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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마한박물관

* 익산 마한 박물관 익산 마한박물관은 익산에서 꽃피웠던 마한 문화를 널리 알리기 위해 2008년 4월 개관하였습니다. 이후 2013년 1월 제1종 전문박물관으로 등록하였으며, 2013년 7월 이후 익산 출토 국가귀속유물을 인수하여 현재 전시 및 보관`관리하고 있습니다. 마한박물관은 상설전시실과 야외 전시공간을 갖추고 있으며, 자체유물과 국가귀속유물 등 4942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은 익산의 선사와 마한의 성립, 마한에서 백제로의 변화, 마한의 생활문화 등 세 가지 테마로 구성하였으며, 200여 점의 유무울 전시하여 익산의 구석기 ~ 마한의 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획전시와 토기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시민과 함께 만들어가는 박물관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 공부 2022.09.06

백제역사유적지구 : 유네스코 세계유산

* 백제역사유적지구 : 유네스코 세계유산 1. 공주 공산성 : 사적 제12호 공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성벽을 쌓은 공산성은 웅진도읍기 방어성이자 왕성이었다. 북쪽으로는 금강이 흐르고 동`서`남쪽은 가파른 성벽이 자리하고 있어 방어에 유리한 이점을 가진다. 공산성은 산성 안에 왕궁을 가지고 있는 독특한 구조를 보여주며, 백제 이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 왕궁지 : 산성 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왕국지에는 여러 기의 건물지와 연못이 있다. 이곳에서 확인된 건물지 가운데 벽주 건물은 위계가 높은 건물들에 사용되는 건축양식으로 건물의 상부를 꾸미는 다양한 기와들이 발견되었다. * 왕궁부속시설지 : 공산성 내 가장 넓고 평탄한 지형으로 백제 시대 왕궁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할 여러 부속 건물들..

역사 공부 2022.09.05

국립익산박물관

*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익산 미륵사지 * 국립익산박물관 우리 박물관은 미륵사지에서 출토된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보존`연구`전시하기 위하여 2020년 1월에 문을 연 우리나라 13번째 국립박물관입니다. 세계문화유산 익산 미륵사지의 경관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고도 익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 어린이박물관 2022년 1월 새롭게 문을 연 어린이박물관은 760제곱미터 규모의 전시실과 강당, 다목적 공간(열린마루) 등을 갖춘 종합교육시설입니다. 어린이박물관 전시실에서는 미륵사지 석탑 석인상을 의인화한 '도솔이'와 함께 13년 전 백제 미륵사로 시간 탐험을 떠날 수 있습니다. 노반박사와 와박사를 도와 미륵사를 짓고, 석탑 안에 사리장엄을 모시며 과거 미륵사를 탐험합니다...

역사 공부 2022.09.04

백제왕궁박물관(익산)

* 백제 왕궁, 천년의 길 : 백제왕궁박물관 특별전 : 2022년 8월 4일 ~ 10월 16일 1. 백제왕궁, 길을 찾다 왕궁리유적은 백제가 아닌 마한의 흔적이 남은 곳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그러나 1975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의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의 또 다른 도읍지라는 학설이 제기되었습니다. 이후 1989년부터 20여 년에 걸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을 통해 이곳이 백제 왕궁터였음이 확실시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쳐 우리는 1400년 동안 흙 속에 묻혀 기억에서 사라졌던 백제왕궁의 길을 다시금 찾게 되었습니다. 2. 백제 왕궁, 길을 만들다 이곳은 과거부터 왕궁리오층석탑이 자리한 이름난 명소로서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휴식공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왕궁리유적의 중요성이 대두되..

역사 공부 2022.09.04

낭산, 도리천 가는 길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낭산, 도리천 가는 길 : 경주박물관 특별전시관 : 2022. 6. 15 ~ 9. 12 * 낭산으로의 초대 경주 낭산은 이리가 엎드린 형상이어서 '이리 낭'자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마천은 '사기'에서 동쪽의 큰 별을 '낭'으로 부른다고 하였습니다. 이리 형상 때문이 아니라 신라 왕궁의 동(남)쪽에 자리한 까닭에 낭산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낭산은 신라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산 이름의 유래조차 명확하지 않을 만큼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이번 전시가 신라인들이 신성하게 여겼던 낭산을 이해하는 디딤돌이 되길 바랍니다. * 신들이 노닐던 세계 413년 낭산에서 누각 형태의 구름이 나타났고 향기가 퍼져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실성 이사금(재위 402~417)은 '이는 반드시 신선이 내려와..

