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9/4 정관박물관 2

부실이 2022. 9. 21. 22:05

* 흙으로 집을 빚다 : 집모양토기

삼국시대에는 다양한 형상을 본뜬 토기를 많이 만들었다. 그중 살림집, 창고 등을 본뜬 집모양토기는 맞배지붕의 다락집 형태가 많으며, 사다리를 올라가야 입구가 나오는 독특한 구조이다. 지붕 이엉을 고삿 매기(새끼줄로 매는 것)하여 고정한 모습이나 쥐를 쫓는 고양이 등 세부 묘사로 보아 실제 집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무덤 부장 사례가 많은 것은 편안한 삶의 공간이자 풍부한 물자 보관처였던 집을 본뜬 토기를 통해 망자가 내세에서도 평안하고 풍요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귀때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제의를 행할 때 술과 같은 액체를 따르는 제기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부산 가동 고분군 출토 집모양 토기는 정면에 높은 기둥이 있고, 다시 12개의 사각 기둥으로 집을 반원형으로 감싸는 매우 특이한 구조이다. 맞배지붕에 넓고 화려한 박공판(벽체)으로 장식하고, 표면에 문양을 빼곡하게 새겨 넣어 '의례' 등 특수 목적을 위한 건축물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 건축부재

삼국시대 건축과 토목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는데 이는 뛰어난 목재가공기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가동 마을유적에서 발견된 고상창고의 나무기둥 중에는 팔각형으로 가공된 것이 있으며, 건축물의 침하를 막기 위해 기둥 아래 나무받침대를 두기도 하였다. 건축기둥은 가래나무`밤나무`참나무 등을 많이 사용하였는데, 이는 주변에서 서식하는 나무 중 단단한 것들이다.

토목기술과 관련하여 부산 고촌유적에서는 하천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제방이 확인되었다. 제방은 직경 20센치미터 내외의 큰 나무기둥을 일정한 간격으로 박았으며, 이를 경계로 구릉 상부는 안정된 주거지역, 아래의 저지대는 생산공방지로 공간을 구분하였다. 이러한 토목공사는 자연환경에 대한 고대인의 적극적인 개선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살림집

삼국시대 살림집은 선사시대에 비해 바닥 깊이가 얕고, 면적도 오히려 줄어들었다. 뿐만 아니라 집 한가운데 구덩이를 파서 만들던 화덕도 가장자리를 따라 설치되는 온돌로 대체되었다.

그대신 지붕이 높아지고, 저장시설을 외부에 두면서 공간효율성이 높아졌으며, 온돌로 인해 난방효과도 커지게 되었다. 가동 살림집은 영남 동부지역 살림집의 전형적인 형태인데, 이는 주변환경과 기후에 의해 결정되었을 것이다. 평면형태는 방형 또는 장방형이며, 구덩이를 얕게 파고 네 모서리에 중심 기둥을 세웠다. 집 가장자리에도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 중깃(벽의 틀을 만들 때, 수숫대나 싸리 따위를 대고 엮기 위해 듬성듬성 세우는 가는 나무)을 설치하여 점토를 발라 벽체를 만들고, 벽 뒤쪽에 두껍게 흙을 채웠다. 

온돌은 'ㄱ'자 모양으로 점토를 쌓아 만들었는데, 아궁이는 대체로 서쪽에 위치하며 부뚜막과 고래`굴뚝으로 이어진다.

출입구는 남아있지 않으나 아궁이와 가장 먼 남쪽 벽에 위치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가동 살림집은 칸막이시설은 없지만 온돌과 출입구, 조리나 저장 용기 등의 위치가 일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취사`취침`작업 등의 공간을 구분하여 사용했을 것이다.

 

* 음식을 장만하다

삼국시대가 되면서 이전에 비해 다양한 작물을 재배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돼지`닭 등을 사육하여 동물성 단백질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마을 주변 논밭에서는 오곡과 야채를 재배하였고, 산지에서는 과일이나 견과류를 얻었으며, 바다와 강에서는 어패류 등을 채취하였다. 또한, 소금을 활용한 저장`발효 기술이 발달하여 김치와 된장을 먹는 등 음식물과 조리법이 다양해졌다. 신라에서는 장빙고를 만들어 얼음을 보관했으며, 귀족들은 말고기와 꿩고기를 먹었다는 기록도 있다. 고구려의 덕흥리고분에는 창고에 술`고기`쌀`된장이 많이 있다는 글이 적혀 있다.

이처럼 식재료의 범위가 넓어지고 다양한 조리법이 개발되면서 가동마을 사람들의 밥상은 한층 풍요로워졌으며, 한편에서는 신성한 제의를 통해 더욱 정갈하고 정성들인 상차림을 선보였을 것이다.

