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식사 (서문): 정기문

부실이 2022. 1. 28. 11:21

* 생존에서 쾌락으로 이어진 음식의 연대기

 

* 정기문

서울대학교에서 역사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서양사학과에서 로마사 연구로 박사 학위 받았다. 지금은 군산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이끈 주요한 요소들은 무엇일까’라는 문제의식을 늘 품고 있다.

청년시절에는 역사의 진정한 동력이 농업 생산이라고 생각하여 토지 제도, 세금 징수 방식, 작물의 종류와 생산 방식 등 농업에 관한 다양한 책과 논문을 많이 읽었다. 그러나 생산된 작물을 요리하여 섭취하는 것이 세계사를 어떻게 좌우해왔는지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아서 아쉬움을 느꼈다.

 

박사과정 때 음식의 의미를 역사학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그려낸 브로델의 명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고, 그와 같이 빵, 밥, 차, 커피, 포도주 같은 주요 음식을 통해서 세계사를 깊이 있게 설명해보고 싶은 열망이 생겼다.

그때와 달리, 20세기 말 이후 음식사는 전문 연구 분야가 되었고 음식에 대한 연구가 점차 많아지고 있다. 이 연구들을 바탕으로 음식으로 세계사를 들여다보면 세계와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얻어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책은 그 오랜 열망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 [역사보다 재미있는 것은 없다, 역사를 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한국인을 위한 서양사, 내 딸들을 위한 여성사, 역사란 무엇인가?,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왜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그리스도교의 탄생]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성인 숭배, 청소년의 역사1, 지식의 재발견, 고대 로마인의 생각과 힘, 인문정신의 역사, 아우구스티누스] 등이 있다.

 

* 책 뒷장

 

‘살기 위한 식사’에서 ‘맛보기 위한 식사’로

먹고 마시는 일들이 만들어온 문화와 역사의 대향연

 

* 육식 : 인류 진화의 열쇠, 불에 익힌 고기

* 빵 : 누구나 부드럽고 하얀 빵을 먹게 되기까지의 역사

* 포도주 : 예수가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라고 불린 까닭

* 치즈 : 다채로운 치즈들의 유래

* 홍차 : 타타임과 실론티의 낭만적이지 않은 이면

: 커피 : 혁명에 기여한 ‘이성의 음료’

* 초콜릿 : 이미지 메이킹의 최고 성공 사례

 

* 서문

음식은 역사와 문화를 규정하는 제1요소다

‘당신이 먹는 것을 나에게 이야기해보라. 그러면 당신이 어떠한 사람인지를 말해주리라’(독일 속담) 이 말은 음식의 의미를 꿰뚫고 있다. 인간의 육체는 섭취한 영양을 통해 끊임없이 작동하고 재생산된다. 즉 우리가 날마다 먹는 음식이 몸속에서 소화흡수되면서 우리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인간의 생존에 꼭 필요한 음식은 역사 전개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인간은 빵으로 살아왔으며, 살기 위해 먹는 게 아니라 먹기 위해 살기도 했다. 먹기 위한 삶을 저급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로 그것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주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미각이 인간만큼 발달하지 않아서 그저 살기 위해 먹는다. 반면에 인간은 미각이 매우 발달해서 단순히 영양을 섭취하는 게 아니라 음식 재료를 여러 가지 방식으로 가공하여 그 맛을 즐기려고 먹는다. 더 나아가 인간은 먹는 것에 중대한 의미를 부여한다. 먹으면서 사랑, 우정과 같은 관계를 맺고 거래를 하고, 신앙생활을 하며, 권력을 유지한다. 인간은 음식을 얻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때로는 전쟁도 불사하며, 음식을 통해 계급과 성, 종족 등을 구별해왔다.

 

역사학은 오랫동안 이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있다.

첫째, 역사학의 근본 목적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있다. 인간의 본성인 식욕의 특징, 식욕을 해결하려고 구축한 음식 문화, 그리고 음식이 세계사의 주요 사건과 계급·젠더·문화권의 형성 및 대립에 끼친 영향을 연구하지 않고 어떻게 인간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둘째, 역사학은 인문학으로서 대중과의 소통을 추구한다. 요즘 텔레비전, 블로그를 비롯한 여러 대중 매체가 음식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대중과 소통하려는 역사학자라면 마땅히 음식 문화를 연구하면서 인문학의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학자들이 있기는 했다. 아날학파 1세대인 페브르, 블로흐를 비롯한 몇몇 선각자들이 음식 문화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후, 아날학파 2세대인 브로델이 음식 문화를 본격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1960~1970년대에 발표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세계 각 지역의 음식 문화를 상당히 체계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그의 연구는 시기기 근대 초에 한정되었고 경제적인 측면에 집중되었다.

 

브로델의 연구에 힘입어 1980년대 초부터 유럽 학계에서 음식문화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81년 이후 매년 ‘음식과 요리에 대한 옥스퍼드 심포지엄’이 열리고 있으며, 그 결과 [음식과 식생활, 음식과 역사] 등 음식 문화를 인문학의 관점에서 다루는 학술지들이 만들어졌다. 이탈리아, 미국 등에서는 음식 문화를 연구하는 학위 과정들도 생겨났다. 한국에서도 [18세기의 맛]을 비롯하여 음식 문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서양에서도 음식 문화는 여전히 전문 역사학자들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1980년대에 등장한 일상사도 의식주와 같은 물질생활보다는 민중의 의식과 문화에 더 관심을 갖는다.