역사 공부 2022.09.03

영일 민속박물관

*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찾을 수 있은 곳 영일민속박물관은 점차 사라져 가는 향토 민속유물을 영구히 보존하고 후세의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835년(조선 헌종 원년)에 건립된 제남헌(흥해군의 동헌)을 민속박물관으로 보수하고 1983년에 개관하였다. 이후 1985년 제2전시실(민속관)을 증축하면서 민속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고, 1993년 문화체육부로부터 박물관으로 등록되었다. 영일민속박물관에는 현재 도지정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제남헌'이 위치하고 있으며 총 4600여 점의 민속자료가 소장되어 있다. * 제남헌 제1전시실 일상생활에 실제로 사용하던 농기구 및 어구류 등을 통해 조상들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몇몇 농기구와 어구류는 현재까지도 농가나 어촌 등에서 사용되고 있어 생생한 현장..

역사 공부 2022.06.07

한국인은 왜 이렇게 먹을까

* 식사 방식으로 본 한국 음식문화사 * 주영하 음식을 문화와 인문학, 역사학의 시선으로 해석하고 연구하는 음식인문학자. 마산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역사학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문화인류학을 공부. 1998년 중국 중앙민족대학교 대학원 민족학·사회학 대학에서 [중국 사천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민족학(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 프롤로그 엘리아스는 상층부 계층에서 형성된 유럽식 식사 예법이 하층민에게까지 퍼지는 현상을 ‘문명화 과정’이라고 불렀다. 또한 오늘날 서양인들의 테이블 에티켓은 개인의 감정을 사회적으로 통제하는 문명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라고 보았다. 즉, 손으로 집어먹는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수치심을 준다는 인식이 귀족들 사이에서 퍼지면서 포크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것..

독후감 2022.04.25

웅천

* 웅천 : 역사 문화자원의 보고 웅천은 외교, 군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 문화자원을 가지고 있다. 웅천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성곽이 남아있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최초의 개항장이었던 제포왜관이 설치되어 조선전기 한일간 문화와 문물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독립운동가 주기철 목사 기념관과 여성 독립운동가 김조이의 생가지가 이곳 웅천에 있어 항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제포왜관지 왜관은 조선 초 왜인들을 연안지역에 한정하여 정박하게 하고 통상을 허락한 공간이다. 제포(내이포)는 부산포, 울산의 염포와 더불어 삼포 가운데 하나로 1407년 개항하였다. 제포왜관은 이..

역사 공부 2022.04.23

창원시립진해박물관

* 진해탑 제황산(해발 90미터) 정상에 위치한 이 탑은 높이 28미터, 건축 면적 400제곱미터로서, 군함의 마스터형으로 건립한 군항도시 진해의 상징입니다. 이곳에는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1929년 세운 전승기념탑이 있었으나, 1945년 광복 이후 그 탑을 철거하고, 1967년에 우리 해군의 위용을 상징하는 진해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탑 내에는 시가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와 조상의 얼과 슬기가 깃든 우리고장의 문화유산을 통해 시민들이 애향삼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창원시립진해박물관]이 있습니다. * 진해의 역사 신석기시대 : 안골포 패총, 수도동 패총 청동기시대 : 죽곡동 동굴 주거지 삼한·삼국시대의 진해 : 웅천유적(패총, 주거지, 고분군), 석동 고분군, 지은동 패총, ..

역사 공부 2022.04.23

국립진주박물관

* 진주성 : 국가지정 사적 제118호 진주성은 외적을 막기 위해서 삼국 시대부터 조성한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깃든 유석 깊은 곳이다. 고려 말 우왕 5년(1379)에 진주 목사 김중광이 왜구의 잦은 침범에 대비하여 본래 토성이던 것을 석성으로 고쳐 쌓았으며, 임진왜란 직후에는 성의 중앙에 남북으로 내성을 쌓았다. 선조 25년(1592) 10월 왜군 2만여 명이 침략해 오자 김시민 장군이 이끄는 3천8백여 명의 군사와 성민이 힘을 합쳐 물리쳤으니 이것이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이다. 이듬해 6월에는 왜군 10만여 명이 다시 침략했고, 민간인과 관료, 군인 등 7만여 명이 이에 맞서 싸우다 모두 순절하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다. 1972년에는 촉석문을 복원하였고, 1975년에는 일제 강점기에 허..

역사 공부 2022.04.16