 

* 저장용기

삼국시대에는 다양한 먹거리를 균형있게 소비하기 위해 여러 방법으로 저장하였다. 곡물의 단기간 저장은 오늘날과 같이 항아리나 독에 뚜껑을 덮어 저장했을 것이다. 특히 일정한 시기에 대량으로 수확하는 곡식은 다음해에 씨앗으로 사용할 양을 제외하고, 큰 항아리에 담거나 저장구덩이`곳간에 보관하였다. 이때 습기를 제거하기 위해, 곡식은 겉껍질이 붙어있는 상태로 살짝 불에 태우거나, 저장 구덩이의 바닥과 벽면에 불을 놓았다. 

가동 유적의 저장구덩이에서 여러 종류의 씨앗이 발견되었으며, 저습지에서는 가마니를 짤 때 사용한 목제품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토기 뿐 아니라 가마니와 같은 다양한 저장용기들도 있었을 것이다. 

 

* 원통모양 그릇받침

밑이 둥근 그릇인 저장용 항아리를 받치기 위한 그릇받침의 하나로, 4~5세기대에 주로 많이 사용되었다. 이 토기는 수부`몸통`다리로 구성되었는데, 몸통의 중앙에 공모양의 돌출부를 장식하거나 몸통 가득히 투창을 뚫는 등 조형미가 뛰어나다. 출토정황으로 볼 때 제사유적이나 빈소 등 의례유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고, 무덤의 경우 정해진 곳이나 돋보이는 곳에 안치되는 등 장송의례에서도 특별하게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드물지만 일반적인 마을유적에서도 발견되는데, 가동마을에서는 가장 큰 집에서 발견되었고, 청강`대라리 마을에서는 대형제사건물지와 나무울타리 주변의 집에서 발견된 것으로 보아 제의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의 집에 보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리도구와 상차림

부뚜막의 발달은 물을 끓이는 긴 독 위에 곡물을 넣은 시루를 올려 찌는 조리법을 탄생시켰고, 이는 새로운 먹거리의 개발로 이어졌다. 식재료를 찜으로써 본연의 맛과 형태`영양분을 최대한 유지한 채로 익힐 수 있었다. 이는 이전부터 해오던 고기나 야채를 데치거나 삶거나 굽는 방식과 더불어 다양한 방식의 조리가 가능해진 것이다. 그릇 표면에는 불에 닿아 생긴 그을음과 끓어 넘친 음식물이 묻어있거나, 그릇 안쪽에 음식물이 타서 누른 자국이 남아있다.

식재료 가공을 위해서 갈돌`절구와 절구공이`떡메 등을 사용하였으며, 바가지`국자`주걱 등 조리도구는 오늘날과 비슷하다. 상차림을 위해 토기`목기`칠기 등의 재질로 된 식기류가 사용되었고, 음식 종류가 많아지면서 그릇 종류도 함께 많아졌다.

 

* 고상창고

사람들이 정착생활을 시작하면서 식량을 저장하기 위하여 구덩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신석기시대의 저장구덩이에서는 가을에 수확했다가 겨울철 내내 먹으려고 갈무리해 둔 도토리가 발견되기도 하였으며, 농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에는 저장구덩이 뿐만 아니라 바닥을 땅에서 높이 띄워 원두막처럼 만든 고상창고가 처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는 식량 수확이 일년에 한 번뿐이어서 저장시설이 더욱 중요해졌고, 홍수나 가뭄으로 작황이 좋지 않을 때면 저장해둔 식량을 꺼내 먹어야 하는 생존에 필수적인 시설이기 때문에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삼국시대가 되면 사회가 발전하여 국가가 관리하는 창고군이 등장하는데, 마한`백제 지역에서는 행정적인 거점이나 교통 요지에 대규모 저장구덩이를 설치하여 관리한 흔적이 있다.

고구려에서는 나라에는 큰 창고가 없고, 집집마다 조그만 창고가 있는데, 부경이라 이른다' 라는 기록과 고분벽화의 내용으로 보아 고상창고를 애용하였다. 신라와 가야지역 역시 고상창고가 발달하였는데, 김해 관동리`대구 봉무동 유적 등 인구가 많았던 마을에서는 고상창고를 여러 채 지어 공동으로 식량을 관리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가동 마을 유적에서는 정면과 측면이 각각 2칸인 9주식 고상창고가 대부분을 차지하는데, 마을의 북쪽과 서남쪽에 집중 분포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산지마을인 청강`대라리 유적에서는 고상창고보다는 저장구덩이가 대다수인 것으로 보아 환경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가동 사람들의 먹거리