 

대개 인류학자들이 음식 문화에 대해 의미 있는 연구 성과를 내왔다. 그들의 관심은 음식이 어떤 상징을 갖고 있으며 사회 구조나 작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한 연구는 역사학의 시각에서 보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인류학자들은 음식문화를 구석기 시대부터 현대까지 통시적으로 살펴보지 않으며, 음식이 계급·젠더·종족·문화권의 형성과 상호 관계에 어떻게 기여했고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서양문명의 주식인 밀은 동양 문명의 주식인 쌀에 비해 비효율적인 곡물이다. 힘겹게 제분을 해야만 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이 작업을 제분기로 대체하게 되었는데, 이 제분기가 바로 풍차다. 이 때문에 서양의 근대 풍경에는 풍차가 많이 등장한다. 또 고대에는 제분 작업이 정밀하지 못해서 모래를 비롯한 온갖 불순물이 빵에 들어 있었다. 고대인이 먹은 빵은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돼지도 먹지 못할 음식이었다. 그리스·로마인은 그토록 조악한 음식을 먹으면서도 불멸의 고전을 남기고,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세계를 정복했던 것이다.

 

음식 가운데 단연 중요한 것은 물이다. 필자는 대학 시절부터 정치사와 경제사 위주로 공부하느라 서양인의 의식이나 지난한 일상생활의 속살을 파악하지 못했다. 서양은 물 사정이 좋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면서도 왜 그랬는지, 얼마나 심각했는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음식 공부를 하면서 비로소 유럽의 중심부는 연강수량이 500~750밀리미터로 우리나라의 3/2밖에 되지 않고, 석회질 지형이 많으며, 우물을 파기가 어려워서 늘 식수가 부족했고, 그 때문에 로마와 같이 거대한 수도 시설을 만들거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어 강물을 퍼다 마셔야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도시를 건설할 때 동양에서는 우물을 쉽게 팔 수 있어서 대개 강의 북쪽에 사방을 가로막는 성을 쌓고 그 안에서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유럽에서는 식수로 사용할 강물을 끼고 도시를 건설해야 했다. 강수량의 차이는 도성은 물론 하위 성들의 성격에도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한국을 비롯한 동양에는 수많은 산성이 있는데 이는 샘을 확보하기 쉬울 때나 가능한 일이다. 서양의 중심부에는 산이 발달하지 않았고, 성들도 대개 평야에 있다. 샘을 찾기 힘들어서 산성을 쌓을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유럽인은 고대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근대에 커피와 차가 들어오자 열광했다. 그 이유 중 하나도 식수가 부족한데다가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음식문화는 유럽을 세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유럽 내의 국가나 문화권을 언어나 종족, 로마 문화의 침투 정도, 알프스 산맥이나 피레네산맥과 같은 지리적 요소, 구교·신교와 같은 종교적 요소 등을 기준으로 나누어보곤 했다. 이런 기준들로는 파리 이북 지역이 동일한 문화권임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예컨대 로마는 제국으로 성장하여 지중해 문화를 북쪽에 전해주었고, 로마 제국의 통치가 미치는 모든 지역에 법과 기독교, 실용 문화를 전파했다. 음식 문화의 측면에서도 로마는 정복지 전역에 포도주, 올리브, 밀빵을 먹는 문화를 퍼뜨렸다. 그렇지만 파리 너머, 즉 오늘날의 프랑스 북부 지역,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 독일 중부 지역은 지중해 지역의 음식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맥주를 마시고 버터와 호밀빵을 먹었다. 지리적 환경의 차이가 너무 커서 전통 음식 문화를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음식 문화는 남녀의 성비까지 바꿔놓았다. 중세 서양에는 성인 남성이 여성보다 많았는데, 15세기 이후 남녀의 성비가 역전되고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성보다 길어졌다. 그 전에는 육류가 부족해서 여성의 입에 들어갈 고기가 없었으나 가축 사육이 늘면서 농민들의 단백질 섭취가 증가했다. 그로 인해 여성의 건강이 개선되어 수명이 길어졌고 그 결과 여성이 남성보다 많아진 것이다.

이렇게 역사가의 눈으로 세계의 음식 문화를 고찰해보았다. 그런데 음식에 문외한이던 사람이 3~4년 동안 공부해서 얻은 생각이라 사람들에게 내세울 만한 성찰인지 두렵다. 이 책에서 부족한 부분은 점차 보완해갈 것이다.

 

* 독후감

서문만으로도 훌륭한 글 한 편을 읽는 것 같다.

서문을 이렇게 공을 들여서 쓴 것으로 보아 본문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겠다.

음식 용어여서 접근성이 좋고 내용으로 들어가면 역사와 관계하면서 음식의 역사를 풀어가기 때문에 아주 근사한 공부가 될 것 같다. 역사를 공부할 때 예를 들어 음식, 옷, 신발 등 주제어를 하나 선정해서 주제어의 역사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결시키는 방식의 공부가 재미있다는 것은 시민을 위한 박물관 대학 수업을 들으면서 알게 된 수업방식이다. 정기문님의 '식사'는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통로를 통과하면서 음식의 역사를 아우를 것이다. 서문은 정독에 들어가기 전에 훑어보는 소감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