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공부

구충당 이의립과 울산 쇠부리 특별전

부실이 2023. 2. 14. 17:20

울산대곡박물관 제2차 특별기획전 : 구충당 이의립과 울산 쇠부리전

2022.12.06. ~ 2023.03.26.

2023.2.12. 방문

 

* 울산대곡박물관 구충당 이의립과 울산 쇠부리전시를 개최하며

이의립(1624~1694)은 나라에 도움이 되고자 26년간 전국 산천을 두루 다녔으며, 마침내 삼보를 얻어 나라의 쓰임에 도움을 주었다울산은 1962년 대한민국 최초 특정 공업지구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대한민국의 산업수도로서 경제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울산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천년 울산의 산업도시로 발전시킨 인물이 조선시대 후기 선비이자 물리학자인 이의립이라 볼 수 있다 철이 우리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그 가치를 오랫동안 잊고 지내왔다. 이의립의 자취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되새기고자 특별전을 준비하였다.

 

1부 전읍리에서 나고 자라고 묻히다

이의립(1624~1694)은 경주이씨로 자는 예겸으로 호는 구충당이다.

이의립의 선대부터 경주부 남쪽 중리(현재 황남동 일대)에서 살았으며, 효행이 지극하여 사람들이 그 마을을 효자리로 불렀다고 한다. 그의 조부 때 현재 울산광역시 두서면 전읍리로 옮겨 살았다. 이의립은 선비 가문에서 태어나서 5세부터 천자문과 소학, 대학 등 유학을 배웠고, 많은 시와 산문을 지었다. 구충당의 삶의 사상은 효, 충에 그 바탕을 몸소 실천하였다.

 

* 삼보를 나라에 바치다

삼보는 철, 유황, 비상을 말한다. 이의립은 23세에 부친의 삼년상을 마친 후 나라에 대한 충성과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으로 피폐해진 민생의 개선을 위해 양질의 농기구와 생활도구를 만들 수 있는 무쇠와 유황, 그리고 비상을 얻으러 전국 산천을 누볐다.

: 비격진천뢰 : 조선 선조 때 군기시 화포장 이장손이 처음으로 만든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임진왜란 때 큰 효력을 발휘했다.

: 대완구 : 조선 때 성을 공격하거나 적으로부터 성을 방어하기 위하여 만든 포이다.

 

3부 울산 쇠부리 가마와 쇠부리 소리

달천산의 토철을 원료로 하는 울산 쇠부리는 대안동`당사동`방리`삼정리`활천리`서사리 등 울산 곳곳에서 이루어졌다. 쇠부리가마는 중앙에 장방형 가마가 있고 좌우에 긴 석축이 설치된 제철로이다. 울산의 쇠부리 가마의 운영 시기는 이의립과 그 후손들이 활동시기와 일치한다. 철은 생산과정상 노동집약적 산업이다. 울산 쇠부리의 힘든 노동의 특정상 노동요가 만들어졌는데, 쇠부리 소리가 알려지게 된 것은 1981년 민요 채집을 하는 과정에서 불매대장인 최재만의 불매소리가 알려지게 되었다. 현재 불매꾼은 모두 사라지고 없지만 그가 남긴 쇠부리 소리를 울산 쇠부리 소리 보존회에서 2005년 울산 달내 쇠부리 놀이 보존회로 시작하여 오늘까지 울산 쇠부리 소리를 보전 전승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쇠부리

쇠부리란 토철이나 사철, 철광석과 같은 원료를 녹여 쇠를 뽑아내는 과정을 말한다.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쇳물의 재료가 되는 철광석, 불을 지피는 숯, 운반을 위한 도로 등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대곡천 유역은 이러한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어 철 생산지로 활용되었다.

숯과 철광석을 쇠부리 가마에 넣고, 가마 뒤에서 풀무로 바람을 불어 넣는다. 1300도 이상의 높은 열에 녹아 내린 쇳물이 쇠똥과 분리되어 나온다. 쇳물을 식힌 쇳덩어리는 다시 열로 가공하여 칼이나 화살촉과 같은 무기와 호미, 낫 같은 농기를 생산하였다.

골편수 : 쇠부리 전체를 지휘하는 우두머리로 경험 많은 장인. 도편수 대장이라고도 부름.

불편수 : 가마 작업 전반을 총괄하면서 숯대장, 쇠대장, 풀무대장을 지휘.

둑수리 : 토둑 쌓는 일 담당

풀무꾼 : 풀무를 밟아 가마로 바람을 불어넣는 역할 담당

숯장이 : 가마 안에 연료인 숯을 실어 나르는 일 담당

쇠장이 : 가마 안에 쇠의 원료가 되는 토철, 철광석을 실어 나르는 일 담당

 

* 울산 두동면 방리 마을 쇠부리 가마

울산 광역시 두동면 천전리 방리 마을에 있던 쇠부리 가마를 옮겨온 것이다. 쇠부리 가마는 용광로, 제철로의 순 우리말이다. 사철, 토철, 철광석 등의 원료를 숯과 함께 넣어 1300도 이상의 고온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시설이다.

가마의 앞에 쇠똥을 쇠부리 가마 밖으로 빼내는 구멍과 쇳물을 뽑아내는 초롱구멍이 있다. 쇠부리 가마는 돌과 흙을 이용하여 둑을 쌓아 올렸고, 뒷면에 바람을 불어 넣는 시설인 풀무가 있다. 쇠부리 가마는 가운데가 높고 양쪽 끝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이는 달천 철장의 토철로 쇳물을 생산한 울산 지역 쇠부리 가마에서 특징적으로 보이는 형태이다.

: 토제용범 :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소재 둔기리유적에서 출토된 무쇠솥의 거푸집(용범)이다. 이 유적에서는 조선시대 용해로와 단야로 등 제철유구가 조사되었으며, 무쇠솥의 거푸집을 만들었던 가마도 확인되었다. 15세기 중엽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 철산도 : 구충당문집 목판에 함께 있다. 울산광역시 북구 달천광산의 산도이다. 동서남북 방위가 표기되어 있고, 서쪽에 달천이 산아래에 정사, 세철지가 표기되어 있다.

 

* 답사 후기

대곡박물관은 특별전으로구충당 이의립과 울산 쇠부리를 마련했다.

박물관이 위치한 곳이 접근성이 떨어지는 곳이라는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특별전을 준비하는 박물관의 충실함이 고맙다.

 

1636년 병자호란이 있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30여 년 만에 또 전쟁이 일어나니 짧은 전쟁이고 굴욕적으로 끝난 전쟁이었지만 국방이 중요한 과제인 시대였다. 그러한 때 구충당 이의립이 관심을 가졌던 철, 유황, 비상은 무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소재들이었다. 시대와 본인의 관심이 잘 맞아서 구충당 이의립은 살아생전에 나라로부터 공을 인정받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

고산자 김정호(?~1866)는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당시 권력가 흥선대원군에게 바쳤다고 하는데 쇄국정책을 추진하던 때라 대동여지도는 환영받지 못했다. 지금 대동여지도의 가치는 높이 평가하지만 시대가 환영하지 못해서 김정호의 삶 역시도 쓸쓸했을 것이다. 대곡박물관 상설전시실 입구에는 언양의 고지도가 있는데 해설사의 설명으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는 말씀이다. 쓰러져가는 왕조 말기에는 귀한 것도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

 

구충당 이의립의 시대에는 전쟁의 폐허 위에서 다시 일어서고자 하는 희망이 있었고 과학자 이의립의 과학 정신은 그 희망 위에서 꽃을 피울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