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
2024. 5. 14 ~ 9. 22
7월 21일 방문
* 01 신발은 언제부터 신었을까요?
현재 남아 있는 신발 중 가장 오래된 신발은 미국 오리건주에서 발견된 산쑥나무 껍질로 만든 신발입니다. 이 신발은 1만 년 전에 만들어졌지만, 인류는 발을 보호하고 기후를 극복하기 위해 그 전부터 신발을 신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중앙아시아 로프노르에서 발견된 약 3500년 전의 가죽신이 있습니다. 이 신발은 발목까지 감싼 모양으로 추운 날씨를 견딜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신었던 신발의 흔적은 고조선 유적이 있는 심양 정가와자에서 발견된 청동 단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단추는 가죽신을 장식했던 용도로 추정되며, 비슷한 단추가 경북 영천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현재 남아 있는 신발 중에는 낙랑의 채협층과 창원 다호리에서 발견된 칠기 신발이 오래되었습니다. 이외에도 발굴된 삼국시대 짚신과 나막신에서 고대인이 신었던 신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 가죽신발 : 중앙아시아. 기원전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 칠기신발 : 낙랑. 국립중아박물관
: 나막신 : 삼국시대. 국립대구박물관
: 짚신 : 삼국시대. 국립대구박물관
* 02 신발은 어떤 재료로 만들었을까요?
신발은 짚, 왕골, 부들과 같은 풀대부터 나무, 종이, 비단, 가죽,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신발의 재료는 착용자의 신분과 환경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농경사회 평민들에게 가장 구하기 쉬웠던 재료는 짚과 나무였으므로 짚신과 나막신을 주로 신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어서 말가죽을 짚신처럼 엮어서 신었으며, 목동들이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가죽발레를 함께 착용하기도 했습니다.
가죽을 비롯한 귀한 재료는 특별한 신분의 사람들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통일신라는 4두품부터 소나 말가죽으로 만든 신을 신었으며, 평민들은 마로 만든 신발만 신을 수 있었습니다. 조선 시대 왕실은 비단이나 고라니, 담비, 곰 등 동물의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었으며, 양반들은 형편에 따라서 삼을 엮은 미투리부터 사슴 가죽으로 만든 가죽신까지 다양한 재료로 만든 신발을 신었습니다.
: 갓신 : 조선. 국립민속박물관
* 03 짚과 풀을 엮어 만든 신발
풀대나 나무줄기를 엮어서 만든 발목 없는 신발을 초혜라고 합니다. 대표적으로 짚신과 미투리가 있습니다. 두 신발은 재료도 다르지만 만드는 방법도 다릅니다. 짚으로 만든 짚신은 신발의 바닥을 이루는 신날이 보통 4개이지만, 미투리는 6개로 보다 촘촘하게 만들었습니다. 짚신에 대한 기록은 삼한시대부터 확인되며, 삼국시대 유적에서도 종종 발견될 만큼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짚신은 한 켤레당 4일 남짓 사용했으므로 한 사람이 일년에 약 70켤레를 신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미투리는 삼, 닥나무, 싸리로 만들었으며, 종이를 꼬아 만든 지총 미투리도 있습니다. 바닥과 발등을 덮는 총을 정교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짚신보다 고급품으로 여겨졌습니다. 안동의 이응태(1556~1586)의 무덤에서는 부인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엮어서 만든 미투리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 04 신발은 신분에 따라 어떻게 달랐을까요?
신분제 사회에서는 신발이 곧 권력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조선 시대 왕과 왕비는 공식 행사에서 착용하는 면보기나 적의에 맞춰서 특벼리 제자간 신발인 석을 신었습니다. 석의 모양은 행사의 내용을 정리한 의궤에도 기록되어 있으며, 실물로는 영친왕비(1901~1989)와 순정효황후(1894~1966)가 신었던 석이 남아 있습니다.
관리들은 목이 긴 신발 화를 신었습니다. 화는 삼국시대부터 신었던 오랜 역사를 가진 신발로 고려 시대부터 관리의 신으로 공인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는 관리들이 검은색의 화를 신도록 규정하였습니다. 화는 사슴이나 담비같이 귀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들었으며, 남아 있는 신발과 초상화를 통해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발목이 낮은 가죽신 혜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신발입니다. 양반들의 일상용 신발이었던 혜는 남녀에 따라 문양이 달라졌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부유해진 평민들도 혜를 애용했는데, 한 켤레의 가격이 쌀 한 섬(160kg)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고 합니다.