오늘날에는 과학적인 토양분석을 통해 과거 사람들이 먹었던 식재료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웅덩이의 토양을 분석한 결과 가동유적 사람들은 복숭아`벼`밀`기장`참외`박 등을 재배해 먹었고, 가래`밤`산딸기 등의 열매를 따먹었음을 알 수 있었다. 요리 공간인 집안에서도 탄화된 곡물이 발견되었는데, 71호 집자리의 아궁이에 걸린 항아리에 밀이 담겨져 있었고, 30호 집자리 바닥에서 팥이, 60`110호 집자리에서는 콩과 팥이 섞인 잡곡이 다량 출토되었다. 식재료 저장구덩이에서는 두터운 볏짚 사이에서 벼의 줄기 및 이삭과 기장이 다량 검출되어, 삼국시대 사람들은 쌀을 주식으로 하며, 밀`기장`콩`팥 등의 잡곡을 함께 섭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

마을 주변에서 자라는 나무를 톱`낫`칼 등의 도구로 가공하여 생활도구를 만들었다. 생활도구는 농기구`건축자재`식기`공구`무기`발화구`악기 등 용도가 아주 다양하였다. 부산 고촌 유적과 가동 유적에서도 느티나무`밤나무`굴피나무`녹나무`느릅나무`졸참나무`상수리나무`소나무 등으로 만든 여러 종류의 생활도구가 출토되었다.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의 종류로는 쌍날따비`괭이`고무래 등의 농사 도구, 도끼자루`나무방망이`절구공이 등 도구 손잡이, 빗`절구`책상`신발`갈고리 등 일상도구, 바가지`두레박 등 나무 용기 등 매우 다양하다. 오늘날 플라스틱이 발명되기 전까지 나무로 만든 생활도구들은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 악기

삼한에는 '슬이라는 악기가 있어 중국의 축과 비슷한 모양이며, 뜯어서 연주하고 음악의 곡조도 있다' 라고 하는 기록이 있다. 실제로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과 경산 임당동 A-1-121호 널무덤에서 출토된 목제 현악기를 보면 10현으로 이루어졌고, 몸체가 얕게 파여있어 울림판 역할을 하였다. 이는 넓은 음역의 복잡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임을 알 수 있다.

 

 

* 베짜기

방직구에는 실을 뽑아 감을 때 쓰는 가락바키와 얼레, 베를 짤 때 쓰는 기계인 베틀이 있다. 변한 사람들은 뽕나무를 재배하고 누에치기를 해 비단과 베를 만들며, 폭이 넓고 가느다란 포로 옷을 지어 입었다고 중국 사람들은 기록하였다. 신라에서는 전 국가적인 행사로 왕궁에서 한 달 동안 길쌈대회를 열었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베짜기는 여성들의 중요한 생산활동 중 하나였다.

가동 유적의 많은 집자리에서 가락바퀴가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고치솜에서 풀려나오는 섬유에 꼬임을 주어 실을 잣는 도구이다. 고촌유적의 저습지와 배수로에 흘러들어온 많은 목기 중에는 베트의 일부인 신나무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 나무신발

나무로 만든 신은 딱딱하고 유연성이 없어 가죽이나 직물로 만든 신발과 달리 걸어 다니기 불편하다. 반면에 가죽이나 짚보다 물에 강하고 굽을 만들어 높일 수 있기 때문에 비오는 날에 신는 신으로 삼았을 것이다. 우리나라 고대의 나막신은 판자형과 신발의 네 면이 막힌 고무신형이 있는데, 부산 가동유적에서는 판자형 나막신 한 짝이 출토되었다. 

바닥판은 오른편 발바닥모양이며 9개의 구멍을 통해 끈을 연결하여 발과 고정시켰다. 높지는 않지만 4개의 굽이 있다. 이와 유사한 형태의 나무신발은 아산 갈매리유적과 경산 임당저습유적지, 부여 능산리유적, 익산 미륵사지 등 삼국~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지역에서 출토되었다.

 

* 노래하고 춤추다

중국 사람이 기록한 삼한의 풍속 중에는 5월에 씨를 뿌리고 나서 제사를 지낼 때는 모두 모여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었다고 한다. 그 춤은 수십 명이 줄지어 낮게 걸어가며, 손뼉을 치면서 박자를 맞추었는데, 농사일을 마치는 10월에도 똑같이 되풀이하였다고 한다.

이는 농사의 파종기에는 풍요를 기원하고, 추수기에는 수확에 감사하는 축제로 삼국시대까지도 전통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신라토기를 장식한 토우와 그림들을 통해 노래하고 춤출 때 피리`비파`거문고 등을 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아이가 태어나면 머리를 눌러 놓았다는 기록과 같이, 실제로 김해 예안리 고분군에서 머리뼈가 납작하게 변형된 사람뼈가 발견되어 삼국시대까지도 이마가 평평한 사람을 아름답게 여기는 풍습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길 가다가 마주 오는 사람들을 만나면 서로 양보하고, 진한과 변한이 비슷하여 서로 뒤섞여 산다고 표현될 만큼 양 지역간에는 풍속이 유사하며, 그 전통은 삼국시대까지도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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