지표조사에서 60여기의 고분흔적이 확인되었다. 2007년까지 총 75기의 고분이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박물관에 의해 조사되었다.

 

* 고분유형
웅포리고분은 발굴조사 결과 구덩식돌곽무덤 16기, 굴식돌방무덤 5기, 앞트기식 돌곽무덤 28기, 형태를 알 수 없는 무덤 26기 등 총 75기가 같은 지역에 서로 혼재되어 나타나고 있다. 웅포리고분의 유형은 입점리고분과 유사한 양상을 띠지만 출토유물에서는 금동제귀걸이 2점을 제외하면 대부분 토기류와 철제품으로서 입점리고분 보다는 한 단계 낮은 유력한 세력 집단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웅포리고분의 중심 연대는 고분구조와 출토 유물에 의해 ad 5세기 중엽부터 6세기 중엽 경으로 편년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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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점리고분군의 무덤양식

입점리고분군에서는 구덩식덧널무덤 11기, 앞트기식돌덧널무덤 2기, 굴식돌방무덤 7기, 독무덤 1기의 백제시대 고분이 조사되었다. 무덤양식의 변화과정은 구덩식돌덧널무덤을 주로 사용하던 입점리 세력에 중앙의 굴식돌방무덤이 들어오고, 이러한 과정에서 앞트기식돌덧널무덤이 새롭게 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굴식돌방무덤은 웅진시기 이전의 초기유형이 축조되고 있어 굴식돌방무덤이 백제 한성시기 말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무덤양식의 변화 과정으로 볼 때 구덩식돌덧널무덤을 사용하던 입점리 지역세력은 한성시기부터 백제 중앙세력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성장하였고, 입점리 1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로 볼 때 중앙 지배층에 버금가는 지방세력으로 자리잡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 입점리 1호분

입점리 1호분이 만들어진 시기는 백제 5세기 중엽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당시의 백제 중앙의 무덤양식과 같아 백제 중앙세력과의 밀접한 관계를 짐작케 하고 있다.

1호분은 산록 경사면을 ㄴ자상으로 파고, 자연괴석의 평평한 면을 맞추어 벽을 쌓아으며, 벽의 약 80센치미터 정도 높이부터 널방 안쪽으로 네벽을 맞조이며 둥근천장(궁륭식)을 만들었다. 바닥은 조개`굴껍질을 부수어 진흙`모래흙과 섞어 고른 다음 돌을 전체적으로  깔았으며, 물빠짐 시설을 하였다.

입점리 1호분에서는 금동관모, 금동신발, 중국제 청자, 말 꾸미개 등의 다양한 껴묻거리가 출토되어 묻힌 사람의 신분이 백제지방 수장층을 추정할 수 있다.

 

* 입점리1호분과 출토유물과 대외교류

고분에서 출토되는 껴묻거리는 무덤이 만들어진 시기와 당시의 문화 수준, 다른 지역과의 문화교류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입점리 1호분에서는 금동관모와 금동관 장식, 금동신발을 비롯한 금동제 유물, 중국제 귀달린 청자 항아리, 유리구슬, 말 꾸미개, 항아리 등 다양한 껴묻거리가 출토되었다.

금동관모와 금동신발은 일본의 후나야마에서 비슷한 유물이 출토되어 일본과의 교류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안에서 영산강 유역과 가야 고분에서도 입점리1호분의 유물과 비슷한 예가 있어 5세기경 백제의 활발한 대외교류와 함께 금강 유역에서 위치한 익산지역이 백제의 대외교류 창구 역할을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중국제 청자 역시 이러한 대외교류의 증거로 추정하고 있다.

 

입점리1호분에서 출토된 말꾸미개는 발걸이, 안장꾸미개, 말띠드리개 등으로 가야나 일본지역의 고분유물과도 비슷하다. 

무덤주인의 신분을 알려주는 유물로는 중국제 귀 달린 청자 항아리가 있는데, 서울 석촌동, 공주 무령왕릉 등에서도 비슷한 것이 출토되었다. 당시에 중국제 청자는 중국에서도 매우 귀하여 높은 신분의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다.

 

* 백제의 토기

백제토기란 백제만의 양식을 가진 특징적인 토기로 무덤양식과 함께 백제의 영향권역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백제가 도읍한 한강유역에서는 민무늬경질토기, 눌러찍은무늬토기, 민무늬검은토기, 등이 사용되고 있었는데, 3세기 중후반 무렵부터 높은 온도에서 환원염으로 서성되는 새로운 토기가 나타났다.

한성시기에는 검은간토기를 시작으로 굽다리접시, 짧은목곧선항아리, 세발토기, 뚜껑접시 류 등이 나타났으며 빗문살무늬, 선새김누늬, 물결무늬 등 특징적인 문양이 새겨졌다. 

웅진시기는 공주 정지산 유적과 익산 신용리 가마터 등에서 출토된 것을 표지로 삼고 있다. 굽다리접시`뚜껑접시`세발토기`항아리류가 웅진시기가 대표적인 기종이며 지역마다 특색이 두드러졌다. 

사비시기에는 토기가 규격화되고 실용성이 더욱 두드러졌으며, 백제 전역이 하나의 토기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 굽기

백제의 토기는 도기(섭씨 1천도 가량에서 구워진 토기)로 두드리면 쇳소리가 날 정도로 재질이 단단하고 바탕흙에 포함된 유리질이 녹아서 생긴 자연유의 흔적이 있다.

도기는 고온을 유지할 수 있는 가마가 있어야 제작이 가능한 것으로 백제가 자체적으로 가마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백제의 도기제작소인 익산 신용리 가마터는 반지하식으로 무지개천장을 가지고 있으며, 계단식의 내부를 갖추고 있는 6세기 중후반 무렵의 유적으로 백제시대의 가마형태를 짐작케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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