* 05 비오는 날, 눈오는 날 신던 신발
옛 사람들은 비가 올 때면 나무로 만든 나막신이나 기름을 먹인 가죽신(징신)을 신었습니다. 목혜, 평극으로 부르는 나막신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바닥이 납작하고 끈으로 묶는 형태는 삼국시대부터 확인되며, 앞축과 뒷축이 있는 것은 조선 후기에 유행합니다. 나막신의 굽은 인(人)자와 11자가 있는데, 비가 오고 돌이 많은 제주도에서는 높은 굽의 11자 나막신을 주로 신었습니다. 양반들은 나막신 대신 유혜라 부르는 징신을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징신은 가죽신에 기름을 먹이고 바닥에 징을 박아서 물에 젖지 않도록 만든 고급 신발입니다.
눈이 내리는 겨울에는 보온을 위한 둥구니신과 설피를 착용했습니다. 둥구니신과 설피는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무와 짚으로 만들었습니다. 설피는 눈이 빠지지 않도록 발이 딛는 면적을 넓힌 신발로, 둥구니신이나 가죽신과 함께 착용합니다.
* 06 버선과 혼례신
버선은 발을 보호하고 맵시 있게 보이기 위해 신었던 신발의 짝꿍입니다.
버선은 우리나라 고유의 복식으로 발에 입는 옷이라는 의미에서 한자로 족의 또는 말이라고 합니다. 삼국시대부터 등장한 버선은 신분에 따라 다른 직물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고려시대부터는 신분을 구분하지 않고 흰색 베로 만든 버선을 신었으며, 조선에서도 청렴을 상징하는 흰색 버선을 애용하였습니다.
인륜지대사인 혼례는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입니다. 그래서 혼례 날에는 신분에 상관없이 화려한 복식을 착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랑은 사모관대, 즉 관복 차림으로 목화(흑화)를 착용하며, 신부는 족두리에 궁중 여인들이 입는 활옷이나 원삼을 입었습니다. 신부의 신발은 꽃신으로도 부르는 운혜, 당혜 같은 가죽신을 신었으므로 혼례날 신부의 복식은 마치 꽃비가 내린 듯 화려했습니다.
* 07 죽은 이를 위한 신발
습신은 죽은 이의 마지막을 함께하는 신발입니다. 노잣돈과 마찬가지로 돌아가신 분이 좋은 옷과 신발을 신고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반영된 물건입니다. [상례비요 1621]를 보면 장례의 중요한 순서로 습의와 습신을 착용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오늘날 습신은 종이나 삼베로 만들지만, 조선 시대에는 명주, 창호지와 더불어 비단 같은 고급스러운 재료도 사용했습니다. 남성들은 검은색 직물로 만든 흑리, 여성들은 비단으로 만든 채혜를 주로 습신으로 사용했습니다.
삼국시대 지배자들의 무덤에는 금동신발을 함께 묻었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금동신발은 모두 56건으로 삼국의 모든 나라에서 출토되었습니다. 신라와 백제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금동신발은 얇게 만들어 재질이 약하며, 사람의 발보다 커서 장례용 신발로 알려져 있습니다. 고구려의 금동신발은 바닥판만 금속으로 만들고 많은 수의 못을 박았습니다. 삼실총과 개마총의 벽화에는 고구려 무사가 바닥에 못이 박힌 신발을 신고 있어 고구려의 금동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였던 모습에 가까울 것으로 추정됩니다.
* 08 신발, 조선에서 현대까지
조선 시대까지 가죽신은 국가의 관리 아래에서 전문 기술자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공업이 발달하는 20세기가 되자 새로운 재료로 만든 고무신이 유행하게 됩니다. 고무신은 비가 와도 젖지 않으며 짚신보다 질겨 오래 신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고무신은 일본에서 받아들였던 물건이지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면서 가죽신인 혜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습니다. 고급신발과 비슷한 모양으로 인하여 고무신은 큰 인기를 끌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수많은 고무신 공장이 생겼으며, 많은 신발 회사가 고무신을 생산했습니다.
이처럼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발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신발에 자리를 양보하게 됩니다. 오늘날 조선 시대의 가죽신은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화혜장들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무신은 1970년대부터 구두와 운동화를 주로 신게 되면서 점차 사라지게 됩니다.
* 답사 후기
국립대구박물관 개관 30주년 특별전 ‘한국의 신발, 발과 신’을 기획 전시하였다. 국립박물관에서 준비한 특별전답게 내용이 알차고 공들여 준비하였음이 느껴졌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신었던 신발, 무덤에 넣어주었던 신발, 신분에 따라 신을 수 있는 신발들을 실물과 설명을 곁들여 보여주었다. 신발을 주제로 고대와 현대 시작점까지 아우르는 이런 전시는 알차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것은 꿰어진 구슬처럼 보배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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